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12월 13일 목요일, 방송에서는 오늘 날씨가 대체로 흐린 가운데 약한 눈이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최저 기온은 영하 약 1.7℃, 최고 기온은 약 3.8℃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희는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서둘렀다. 영석이의 아침을 챙겨놓고 오목교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추워서 자꾸 외투 깃을 올리게 된다. 신문 가판대를 흘끗 보니 조간인 조선일보는 ‘정승화 총장 연행 조사’, 서울신문은 ‘정승화 계엄사령관 연행’, 경향신문은 ‘정승화 육군 총장 연행 조사’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큰 제목 밑에는 부제로 ‘대통령 시해 사건 관련 혐의’, ‘계엄사령관 대리에 이희성 장군’이라는 제목이 보였다. 정희는 지난밤 한강대교를 건널 때 보았던 군용 트럭 행렬과 교차로마다 서있던 무장 병사들, 밤하늘을 갈라놓던 헬기 소리가 떠올라 간밤에 무슨 큰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희는 100원을 주고 조선일보 한 부를 샀다. 버스에 앉아 신문을 읽기 시작했으나 제목과 달리 구체적인 내용은 빈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가락은 가볍게 떨고 있었다. 무서운 일이 닥치고 있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버스 안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무표정한 듯하지만, 사실은 궁금해 죽겠다는 듯 정희가 읽고 있는 신문 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정희야! 라디오 틀어봐”
허겁지겁 관리부 사무실로 들어서던 이상우가 사무실 책상을 닦고, 일할 준비를 마친 후, 막 자리에 앉은 정희에게 외쳤다.
“큰일이 일어났는가 보다.”
그의 손에도 조선일보가 들려 있었다.
정희가 KBS 라디오를 틀자, 아나운서는 어젯밤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짤막하게 보도하면서 오전 9시에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공식 담화를 중계할 예정이라고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정희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에 권력 찬탈이 일어난 것 같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자기 상관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했다는 것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 일어났다는 것이지. 하극상이야. 이제 세상이 어떻게 될지 가늠이 안 된다.”
회사 내부의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이다. 그러나 무거운 침묵 속에서도 사람들은 무언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이미 지나갔고, 그 사실을 정확히 말할 수 없다는 것. 그 침묵이야말로, 그날 서울을 뒤덮은 가장 두꺼운 안개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전 9시에 노재현 국방부 장관의 담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주요 내용은 “군 수사기관이 12일 오후 7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공관으로 출동했을 때 공관경비원과 경미한 충돌이 있었으나 정 총장의 신상에는 이상이 없다.”라는 내용이었다. 또한 10·26 사건 연루 혐의로 정승화 총장과 일부 장성을 연행·구속했으며, 이희성 육군 대장을 새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아울러 노태우 9 사단장은 수도경비사령관, 정호용 50 사단장은 특전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는 소식도 들어 있었다.
민우는 무사히 수덕사에 도착해서 머물 곳을 찾기 시작했다. 사찰 주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수덕사 입구에 있는 ‘수덕여관’이 하나의 선택지가 될 것 같았다. 이곳은 고암 이응노 화백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하며,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화가이자 작가, 시인, 조각가,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 언론인으로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던 나혜석이 머물기도 한 역사적 장소라고 했다. 그리고 수덕여관의 초가 건물과 부속 건물들에 딸린 방들이 고시생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그 외에도 사찰 내부의 일부 요사채가 고시생들에게 개방되기도 하는데, 그들은 주로 큰 절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한 산내 암자나 요사채의 구석진 방을 선호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이야기를 듣다 보니 최근 수덕사를 비롯한 사찰들이 수행 환경보호를 위해 고시생들을 내보내는 추세라고 하였다. 그래서 민우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주워들을 수 있고, 유사시에 버스나 택시를 탈 수 있는 곳으로 수덕여관을 골랐다. 마침 비어 있는 방이 두어 개 있어 하루 세끼 식사비를 포함해 월 4만 원에 계약을 마치고 입주했다. 가까운 곳에 부모님이 계시지만 갈 수 없고 정희에게도 연락을 할 수 없으니 미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영석도 집에서 TV로 간밤에 군사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태종이의 말이 생각나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서둘러 수아를 만나기로 했다. 수아에게 전화를 걸어 혜화동에 있는 ‘혜화칼국수’에서 만나기로 한 후, 태종이에게도 전화를 걸어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지 물었다. 태종이는 아직 씻지도 않았다며 점심시간을 피해 오후 2시쯤 만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해서 다시 수아에게 연락을 해 2시에 보기로 했다.
1979년 12월 13일 오후 2시 어름에 영석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혜화여고 가는 방향 우측의 야트막한 언덕길 초입에 있는 ‘혜화칼국수’ 집 앞에서 수아와 태종이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맞춰 수아가 도착했고, 태종이는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셋은 단층 한옥을 개조한 낡은 칼국수집 안쪽 방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멸치나 고기 육수 대신 뽀얀 사골 국물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는 곳이다. 평소라면 시험을 마친 학생들이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의 웃음소리로 북적였겠지만, 오늘만큼은 사기그릇 부딪히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울 만큼 가라앉아 있다.
수아는 오빠 수혁의 편지를 상 위에 올려두었다. 뽀얀 칼국수 국물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영석이의 안경알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는 뿌연 시야 속에서 수아가 꺼내놓은 수혁의 편지에 쓰여 있는 문장들을 다시금 훑었다.
‘낯선 사람이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한다.’
수아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심리학을 전공한 수혁은 평소 “낯선 이의 호의만큼 잔인한 감시는 없다”라고 말하곤 했다. 영석은 그 문장이 단순한 일화가 아니라, 수혁이 주위를 맴도는 낯선 그림자 즉 감시자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했다.
“삼춘, 내가 아는 오빠는 지금 편지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어. 자기가 누군지 잊어버린 척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영석은 고명으로 올라간 양념장을 국물에 풀어 하얀 면발을 건져 올렸다.
“태종아.”
영석이 나직이 불렀다. 태종은 수육 한 점을 집어 입에 넣고는 오랫동안 씹었다.
“나도 이제 싸움 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정상적이지 않아. 수혁이 형님 같은 사람들이 저렇게 싸우고 있는데, 나는 도서관에서 법전이나 뒤적이며 신선놀음하고 있는 것 같아서 괴로워.”
태종은 씹던 고기를 삼키고는 천천히 얼굴을 들어 영석을 쳐다보았다.
“영석아, 혜화동 칼국수 국물이 왜 이렇게 진한 줄 아냐? 뼈가 다 녹을 정도로 밤새워 끓였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나가면, 그놈들이 네 뼈를 사골처럼 고아버릴지도 몰라. ‘기대가능성’? 그따위 법조문이 탱크 궤도를 멈출 수 있을 것 같아? 택도 없어.”
수아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말고 ‘쉿’ 소리를 내며 검지로 입술을 가렸다.
사실 이 집은 점심시간이 지나서 망정이지 식사 시간에 사람들이 바글바글할 정도로 인기가 있는 집이고, 50미터도 안 되는 곳에 혜화파출소가 자리하고 있다. 게다가 방이 아주 작아서 옆 사람의 숨소리까지 들릴 지경이다.
“목소리를 낮춰요.”
그러나 영석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눈치다.
“멈출 순 없겠지. 하지만 적어도 궤도가 지나간 자리에 핏자국은 남겨야 할 거 아니냐. 그래야 나중에 수혁 형님을 만났을 때, 나는 밖에서 밥만 먹은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
영석의 말에 수아의 손등 위로 굵은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국물 속으로 떨어진 눈물은 파문을 일으키며 금세 사라졌다.
태종은 주머니에서 마지막 한 개 남은 담배를 꺼내더니 “돛대네”라고 하며 다시 담뱃갑에 집어넣었다. 영석은 친구들이 마지막으로 한 개비만 남은 담배를 ‘돛대’라고 하는 이유가 아마도 담배 갑을 열었을 때 다른 담배는 다 비어 있고, 마지막 하나만 길쭉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망망대해의 외로운 돛대를 닮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는 일본어 ‘돗떼오키(とっておき)’ 즉 ‘가장 아끼고 소중한 것’을 의미하며, 마지막 남은 한 개비를 특별히 아끼는 의미로 사용되다가 변형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식당 안은 금연이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무거운 금기가 혜화동 전체를 짓누르고 있었다.
“수아 씨, 수혁이 형님한테 답장 쓸 때 ‘칼국수 잘 먹었다.’, ‘고기가 연하더라.’라고만 쓰세요. 형님은 그 말 한마디로 두 사람이 ‘잘살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겁니다. 오빠를 걱정하는 이야기나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적 상황 등에 대해서는 절대 쓰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영석이 너 싸움 속으로 들어갈 거라면 구두 말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묶어라. 12월의 아스팔트는 얼음보다 미끄럽고 봄날의 꽃샘추위는 여전히 겨울의 칼날을 숨기고 있으니까.”
식당을 나선 세 사람은 혜화동 로터리의 국민은행 옆 '궁다방'에서 커피를 마셨다. 다방을 나서는데 혜화동 성당 쪽에서 오후 6시 저녁 삼종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지만, 그것은 축복이라기보다 불길한 전조처럼 들렸다. 태종이를 보내고 영석은 수아의 언 손을 잡아 자기 외투 주머니 속에 넣었다. 혜화동의 긴 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것은 칼국수의 뽀얀 국물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지독하게 시린 겨울의 서막이었다. 수아는 영석의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을 꼬물꼬물 움직여 영석의 손바닥에 ‘사랑해’라고 썼다. 그리고 의정부로 가는 13번 버스를 타고 쌍문동까지 갔다. 수아네 집까지 가는 어스름한 골목에서 수아는 까치발을 하고 영석에게 매달렸다. 수아는 영석이가 소극적인 것에 대해 항상 불만이었다. 남자가 좀 적극적으로 대시해 줬으면 좋겠는데 영석은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다. 그러나 사실 영석이가 남성적인 면이 없거나 다른 남성에 비해 여성에 대하여 욕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숫기가 없고 지나치게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이다. 수아는 영석의 이런 면이 한없이 좋다가도 어떤 때는 짜증이 나기도 했다.
“삼춘은 내가 이러는 거 싫어?”
영석은 가슴이 쿵쾅거리고 숨을 쉬기가 곤란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영석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수아의 입술이 영석이의 입술을 막아버렸다. 달착지근한 수아의 입냄새가 영석을 극도로 자극했다. 영석이가 수아를 안으려는 순간 수아가 영석에게서 떨어졌다.
“안녕! 조심해서 가.”
수아가 자기네 집을 향해 마구 뛰어갔다.
“곰소댁! 오늘은 최사장허고 술 한 잔 마시는 건 어떨까?”
고창댁이 좌판을 정리하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여. 나도 고마움을 어쩌코롬 표현 헐까 고민 중인디 당최 방법을 모르겄응게 기회만 보고 있던 참이여.”
“자기 집을 담보 잽히고 치료비를 마련해 준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 당가?”
“맞어! 눈물 나게 고맙지.”
“그라믄 오늘 같이서 쐬주 한잔 허자고 혀봐. 내가 초반에 쬐까 분위기를 잡아 놓고 내뻔지고 가버릴 텡게 그다음에는 곰소댁이 최사장을 잡아먹든 구워 먹든 알아서 혀.”
고창댁이 최사장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능글맞은 표정을 지었다.
“언능 가서 숙희 밥도 채려 줘야 하는디.”
“앗따! 걱정도 팔자다. 정희가 오죽 알어서 허겄는가?”
“그러겄지? 그 남매헌티도 빚을 너무 많이 졌네. 정말로 고마운 사람들이여.”
“맞어. 그런 정은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일이여.”
“내가 가서 최사장헌티 술 마실 시간 있는지 물어보고 올팅게 기다려.”
평소 좌중을 휘어잡을 정도의 여장부인 곰소댁도 천생 여자였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최사장이 낯설어 보이고 그 앞에 선뜻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곰소댁이 ‘고향순대국밥’집을 흘끗 바라보니 고창댁이 최사장에게 뭐라고 하는 것 같고, 그때 최사장이 곰소댁이 있는 곳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러나 곰소댁은 평소와 달리 그의 눈을 피하면서 주변 정리를 하는 척했다.
“오라버니! 이 고마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랑가 모르겄소.”
“아니 내가 무슨 일을 했다고 그려?”
“최사장이 집 담보 잽히고 치료비 마련했다고 허닝게 그런 거 아녀?”
고창댁이 중간에 끼어들며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노력했다.
양은 쟁반 위에는 투박하게 썰어낸 머리 고기 한 접시와 피순대 한 접시,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두부, 그리고 곰소에서 올라온 짭조름한 어리굴젓 등이 놓였다. 최 사장은 이미 두어 잔을 마신 탓에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소주병을 들어 고창댁과 곰소댁의 잔을 채웠다. 맑은 액체가 잔을 채우는 ‘쪼르르’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는 밤이다.
“대통령이란 놈은 지 부하헌티 총 맞어 죽어 불고, 그 밑에 있던 놈들이 시방 권력 싸움을 허는가 본디, 그놈들 눈에 우리 같은 하찮은 백성들이 들어오겄어? 엊저녁에 총싸움이 벌어졌다는 말도 들리는디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한마디도 안 허는 걸 봉게 박정희보다 더 고약한 놈이 나타낼 모냥이여. 그런디 내 마음은 그냥 평안혀. 곰소댁 손꾸락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응게 말이여. 얼매나 기쁜 일이여?”
최 사장은 젓가락으로 두부 한 점을 집으려다 멈칫하더니, 툭 던지듯 말을 이었다.
“나 말이여. 사실 겁이 좀 나. 국밥이 잘 팔려서 돈푼이나 맨지면서 살았지만, 저 시퍼런 총칼 든 놈들이 밀고 들어와서 우리 같은 서민들 옥죄면 내가 가진 게 다 무슨 소용이겄어? 내 평생 일궈온 것들이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까 봐, 그게 무서워서 잠을 못 잔단 말이여.”
항상 당당하던 최 사장의 어깨가 처음으로 작아 보였다. 곰소댁은 말없이 그의 잔에 술을 다시 채웠다. 그리고 그녀의 투박한 손으로 최 사장의 손등을 가만히 덮었다.
“오라버니, 세상이 뒤집어져도 밥때 되면 배 고픈 법이고, 겨울 가면 봄은 오는 법이여. 나 같은 여편네가 뭘 알겠소만은, 풍랑 세게 친다고 바다가 없어지는 건 아녀. 그냥 지나가는 바람일 거여. 오라버니 바쁠 때는 나랑 고창댁이 도와 줄팅게 아무 걱정 마셔. 그라고 한없이 고맙소. 어찌코롬 이 은혜를 갚아야 헐지 모르겄어.”
곰소댁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워메! 시방 우는 거여?”
고창댁이 곰소댁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곰소댁은 부끄럽다는 듯이 고창댁의 팔을 툭 치며 얼른 눈물을 닦았다.
“내가 가만히 보고 있응게 두 사람이 시방 신파극을 쓰고 있는디 눈 뜨고 볼 수가 없구먼. 아이고! 오글거려.”
고창댁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사장님 나는 갈라요. 둘이서 만리장성을 쌓든 염병을 하든 나는 모르겄으니 이만 가야 겄네. 아무리 생각혀 봐도 내가 방해가 되는 것 같단 말이여.”
고창댁은 잘 짜인 각본처럼 적절한 타이밍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근디 내가 일어난다는디 붙잡지도 않는단 말이여?”
“앗따! 징허게도 오래 앉아 있었으믄서 언능 안 가고 뭐 한다냐?”
곰소댁이 ‘꽥’ 소리를 지르자 고창댁은 정신없이 내빼고 둘은 한참이나 웃었다.
두 사람의 술자리는 고창댁이 떠나고 난 후에도 두어 시간여나 더 계속되었다.
“근디 숙희는 어쩌코롬 헐라고 이러고 있당가 이제 일어나야 헐 것 같은디?”
“오라버니! 숙희가 걱정이 되쇼?”
“당연하지. 그 어린 것이 얼매나 엄마를 기대리고 있을 것이여?”
곰소댁은 최사장의 말에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고창댁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묘한 정적이 감돌았다. 연탄난로 위에서 끓고 있던 양은 주전자의 김이 몽글몽글 피어올라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더욱 밀도 있게 만들고 있었다. 곰소댁은 남은 소주를 자신의 잔바닥에 조금 더 따랐다. 그녀의 손은 최 사장의 온기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 화끈거렸다.
“오라버니, 저어... 숙희 말이여.”
곰소댁이 짐짓 술잔 끝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뗐다. 최 사장은 붉게 상기된 얼굴로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숙희가 왜? 뭐 필요한 거라도 있당가?”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오라버니 보시기에 우리 숙희가 어쩌요? 애비 없이 자란 자식이라 정이 고플 텐디, 오라버니만 보면 그렇게 좋아라 허니 혹시라도 오라버니 귀찮게 허는 건 아닌지 마음이 쓰여서 그라제.”
최 사장은 허허, 하고 넉살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귀찮기는 무슨! 숙희 그놈, 영특하고 눈매가 깊은 게 꼭 곰소댁 닮았더만. 내 앞을 지나갈 때마다 ‘아저씨’ 하고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 맘속에 맺혔던 응어리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여. 집에 들어가면 아무도 없는 집구석이라 마음이 허한디 숙희 같은 딸내미 하나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겄다 싶지.”
그의 진심 어린 대답에 곰소댁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술기운인지, 아니면 서러운 세월 끝에 만난 희망 때문인지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숙희가 지 친애비 사고로 죽어 불고, 정선생을 지 아비로 알고 살았는디 그마저 죽어부링게 에미인 나로서는 가슴이 아프제. 근디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어째서 나 같은 여편네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준당가? 집까지 담보 잡혀가며 내 수술비를 대준다는 게, 그게 보통 인연 갖고는 안 되는 일 아니여?”
곰소댁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소주를 한 모금 들이켰지만, 눈동자는 최 사장의 입술 끝에 머물러 있었다. 최 사장은 잠시 잔을 내려놓고 투박한 손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시방 정말 몰라서 묻는 거여?”
“내가 무식해서 그런가, 당최 오라버니 속을 모르겄어. 그냥 불쌍한 과부 도와주는 적선인가 싶기도 허고.”
“적선? 이봐 곰소댁! 나도 남자여.”
최 사장이 짐짓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의 입에서 훅 끼치는 술 냄새와 함께 그의 뜨거운 시선이 곰소댁의 얼굴에 꽂혔다.
“나는 장사꾼이여. 손해 볼 짓 안 허는 장사꾼이라고. 근디 내 마음이 곰소댁헌티 가 있는 걸 어쩌란 말이여. 시장 바닥에서 억척스럽게 소금기 묻혀가며 사는 곰소댁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남은 생을 저 등짝에 기대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해봤단 말이여.”
“워메! 우리 오라버니 술이 쪼까 취한 것 같은디?”
사실 최사장은 술이 취해서 평소 같으면 할 수 없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러나 최사장의 직설적인 고백에 곰소댁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녀는 괜히 어리굴젓 접시를 젓가락으로 헤집으며 나직이 읊조렸다.
“손꾸락도 이 모냥이고, 배운 것도 없는 투박한 여편네인디. 뭔 볼 것이 있다고 그런당가?”
곰소댁은 최사장의 마음을 안 것이 기쁘면서도 말은 자꾸 엇나갔다.
“오늘 나도 취허고 곰소댁도 취헌 것 같네. 어서 택시 타고 집에 가세. 내가 데려다주고 올 거여. 숙희가 걱정이 돼야서 안 되겄어.”
곰소댁이 참았던 눈물을 툭 떨어뜨렸다. 소주잔에 떨어진 눈물이 파문을 그리며 섞여 들어갔다. 곰소댁이 와락 최사장을 껴안고 입술을 찾았다. 곰소댁의 눈물 맛인지 최사장이 순대 찍어 먹은 소금맛인지 찝찔한 맛이 나는 키스였지만 둘은 너무나 행복했다.
최 사장은 품 안에 뛰어든 곰소댁의 마른 어깨를 부서지라 감싸 안았다. 입술 끝에 닿은 찝찔한 맛은 분명 곰소댁의 눈물이었으나, 그에게는 그 어떤 비싼 술보다 달콤하고 진했다. 시장 바닥의 거친 소금바람에 절여지고, 평생을 자식과 생계를 위해 닳아버린 여자의 고단함이 그 짧은 입맞춤 속에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최 사장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곰소댁의 젖은 얼굴을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이제 울지 마소. 곰소 소금이 아무리 짜다 해도, 내 앞으로 곰소댁 눈에서 이보다 더 짠 눈물은 안 나오게 할라니까.”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서 있었다. 커튼이 내려진 최사장네 가게만 불이 켜져 있을 뿐 시장은 이미 고요하다. 내일 아침 신문에는 또 어떤 무시무시한 활자들이 박힐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작은 순대국밥집 안에서만큼은, 두 사람을 잇는 공기가 유화 물감처럼 끈적하고 견고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최 사장은 곰소댁의 외투 깃을 여며주고는, 그녀의 거친 손을 자신의 외투 주머니 속에 깊숙이 집어넣었다.
“어서 가세. 숙희가 기다리는 집으로. 내가 당신허고 숙희, 평생 뜨끈한 아랫목에서 자게 해줄라니까.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동물이여. 둘 이상이 될 적에 인생은 그지없이 찬란할 수 있는 거여. 혼자살믄 잠시는 편하겄지. 그러나 얼마 안 돼야서 징그럽게 외롭다는 걸 알게 된단 말이시.”
국밥집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자, 방송 예보대로 영하 6℃의 차가운 찬바람이 두 사람의 얼굴을 훅하고 덮쳤다. 주머니 속에서 맞잡은 두 사람의 손등 위로, 1979년 12월의 그 지독하게 시린 겨울을 버텨낼 가장 따뜻한 불씨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것은 거창한 혁명보다 질기고, 총칼보다 강한 민초들의 생명력이었다.
지난해 8월 14일부터 올린 글이 딱 200개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일 모두 이루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