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by 서완석

비가 내리는 날이면,

눈이 내리는 날이면

아프지 않고, 슬프지 않고,

기어이 녀석에게 지지 않고


보글거리는 김치찌개,

싱싱한 우럭 매운탕,

노릇한 삼겹살 한 점,

꼬릿한 순댓국 한 그릇,

바다 냄새 가득한 해삼 한 접시,

김 모락 모락 두부 한 모,

바삭한 녹두빈대떡,

매콤한 뼈 없는 닭발,

쿰쿰한 홍어 한 볼태기,

구수한 양선지 해장국을 동무 삼아


마시고 싶다.

기어이 울지 않고 싶다.

삶이 내 맘대로 흐른대도 마시고 싶다.

삶이 내 맘대로 되지 않기에 마시고 싶다.


소주 한잔도 위험하다는 서슬퍼런 말이

야속하고 우울해 마시고 싶다.

마시지 말라는 성화가 귀에 딱지 앉는 날,

나는 이놈을 기어이 이겨내고 싶다.


가마솥에 추어탕 끓여놓고

온 동네 술꾼 불러 모아 막걸리 마시던

울 아버지 보고 싶어 마시고 싶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산이라고 핑계 대며 마시고 싶다.

울 어머니에게는 불효자식이라서

그래서 더 마시고 싶다.


예수님은 포도주를 당신의 피라 하셨는데

소주는 포도주의 사촌도 못 되는 것인가.



(저자주) 저는 매일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닙니다. 마시고 싶을 때 마시는 사람입니다. 비겁한 변명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울 어머니는 술 마시던 남편을 둔 죄로 술 마시는 아들을 두고 있다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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