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상식’이 신뢰받는 시대

by 서완석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에서 법이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로 바뀐 이유는 인간이 감정의 동물이라는 약점에서 기인한다. 법치주의의 등장은 이처럼 약점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 중 하나에 불과한 통치자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해 인간의 자유와 권리가 훼손되는 것을 막고, 쉽게 변하지 않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규칙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으로 통치자들이 ‘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인간이 법으로써 지배하는 사회’로 인식하여 법을 통치의 도구로 전락시켜버린 예를 수없이 보아왔다. 완벽하게 합법적인 형태로 권력을 잡았지만 법을 무시하고 1인 독재체제를 유지했던 히틀러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다.


성문법과 불문법은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소크라테스의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관과 소피스트들의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진리관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대륙의 합리론에 영향을 주었고, 소피스트들의 철학은 경험론에 영향을 주었는데, 합리론 쪽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중요시 하므로 연역법적 해결을 도모하고, 경험론 쪽에서는 인간의 감성을 중요시 하므로 귀납법적 해결을 도모한다. 연역법적 해결을 도모하는 쪽에서는 법체계를 성문화 시키는 쪽으로 발전시켰고, 귀납적 해결을 도모하는 쪽에서는 법체계를 불문화 시키는 쪽으로 발전시켜 왔다.


변화하는 세상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단점을 가지고 있지만 성문법 체계가 불문법 체계보다 우수한 점은 바로 통치자나 법관의 재량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는 불문법 국가들도 대부분 인권과 관련된 헌법이나 형법만은 성문법으로 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또한 불문법 체제하에서는 법관의 판결이 곧 법이고 이러한 판례를 찾아내는 데는 법전문가들의 전문성에 기댈 수밖에 없어 법을 안다는 것 자체가 권력이 되지만, 성문법 체제하에서는 문자화된 법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만 있으면 되므로 상대적으로 법을 안다는 것이 바로 권력이라는 인식은 적다는 장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문법 체제 하에서 법이 권력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법문에 일반인이 해독하기 어렵거나 전문적인 용어가 섞여 있는 경우다. 이러한 상태에서 국민 일반의 준법의식이 고양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법은 국민의 법감정이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서는 안 되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용어로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법조문에서 일본식 용어를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조문에 한자가 들어가야만 무게가 있어 보인다고 말하는 자들은 법을 특수한 계층만이 이해하여야 하는 전유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법치주의는 법이 권력이 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며, 세상 사람들이 법을 편한 옷을 입고 있는 양 친근하게 여길 때 확립될 것이다.


법이 실생활과 유리되거나 법이 법을 아는 자들만의 것이 된다면 법은 권력이 되고, 이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은 ‘인간이 법으로써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릴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법치주의 하에서는 법과 제도가 상식과 일치되어 있기 마련이며, 상식이 진리처럼 통하게 되어 있다. 법에 기술적이고 전문적인 측면이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지만 근본적으로는 도덕과 상식에 기초해 있어야 하며, 매일 먹는 밥처럼 실제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상식을 벗어난 법은 이해할 수 없고 불편하기에 지켜질 수 없으므로 특수 계층에게만 이익이 될 것이다.


이처럼 법을 지키는 사회적 비용이 탈법의 유혹보다 크다면 아무도 법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법이 인간의 본능을 너무 무시한 채 이성만을 강조하는 등 비현실적일 때 구성원들은 법을 지키지 않게 된다. 뿐만 아니라 법은 분명히 인위적인 제도이지만 자연의 법칙에서 현저히 벗어나게 되면 구성원들이 이중의 기준에서 엄청난 혼란을 느끼게 되고 지킬 엄두를 못 내게 된다.


경찰의 일제단속에 걸린 사람들이 반성을 하기보다 재수가 없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면 법은 이미 신뢰의 선을 넘고, 상식의 선을 넘어 준법의식을 기대하기 곤란해진다. 그리고 법이 상식에서 벗어나면 그것을 해석하는 법집행자의 재량권이 늘어나고 이를 통해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된다. 최근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유도 바로 우리 사회의 법 중 상식을 벗어난 것들이 많다는 데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정말 좋은 법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상식적인 것이다. 그동안 사법운영의 주체인 사법 관료들의 법적 사고가 수요자들인 국민들이 현실적으로 느끼는 법 감정과 괴리관계에 있음으로써 국민들의 사법 불신을 초래하고, 결국 법의 지배력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해왔음에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드물 것이다.


그러므로 법전문가들이 아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자들의 판단을 신뢰함으로써 시민적 정의와 사법적 정의 사이의 간극을 메우고, 국민의 사법 불신을 해소하며, 시대변화에 순응하는 가치관이 법적용 단계에 바로 투영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서 국민참여재판제도와 검찰시민위원회제도가 도입된 것은 매우 바람직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제도를 통해 직업법률가와 일반시민이 상호소통을 하게 되고, 국민 누구나가 수긍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두 제도 모두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고, 검찰시민위원회 의 결정이나 국민참여재판제도에서의 배심원들의 평결이 권고적 효력 밖에 없다는 점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자칫 무늬만 있는 면피용으로 사용되어 오히려 국민들의 불신만 가중시키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의 경우 로스쿨 설립에 있어 준칙주의를 취함으로써 진입장벽이 없고, 몇몇 주를 제외한 거의 모든 주가 변호사시험 응시자들 중 70-80% 이상에게 변호사 자격증을 주고 있다는 사실도 법은 상식이라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기존의 법학교육과 사법시험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도입된 우리나라의 로스쿨제도가 사회적 약자가 넘보기에는 너무 높은 장벽이며, 기존의 사법시험제도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기형적인 존재가 되고 있다는 것이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으니 이를 어쩌랴.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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