모든 것이 허상이라면, 허상을 인식하는 나는 무엇인가?

존재와 실재 #01

by 박종민

나는 나를 의심한다. 눈앞의 모든 것들이 실재하는 것 같지만, 손을 뻗으면 잡히지 않는 연기 같다. 존재는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이 분명한 듯 흐릿하고, 손끝에 닿는 순간 사라진다. 실재란 무엇인가? 내가 본다고 믿는 것은 나의 눈 속에 존재할 뿐, 나의 바깥에 존재하는가?

나는 종종 이 세상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플라톤의 동굴 속에 있는 것은 나일지도 모른다고.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그림자뿐이라면,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동굴의 벽에 비친 불완전한 형태인가, 아니면 그 너머에 있는 실체인가? 그러나 실체란 어디에도 없을지도 모른다. 오직 그림자만이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실체라고 부를 뿐이다.

내가 누구인지 묻는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나는 확신할 수 없다. 생각하는 나는 존재하는가? 혹은 생각이라는 흐름 속에서 잠시 떠오르는 거품에 불과한가? 흄은 자아란 연속된 경험의 총합일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한순간의 기억과 감각의 잔여물인가? ‘나’라는 것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계속해서 변화하는 환영인가?

시간은 흐르고, 나는 그 흐름 속에서 나를 찾는다. 그러나 찾을 때마다 나는 또 다른 형태로 바뀌어 있다. 나는 나를 찾을 수 없다. 나 자신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이미 내가 아니다. 나를 인식하는 순간, 나는 나로부터 멀어진다. 나란 무엇인가? 내가 인식하는 ‘나’는 실제 나인가, 혹은 단순한 개념의 산물인가?

만약 모든 것이 허상이라면, 허상조차 실재가 아닌가? 내가 허상을 경험한다는 사실이,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실재 여부’가 아니다. 나는 허상 속에서 살아간다. 허상 속에서 생각하고, 허상 속에서 존재를 느낀다.

어쩌면 우리는 끝없이 허상을 의심해야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허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이다. 내가 허상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나는 허상의 바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바깥이 존재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나는 사유한다. 그러므로 나는 허상 속에서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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