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by 서완석

한 살의 새해 첫날은 기억 너머에 살고, 열 살의 새해 첫날은 손바닥을 펴기만 해도 온 세상을 쥘 것 같았다.


스무 살의 새해 첫날은 눈부신 해방의 서막이었으나 정체 모를 불안이 잉크처럼 번져가는 첫 페이지였다. 서른 살의 새해 첫날, 태양은 뜨거웠던 치기를 식혀 서늘한 생활인으로 나를 길들였고,


마흔 살의 새해 첫날에 이르러서야 세상은 흑백의 대립이 아닌 수만 갈래 회색의 결로 이루어진 비단임을 알았다. 무언가 쟁취하고자 팽창했던 손등의 핏줄이 비로소 수축했다.


쉰 살의 새해 첫날, 세상의 소음에서 한 걸음 물러나니 삶의 빈터에 고인 적막이 비로소 사랑스러웠고, 예순의 새해 첫날에 이르러서야 저무는 노을을 따라 내려가는 길의 곡선이 아름다웠다.


오늘, 올해의 새해 첫날은 그 무엇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것, 그 무거운 고요 하나로 나는 이미 충분하다. 다만, 내년의 새해 첫날은 휴대폰에 저장된 친구들의 이름 위로 눈물 고이는 소식이 당도하지 않기를 빌뿐이다.


그러나 보라, 오늘 다시 눈부신 시작이다. 멈추면, 내일은 낡은 사전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잠들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서로의 그림자를 밟지 못하더라도, 이 고요한 궤도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조용히 빛나는 별 하나로 남겠다. 찬란한 나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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