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28화 비극의 태동(2)


1979년 12월 12일. 서울 하늘은 유난히 낮게 깔려 있었다. 비인지 눈인지 모를 희뿌연 안개가 회색 도심을 감싸고, 한강 위에는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오가던 버스의 매연마저 조용히 가라앉은 듯했다. 종로 네거리 신문 가판대 앞에 어깨를 움츠린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명동의 커피 향 역시 그날만큼은 따뜻하지 않았다. 다방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 대신 군의 발표문을 짤막하게 전하고 바로 음악이 끊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눈송이가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으나, 한 줌의 평온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아침 서울은 마치 바람 한 줄기도 숨을 죽인 도시였다. 사람들은 추위 때문에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귀는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은 음울한 소리에 열려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날의 어둠이 서울의 밤하늘을 완전히 뒤집어놓을 것임을 알지 못했다.


민우는 누군가 자기의 목을 조이는 듯한 공포감에 선뜻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정희가 너무 보고 싶은데 정희에게 화가 미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더 보고 싶다. 민우는 정희에게도 알리지 않고 짐을 정리해 예산의 수덕사에 숨기로 했다. 고향인지라 지리에 밝고 특히 익숙한 곳이라 덜 두려울 것 같고, 고시생의 모습으로 가장하면 추적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등포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고 예산역이나 삽교역에 내려 수덕사 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만일 잡히기라도 하면 공문서위조 및 행사, 업무방해죄,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등을 적용해 잡아들일 것이 명확하다. 다만 민우는 회사 내에서 철저히 신분을 숨기느라 노동자들과 함께 시위하거나 파업 또는 쟁의행위 과정 중에서 물리적 충돌을 한 일이 없으므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폭처법) 위반행위는 적용받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법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긴급조치 9호 위반이다. 이 조치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하거나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위장 취업자들은 집시법이나 폭처법 이전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

중앙정보부나 보안사 그리고 경찰 등이 민우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가 이미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므로 적발되면 단순히 해고되는 것이 아니라, 구속수사와 고문을 동반한 배후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다. 민우는 간단한 옷가지 등을 챙겨 영등포역에서 장항선 열차를 탔다. 그리고 정희에게도 모든 연락을 끊었다. 혹시라도 정희에게 해가 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미스리가 운영하던 다방 문이 굳게 닫혀 있고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계원들의 불안은 확신으로 변했다. 피해자들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이내 누군가 “미스리가 튀었다!”라고 하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은 굳게 잠긴 다방 문을 발로 차거나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며 자기 머리를 쥐어뜯었고, 혈기 왕성한 남자들은 다방 문을 부수고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러나 이미 휑하게 비어버린 다방 안과 급하게 챙겨 나간 듯 흐트러진 물건들을 확인한 후에야 그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전 재산이 신기루처럼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정신을 차린 피해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방에 모여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그들은 미스리에 대한 조그만 흔적이라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는 경찰서로 달려가 사기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했고, 다른 이들은 미스리의 고향이나 일가친척의 주소지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피해자들은 미스리가 나타날 법한 터미널 근처에서 며칠 밤낮을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잠복하는 노숙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미스리가 도망가며 남겨둔 다방 안의 물건이나 낡은 가재도구라도 확보하려는 싸움은 처절했다. 피해자들 사이에서도 돈을 넣은 순번과 액수가 달랐기에, 서로 먼저 가압류를 걸거나 물건을 집어 가려는 내부 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증스러운 것은 “내 피 같은 돈”이라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 중에 미스리가 보온병을 들고 다니며 아양을 떨면서 커피를 따라주고 몸까지 주었다는 소문이 무성한 자들도 섞여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다른 동물과 달리 그렇게 쉽게 표정을 바꾸고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권력의 수사는 더디게 진행되었다. 절망에 빠진 일부 피해자들은 사채업자나 해결사를 고용해 미스리의 행방을 쫓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고창댁이 쉬쉬했음에도 피해자들은 최사장네 국밥집까지 찾아와 미스리에 대한 정보를 알려고 하는 바람에 최사장도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다.

“최사장, 미스리랑 같이 살아봤으니, 그년에 대해 아는 게 있을 거 아냐?”

최사장은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없이 국밥만 말고 있었다.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피해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기에 화내지 않고 참는 것이다.

“최사장, 그년 친정이 어딘지 알려주기만 한다면 나중에 사례할게.”

“그년이 갈만한 곳으로 짐작 가는 데라도 있을 것 아냐?”

최사장은 미스리 즉 이금자의 고향이 어딘지 잘 알고 있다. 충남 서천에 있는 그녀의 부모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러나 그는 굳게 입을 닫고 모른 체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미스리를 용서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부모들까지 고통을 당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는 배려의 마음일 뿐이다. 이를 바라보는 곰소댁의 마음은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오늘도 최사장네 국밥집에는 피해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최사장으로부터 정보를 캐내려 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자기들도 배가 고픈지 국밥을 시켜 먹는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서슬 퍼런 모습으로 앉아 있는 사람들 모습에 기가 질려 선뜻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가버린다는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곰소댁이 최사장네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이건 아니제. 시상에 배신당해 가슴이 문드러지는 냥반한티 와서 그 가슴에 난도질을 하는 것이 경우에 맞는 일이여?”

곰소댁이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피해자 중에 곰소댁의 치료비를 십시일반으로 도와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곰소댁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배경이기도 했다.

곰소댁의 성정을 잘 아는 몇몇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당사자도 아닌 곰소댁이 나서는 이유가 뭐요?”

누군가 곰소댁을 가로막으며 소리를 지르는 이가 있었다.

“그라믄 최사장이 이 사건의 당사자여? 가해자여?”

앞으로 나섰던 이가 주춤하더니 뒤로 물러서는 눈치다.


곰소댁은 기세를 몰아 허리에 손을 얹고 한 발자국 더 다가섰다. 그녀의 눈발처럼 차갑고도 매서운 시선이 가게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훑었다.

“당신들, 미스리 그 가시내가 야반도주할 때 최 사장님한테 상의 한마디라도 하고 갔다던가? 아니면 그 챙긴 돈 보따리에서 최 사장님 몫으로 한 푼이라도 떼어주고 갔다던가? 이 냥반도 그년한테 맘 주고 정 주고, 마지막엔 뒤통수까지 뜨끈하게 얻어맞은 피해자 중의 상피해자여! 그런데 어디서 가해자 취급하며 취조를 하는 거여? 저 냥반이 천성이 착혀서 지금 참고 있는 것이제. 지금 속이 속이 아닐 것이여.”

곰소댁의 고함이 좁은 국밥집 천장을 울리자, 숟가락을 들고 있던 사내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억울함과 독기만 남았던 피해자들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사실 최 사장이 이금자와 한때 살을 맞대고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 얼마나 억지스러운 일인지를 그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쏟아낼 곳 없는 분노를 받아줄 정도의 만만한 샌드백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이 냥반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그년을 감싸고 돌아서 그런 줄 아는가? 아니여! 자기도 속이 타들어가서, 그 이름 석 자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칼로 가슴을 베는 것 같응게 그러는 거여.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 남의 아픈 상처를 후벼 파서 지들 구멍 메울 궁리를 하면 쓴당가?”


곰소댁이 가리키는 손가락 끝에 미스리에게 아양을 떨며 커피를 받아 마셨던 전력이 있는 한 사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는 곰소댁의 서슬 퍼런 기운에 눌려 남은 국밥을 허겁지겁 입에 밀어 넣고는 힐끔거리는 눈치더니 휴지로 입을 닦고는 도망치듯 가게 밖으로 나갔다.

“자, 다들 일어서드라고! 여그 앉아서 애꿎은 국밥 축낸다고 미스리 그 가시내가 땅에서 솟아난다냐, 하늘에서 떨어진다냐? 정말로 돈 찾고 싶으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한 집이라도 더 발품 팔아 돌아다녀야 할 것 아녀?”

곰소댁이 행주를 들어 탁자를 소리 나게 닦아내기 시작하자, 가게 안에는 묘한 적막과 함께 패배감이 감돌았다. 한두 명씩 마지못한 듯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들은 최 사장의 얼굴을 차마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웅얼거리는 불평을 내뱉으며 문밖으로 밀려 나갔다.

“최 사장, 담에 올 테니까 뭐 생각나는 거 있으면 꼭 연락 좀 주쇼.”

마지막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한 한 남자가 뱉은 말을 끝으로, 시끄럽던 국밥집 문이 덜컹거리며 닫혔다. 차가운 12월의 겨울바람이 열린 문틈으로 잠시 들이닥쳤다가 이내 사라졌다.


손님들이 모두 빠져나간 썰렁한 가게 안에서 곰소댁은 씩씩거리며 솥단지 옆에 멍하니 서 있는 최 사장을 바라보았다. 최 사장은 여전히 굳게 다문 입술 끝을 떨며 국자 자루를 꽉 쥐고 있었다. 곰소댁은 그가 얼마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수건을 가져와 최 사장의 튄 국물 자국을 닦아내며 낮게 읊조렸다.

“오라버니, 고생했네. 인자 저 사람들도 당분간은 못 올 거여. 세상천지에 지들만 아픈 줄 아는 인간들 신경 쓰지 말고 불이나 더 지펴. 뜨끈한 국물이라도 내야 마음이 덜 시릴 거 아녀.”

최 사장은 그제야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는 여전히 희뿌연 안개와 눈송이가 서울 하늘을 덮고 있었지만, 적어도 이 낡은 국밥집 안에서만큼은 칼날 같은 시선들이 물러가고 고요한 슬픔만이 자리를 잡았다.


정희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민우로부터 아무 소식도 들을 수 없으니 미칠 것 같았다. 자기를 위해 연락을 끊었으리라는 짐작은 하지만 그의 진정한 마음을 알 수 없어서 입술이 바짝바짝 마를 정도로 애가 탔다.

“정희야. 그 새끼 위장 취업자가 맞아. 이 새끼가 그동안 의뭉스럽게도 충청도 촌놈처럼 행세하면서 우리를 감쪽같이 속인 거였어. 아니고 분해. 이 새끼 잡히기만 해봐라. 그 새끼 오늘 출근 안 했지?”

“모르겠는데요? 출근 도장은 생산동에서 관리하니까요.”

“우리가 늦었어. 이미 토낀 거야. 그래도 모르니 생산동에 가서 알아봐.”

정희는 민우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간직한 채 생산동으로 갔다. 그가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관리부장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김성태씨! 어디 계세요?”

“이틀 전부터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고 있어요.”

“관리부장님이 찾는데 어디 아프시다고 하던가요?”

“아니요. 전혀 아프다는 말도 없었고 사물함에서 모든 물건을 빼 가지고 간 것 같아요.”

“그런데 이틀 전부터 결근이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너무나 성실했던 사람이라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정희 역시 그녀를 만난 후 이틀간이나 민우가 출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여러 번이나 관계자들에게 물었으나 누구나 똑같은 대답이었다. 결국 정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틀간 더 출근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밖에 없다. 정희는 가슴이 아려왔다.


오늘은 영석이의 기말고사 일정이 끝나는 날이다. 10.26 사건 이후 대학의 학사일정은 파행적으로 운영되었으므로 시험도 보고서로 대체하는 과목이 많았지만, 법과대학의 경우에는 고집스러운 교수들이 기어이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기말고사 일정은 금요일에 끝나지만 수요일인 오늘 영석의 시험 일정은 마무리된 것이다. 영석은 또 ‘홍성집’에서 수아를 만나기로 했다.

“워따! 예쁜 아가씨가 또 왔구먼.”

할머니는 수아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 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할머니 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한마디 했다.

“할머니! 오늘은 간재미탕 먹고 싶어요."

태종이가 주문을 했다.

할머니가 끓여주시는 간재미탕은 일품이다.

할머니는 말없이 구석진 주방에서 큼지막한 간재미 한 마리를 도마 위에 올렸다. 홍성집 할머니 고향 부근의 서산 갯바람에 꾸덕꾸덕하게 말린 간재미는 마치 모진 세월을 견뎌온 할머니의 손등처럼 거칠다. 할머니는 무딘 칼날로 지느러미를 쳐내고 뼈마디를 따라 툭, 툭 소리 나게 토막을 냈다.

커다란 무를 투박하게 썰어 넣은 솥에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자, 할머니는 항아리 밑바닥에서 긁어온 까만 집된장을 한 술 듬뿍 풀었다. 구수한 된장 향이 수증기를 타고 피어오를 때쯤, 토막 친 간재미가 끓는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뜨거운 열기를 머금은 속살이 꽃잎처럼 하얗게 피어나고, 연골 사이에서 뽀얀 육수가 우러나오며 국물은 이내 걸쭉한 빛깔을 띠기 시작한다. 거기에 고춧가루를 팍팍 뿌려 붉은빛을 내고, 다진 마늘과 생강즙으로 비린내를 단단히 붙잡는다. 마지막으로 대파를 듬성듬성 썰어 넣고 향긋한 쑥갓 한 줌을 툭 던져 넣자, 솥 안은 비로소 생경한 겨울의 생명력으로 가득 찼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는 마치 억눌렸던 울음이 터져 나오는 것 같았고,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내음이 가게 구석구석의 냉기를 밀어냈다.


“자, 이거 한 그릇 쭉 들이켜봐. 속이 뜨끈해야 세상살이 모진 풍파도 견디는 법이여.”

할머니가 내어준 국물을 한술 뜨면, 처음에는 고춧가루의 칼칼함이 목을 타고 내려가 가슴 속 응어리를 뜨겁게 지져준다. 하지만 이내 뒤따라오는 것은 된장의 구수한 깊이와 간재미 뼈에서 우러난 담백한 단맛이다.

압권은 부드럽게 익은 속살과 오독오독 씹히는 연골이다. 결대로 일어나는 하얀 살점은 입안에서 녹아내릴 듯 연하지만, 사이 사이에 박힌 뼈는 경쾌하게 씹히며 고소한 진액을 뿜어냈다. 뼈째 씹어 삼키는 그 맛은 비겁하게 도망친 이들에 대한 분노를 짓씹는 듯 강인했고, 텅 빈속을 채워주는 위로의 맛이다. 한 그릇 비우고 나면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히며, 12월의 그 서슬 퍼런 공포와 상실감도 잠시나마 눈 녹듯 사라지는 기분이 든다.

“캬! 너무 맛있어. 할머니 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맛있는 찌개는 처음 먹어봐요.”

“그쵸? 간재미가 여성들 피부에 그만이라는 말이 있어요. 맛있게 드세요. 그리고 나중에 간재미찜도 드셔봐요. 기가 막힐 겁니다.”

할머니 딸이 한마디 했다.


“그런데 가재미와 간재미는 같은 생선인가요?”

수아가 할머니 딸에게 물었다.

“흔히 이름이 비슷하여 같은 물고기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가재미 즉 가자미와 간재미는 생물학적으로 계통 자체가 완전히 다른 종류라고 하더라고요. 우선 가재미는 우리가 흔히 아는 넙치 다시 말해 광어와 비슷하게 생긴 생선이예요. 몸이 납작하고 눈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것이 특징인데, 흔히 ‘우측에 눈이 있으면 가자미, 좌측에 있으면 광어’라고 구분하곤 해요. 가자미는 도다리나 참가자미처럼 뼈가 딱딱한 경골어류에 속하며, 주로 구이나 조림, 혹은 미역국에 넣어 담백한 맛을 즐기는 요리에 써요. 그런데 우리 어머니가 끓여내는 간재미는 가오리류를 부르는 방언으로, 생물학적으로는 홍어와 가까운 연골어류예요. 모양부터가 가자미와는 아주 달라요. 몸 전체가 평평하고 넓은 마름모꼴이며, 가자미처럼 비늘이 있고 뼈가 딱딱한 생선이 아니라 몸 전체가 부드러운 오돌뼈, 즉 연골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래서 가자미는 뼈를 발라내고 살만 먹지만, 간재미는 뼈째 썰어 회무침으로 먹거나 탕으로 끓여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을 즐기는 것이 특징이예요.”

“와!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박학다식하세요? 마치 생물 수업을 들은 것 같아요.”

“아니예요. 우리 엄마 밑에서 매일 이렇게 생선을 손질하고 탕을 끓여내거나 무침을 하는 방법을 배우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거예요.”

“정말 시원하고 맛있어요.”

수아는 배가 고팠는지, 맛이 있어서 그러는지 몰라도 허겁지겁 간재미탕을 먹었다.


“할머니! 여기 막걸리도 한 병 주세요.”

“너 지난번에 과외비로 돈 생겼다고 한꺼번에 외상 갚았으니 이 술 주는 거여.”

“아이고! 엄마 영석이 학생 술맛 떨어지겠다. 제발 좀 그만해.”

“내가 이놈 이뻐서 하는 소린디 네년이 웬 간섭이여?”

수아가 까르르 웃었다.

할머니가 수아를 바라보며 눈을 찡긋했다.

"그런데 왜 홍어나 간재미는 막걸리와 같이 먹는지 궁금해요."

태종이가 다시 할머니 딸에게 물었다.

"홍어나 간재미가 막걸리와 유독 잘 어울리는 이유는 과학적인 궁합과 식감의 조화 때문이라더군요. 먼저 화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홍어와 간재미 같은 연골어류는 체내의 요소를 분해하면서 알칼리성인 암모니아를 배출한대요. 이때 특유의 톡 쏘는 맛과 향이 생기는데, 유기산이 풍부하고 산성을 띠는 막걸리가 이 알칼리 성분을 중화시켜 준답디다. 소주처럼 도수가 높은 술은 자칫 그 향을 더 강하게 부각시킬 수 있지만, 막걸리의 부드러운 산미는 암모니아의 자극을 적절히 다독여 입안을 개운하게 갈무리해 준다는 거예요. 그리고 식감 측면에서도 막걸리에 함유된 성분은 홍어나 간재미의 단백질을 일시적으로 응고시키는 역할을 하여, 살점을 더욱 쫄깃하게 만들고 오독오독 씹히는 연골의 식감을 극대화시켜준대요. 또한, 간재미탕이나 홍어의 진한 감칠맛 뒤에 남는 기름진 느낌을 막걸리의 탄산과 유산균이 말끔히 씻어내 주어 질리지 않고 계속 먹을 수 있게 도와준답니다."


“그런데 태종씨는 안녕하신가?”

수아가 영석에게 물었다.

“여! 역시 여기를 와야 영석이와 수아 씨를 만날 수 있다니까.”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태종이가 기가 막힌 타이밍에 들어왔다.

“Speak of devil and he shall appear” “맞지?”

태종이가 유식한 체를 했다.

“간재미탕에 막걸리라. 시험도 끝났겠다. 좋구나.”

“어서 드세요.”

수아가 태종이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었다.

“마침 잘 됐어요. 우리 오빠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지난번에 말씀 하신 수혁이 형님 건인가요?”

“네 맞아요. 우리 오빠 편지 내용이 영 마음에 걸려서요.”

수아는 영석에게 보여주려던 수혁의 편지와 자기가 쓴 답장을 태종에게 내밀었다. 태종은 수혁의 편지를 자세히 읽었다.

태종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수혁의 편지를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간재미탕의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태종의 안경알을 뿌옇게 흐렸지만, 그의 눈빛은 어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수아와 영석은 태종의 입술이 떨어지기만을 숨죽여 기다렸다.

“수아 씨, 수혁이 형님은 머리가 아주 비상한 분이죠? 심리학을 전공하셨으니 사람의 기저 심리를 읽는 데 도가 트셨을 테고.”

태종의 낮은 목소리에 수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오빠는 늘 말했죠. 진실은 문장 사이의 여백에 있다고. 그래서 이 편지가 더 무서워요. 오빠답지 않은 표현이 너무 많거든요.”


태종이 편지의 특정 구절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섞여 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한다’. 수아 씨, 이건 군대 내부의 보안사 ‘프락치’나 ‘감시자'를 뜻하는 겁니다. 10.26 사건 이후 군 내부 검열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격해졌다고 해요. 수혁이 형님처럼 서울대 출신의 이른바 '의식 있는 대학생' 사병들은 지금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 대상일 겁니다.”

영석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물었다.

“태종아, 그렇다면 지금 수혁이 형님이 위험하다는 거야?”

“위험하다기보다, 형님은 지금 수아 씨에게 '내 편지는 검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암호로 보내신 거야. '낯선 사람이 싫다'는 말은 그들과 엮이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는 뜻이고, '내 머리도 이제 늙어가나 보다'라는 말은 기억력이 감퇴했다는 게 아니라, 저들이 내미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일부러 모르는 척, 바보인 척 연기하고 있다는 의미지.”

수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막걸릿잔을 감싸 쥐었다.

“우리 오빠가 그렇게까지 힘들게 버티고 있는 줄 몰랐어요. 저는 그저 군 생활이 고되어서 그런 줄로만 알고.”

“수아야, 형님은 강한 분이야. 편지 끝에 ‘오빠는 잘 있다’라고 쓴 건, 수아 너만은 동요하지 말라는 마지막 방어선이야. 하지만 태종이 네 말이 맞다면 지금 군 상황이 정말 심상치 않다는 거네.”

영석의 말에 태종이 창밖의 어두운 와룡동 골목을 응시했다.

“아까 내가 말했지? 서빙고 쪽 바람이 비리다고. 군인들이 총구 돌리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야. 수혁이 형님이 목격하고 있는 그 ‘낯선 얼굴’들은 아마도 곧 벌어질 거대한 폭풍의 전조일지도 몰라. 군 내부가 들끓고 있다는 증거지.”

태종은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키고는 뼈째 익은 간재미 살점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다.


“수아 씨, 답장에 너무 구체적인 사회 정황은 쓰지 마세요. 수아씨가 쓴 ‘순대볶음’이나 ‘삼춘’ 같은 일상의 언어로만 채우세요. 형님은 그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가족의 안녕을 확인하며 버티실 겁니다. 그리고 영석아, 우리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이 간재미 뼈처럼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다가올 겨울 눈보라에 뼈도 못 추릴지 모르니까.”

수아는 태종의 조언대로 오빠에게 보낼 또 다른 답장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간재미탕의 칼칼한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가슴 속의 응어리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1979년 12월의 밤은 그렇게 간재미 뼈가 짓 씹히는 소리와 함께 깊어 가고 있었다.


저녁 7시가 지난 시각. 정희는 남대문 시장 근처에 외근을 나왔다가 곧바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그리고 버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 몸을 떨었다. 평소라면 퇴근 차량으로 붐벼야 할 도로는 기묘할 정도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한강대교 근처에 다다랐을 때, 정희의 눈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들어왔다. 거대한 궤도 차량들이 굉음을 내며 한남동 방향으로 질주하고 있었고, 대형 군용 트럭들이 서부전선에서 내려온 듯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도심 요충지를 장악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래? 전쟁이라도 난 거야?”

버스 안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민우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비린 바람’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무장한 군인들이 대검을 장착한 총을 든 채 주요 교차로를 차단하고 있었고, 차가운 금속성 궤도 소리가 서울의 밤공기를 찢어발겼다. 정희는 본능적으로 가방을 꽉 쥐었다. 민우가 떠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지금, 이 순간, 어딘가에 있을 그가 무사하기만을 간절히 빌었다.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클래식 음악만이 흘러나왔지만, 창밖의 서울은 이미 평화와는 거리가 먼 전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장항선 열차 안, 민우는 낡은 고시생 점퍼 깃을 바짝 세우고 창가에 머리를 기댔다. 무릎 위에는 두꺼운 형법 책 한 권을 올려두었지만, 눈은 자꾸만 객차 문 쪽을 향했다. 열차가 평택을 지날 무렵, 갑자기 열차 내 등이 깜빡이더니 헌병들과 정복 경찰들이 객차 안으로 들이닥쳤다.

“모두 신분증 꺼내세요! 검문 있습니다.”

민우의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그는 태연하게 책장을 넘기는 척했지만, 손끝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헌병은 민우의 앞에 멈춰 서서 날카로운 눈초리로 그의 얼굴과 주민등록증을 번갈아 보았다.

“학생입니까? 어디 갑니까?”

“예산에 있는 절로 공부하러 가는 길인디유.”

민우는 최대한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 덤덤하게 대답했다. 헌병은 민우의 낡은 가방과 법학 서적을 훑어보더니 말없이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헌병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민우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 창밖으로 어둠에 잠긴 들판이 빠르게 지나갔다. 지금 서울은, 그리고 정희는 어떻게 되었을까. 민우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아래 짓눌려가는 자신의 운명을 느끼며, 어둠 속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가는 열차에 몸을 맡겼다.


홍성집을 나온 영석과 수아 앞에는 영하 8℃ 이하로 떨어진 추운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태종은 “먼저 가볼게”라며 어둠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졌고, 두 사람만 남겨진 명륜동 골목은 가로등 불빛마저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삼춘! 태종 씨 말이 계속 귀에 맴돌아. 정말 이번 겨울이 아주 길어질까?”

수아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영석은 차마 대답하지 못한 채 수아의 언 손을 잡아 자신의 외투 주머니 속에 넣었다. 주머니 속의 온기는 간절했으나, 주변을 감싼 공기는 날카로운 칼날 같았다.

“수아야, 형법에는 ‘기대가능성’이라는 말이 있어.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적법한 행위를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느냐는 뜻이지. 지금 우리에겐 그저 무사히 겨울을 나는 것 말고는 다른 걸 기대하기 힘든 시간인 것 같아.”

영석은 쌍문동 까지 수아를 바래다주며 그녀의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었다.

“당분간 조심해. 학교도, 거리도 예전 같지 않을 것 같아.”

두 사람은 서로의 눈 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을 확인했다.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고, 1979년 12월 12일의 밤은 서울의 모든 평온을 삼키며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계절의 겨울이 아닌, 한 시대의 긴 겨울이 시작되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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