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어따! 우리 숙희 아녀? 엄마 보러 왔능가? 아이고 이쁜 새끼!”
곰소댁이 잠시 화장실에 간 새에 시장을 찾아온 숙희를 고창댁이 반갑게 맞이했다.
“울 엄마가 오늘 학교 끝나고 오라고 했어요. 엄마랑 같이 집에 가자고 했어요.”
“그려, 그려. 아먼 엄마랑 같이 갈 수 있다면 좋은 일이제. 근디 밥은 먹었냐?”
“아니요. 배가 고파요.”
숙희가 자기 배를 만지며 대답했다.
“느그 엄마 화장실 갔응게 곧 올 것이여. 쪼까 기다려야 쓰겄다.”
“근디 뭐 먹고 잪으냐?”
“순댓국이요.”
“아따! 지난번에도 순댓국 먹었는디. 너는 질리지도 않냐?”
“아니요? 제일 맛있어요. 선희는 맨날 순댓국 먹고 싶다고 징징대요.”
“워메, 그라믄 델꼬 오제 왜 혼자 왔다냐?”
“엄마가 오늘은 저만 오라고 했어요.”
“그라믄 느그 엄마가 무신 꿍꿍이속이 있는 갑다.”
“꿍꿍이속이 무슨 말이에요?”
숙희가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고창댁을 바라봤다.
“아니, 아니, 그냥 좋은 말이여. 느그 엄마가 너를 사랑한단 말이여.”
당황한 고창댁이 짐짓 딴전을 부리며 둘러댔다.
“워메! 내 새끼 왔능가?”
“엄마!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화장실 다녀왔제.”
숙희가 달려들 듯 자기 엄마 품에 안겨 어린양을 했고, 곰소댁은 그런 딸이 예뻐 죽겠다는 듯이 품에 안았다.
“근디 어쩐 일로 숙희를 오라고 했당가? 딸허고 오랜만에 같이 집에 들어갈라고 그러는 거여?”
고창댁은 뭔가 짚이는 구석이 있었지만, 모르는 체하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곰소댁이 오늘 아침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지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였다.
“고창댁. 오늘은 내가 숙희 허고 헐 말이 있응게 먼저 들어 가소, 잉?”
“알었어, 내가 오랜만이 모녀가 데이트를 헌다는디 방해허먼 되겄능가?”
최 사장 네 가게 뒷방, 연탄난로가 벌겋게 달아오른 밤이었다. 곰소댁과 최 사장과 숙희가 연탄난로 앞에 둘러앉았다. 곰소댁은 투박한 손으로 자꾸만 앞치마를 만지작거렸고, 최 사장은 괜히 헛기침을 하며 숙희의 눈치를 살폈다. 숙희는 배가 고팠는지 순대국밥을 신나게 먹는데 두 사람은 그런 숙희 모습을 봤다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가 하며 초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숙희야, 엄마가...”
곰소댁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지 마른침을 삼켰다.
“엄마! 왜?”
숙희가 오소리감투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으려다 말고 곰소댁을 쳐다봤다.
“오라버니! 소주 한 병만 주쇼.”
“그려. 두깨비 마실 거제?”
최사장이 허둥지둥 소주 한 병을 들고 와서 곰소댁 앞에 놓인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자기 잔에도 따랐다.
“자, 건배 허세.”
곰소댁과 최사장이 소주 한 병을 급하게 다 마셨을 즈음 숙희도 순대국밥을 다 먹었다. 곰소댁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숙희야! 이 에미가 오늘 힘든 말을 꺼내야 쓰겄는디 네가 괜찮을랑가 모르겄다. 네가 너의 솔직한 맴을 야그 해주면 좋겄고, 나는 무조건 네 의견을 따를 것이여.”
최 사장의 목젖이 꿀렁 움직였다. 오른손을 들어 자기 머리를 한번 만진 최 사장은 다시 목덜미에 난 땀을 닦았다.
“엄마! 내가 먼저 말을 해도 될까? 엄마는 내가 몇 살인지 알아?”
“설 쇠았응게 열두 살이지. 아무러면 내가 우리 딸 나이를 모르겄능가?”
“선희가 그랬는데 나이 열두 살 먹은 계집아이는 사내아이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했어.”
“근디 네가 어째서 이러코롬 밑자락을 까는 거여?”
“엄마! 이 아저씨 사랑하지?”
“워메, 워메, 이게 뭔 소리당가?”
“그럼 아니란 말이야?”
숙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사람을 쳐다보고 두 사람은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야가 시방 뭔 소리를 하는 거여?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사랑이여?”
곰소댁이 짐짓 손사래를 치며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최 사장은 홧홧해진 얼굴을 식히려는 듯 남은 술잔을 입에 털어 넣었으나 목구멍이 뜨거워져 큼큼 소리만 냈다.
숙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른스러운 눈빛으로 최 사장을 쳐다봤다.
“아저씨, 우리 엄마가 우리 두 번째 아빠를 우리 집에 데리고 와서 처음으로 술 마신 날도 저렇게 얼굴이 빨개졌었거들랑요.”
“아따! 이놈의 가시낭년이 못 허는 소리가 없네. 네가 뭣을 안다고 그래 쌌냐?”
“그리고 울 엄마는 술 마시고 기분이 좋으면 코맹맹이 소리를 하는데 아빠 앞에서 코맹맹이 소리를 하며 취해서 먼저 뽀뽀를 해버렸어요.”
“웜마. 네가 봤냐?”
곰소댁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손사래를 치며 최사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숙희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엄마! 나 그때 안 자고 있었어.”
곰소댁이 더 이상 아무 말도 없이 소주잔에 담긴 술을 입에 털어 넣었고, 최사장도 술잔을 들어마셨다.
“아저씨! 우리 엄마 수술비 아저씨가 해준 거 맞죠? 고창댁 아줌마가 다 말해줬어요. 세상천지에 자기 집까지 잡혀서 남의 다친 손 고쳐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냐고 하셨어요? 그건 사랑 아니면 미친 사람이나 하는 거래요.”
최 사장이 멋쩍게 웃으며 숙희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칫했다.
“숙희야, 미친 게 아니라 내가 네 엄마한테 빚진 게 많아서 그런 거여. 마음의 빚 말이여.”
“아저씨! 그럼 그 빚 우리 집에서 살면서 갚으세요. 나랑 엄마랑 아저씨랑 셋이서 국밥 말면서 살면 되잖아요.”
곰소댁은 참았던 눈물이 툭 터졌다.
“이 가시내야, 너는 어쩌코롬 에미 속을 다 꿰뚫고 있냐. 오라버니, 들었소? 내 딸년이 요로코롬 야무지단 말이요.”
최 사장은 숙희의 작은 손을 덥석 잡았다.
“오냐, 숙희야. 내가 이 빚은 평생 맛난 거 사주고, 너 공부 가르치고, 네 엄마 웃게 해주는 걸로 갚으마. 이제 아저씨라고 부르지 말고, 뭐시냐... 거시기, 좀 쑥스럽기는 허다만 천천히 생각혀보자.”
“네! 아빠!”
숙희가 기다렸다는 듯 외친 말에 최 사장의 가슴이 울컥 내려앉았다. 1980년의 잔인한 봄바람 속에서도, 시장통 구석진 국밥집 뒷방에는 비로소 튼튼한 울타리 하나가 세워지고 있었다.
정희는 오늘도 일할 맛이 나지 않았다. 민우로부터 소식이 끊겼고 연락할 방법도 없기 때문이다.
“그 새끼 말이야. 지금 경찰이 찾고 있으니 곧 붙잡힐 거야. 아이고! 이 쥐새끼 같은 놈이 나를 감쪽같이 속인 생각을 하면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어. 그러니까 정희 너에게 직원 동태를 철저히 감시하라고 했잖아.”
관리부장은 분을 삭일 수 없다는 듯이 책상을 치기도 하고, 창밖을 노려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보고 있던 신문을 박박 찢기도 했다. 정희는 그런 모습을 보면 불안해서 사무실에 앉아있는 것이 고역이었다.
“이놈의 새끼, 잡히기만 하면 내가 가만히 두나 봐라.”
“그 새끼가 사내 직원들에게 어떤 공작을 벌였을지 모른단 말이야.”
“정희 너는 아무 눈치도 채지 못했단 말이야?”
“부장님. 아시다시피 그 사람이 베어링 문제로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던 때를 빼고는 제가 그 사람을 볼 일이 없잖아요? 그리고 그 사람은 생산동에 근무하는 사람인데 제가 그 사람을 감시하고, 감독하는 일이 어디 가당키나 한 일인가요?”
정희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도대체 왜 그러냐는 듯이 일부러 최대한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중정 사람들이 그놈과 내부에서 내통한 자가 있다는 거야. 나한테 그놈을 찾아내라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부장님처럼 경험 많고 두뇌가 명석하신 분이나 알 수 있는 일이지 저 같은 말단 직원이 어떻게 알겠어요.”
“여하튼 찾아봐. 해직된 여공들이 재판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는 거야. 중정 사람들은 김성태라는 놈, 아니 함민우라는 놈이 그런 일에 연루되어 있다고 믿고 있어. 그런데 생산동에 근무했던 놈이 우리 회사의 은밀한 정보를 어찌 알겠어? 그게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관리부장은 정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서 붙잡혔으면 좋겠네요.”
정희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한편 민우는 수덕여관 주인이 읽은 신문을 얻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하루일과다.
아침 신문 1면에는 굵은 활자로 “국가 안정과 질서 확립 시급”이라는 제목이 박혀 있었다. 정치면 하단에는 각 정당의 재편 움직임을 전하는 짧은 기사들이 붙어 있었지만, 그 문장은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 해직된 언론인들의 자리를 대신한 새 기자들의 문체는 지나치게 조심스러웠고, 단어 하나하나가 군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다듬어져 있었다.
사설에는 “혼란 속에서도 국민이 냉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문장이 반복되고 있었다. 거리에서는 대학가의 집회가 해산됐다는 짤막한 소식이 실렸지만, 사진 한 장 없이 활자만 남아 있었다. 국제면에는 미국의 대선 예비경선 소식이 실렸고, 경제면에는 ‘화폐 안정’과 ‘수출 회복’이라는 긍정적인 제목이 달려 있었으나, 기사 중간에는 ‘내수 침체’, ‘고용 불확실’ 같은 단어들이 씌어 있었다. 신문을 덮자, 잉크 냄새 사이로 묘한 정적이 피어올랐다. 마치 세상이 숨을 죽인 채, 다음 날 무언가 다가올 것을 기다리는 듯했다.
“신문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생은 사법고시 준비한다고 혔지?”
“네 그렇습니다만”
“다른 게 아니라 요즘 갑자기 덕산파출소 수덕사 지소에 근무하는 순경이 와서 수상한 사람을 꼭 신고하라고 하더란 말이여.”
“수상한 사람이라뇨?”
“대학 다니다가 노동 현장에 뛰어든 사람을 ‘학출’이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불순분자’라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 ‘위장취업자’라 했던가? 아무튼 그런 사람들이 외딴 산사로 숨어 들어와 있을 수도 있다고 철저히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했다는 거여.”
민우는 '학출'이 '학생운동권출신'의 줄임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여관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는 외딴 산사는 아니잖아요.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붐비는데?”
“그려서 나도 그런 사람이 우리 여관에는 없다고 혔지. 우리 여관에는 고시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닌께 절대로 방해허면 안 된다고 혔어. 그러니까 그냥 가더구만 그랴.”
“그 사람들이나 나나 서로 내남없이 지내는 사이닌께 서로 믿고 사는 것이여.”
“그럼요. 이번 사법고시는 합격자 정원이 대폭 늘어서 300명 시대가 되었어요. 그리고 1차 시험이 4월 20일이고, 2차 시험은 7월 20일이에요. 따라서 고시생들은 아주 민감한 시기거든요.”
“나야 우리 여관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책무가 있는 거여. 내가 어련히 알아서 허겄는가. 공부나 열심히 허소.”
“네 알겠습니다.”
방으로 돌아왔지만 여기도 안심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민우는 셈법이 아주 복잡해졌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고 검은 뿔테 안경까지 쓰고 있어서 본래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려웠지만, 민우의 불안은 여전했다.
1980년 4월의 어느 나른한 오후였다. 쌍문동 수아네 집 마당에는 개나리가 노란 폭죽처럼 터져 있었고, 수아 어머니는 아들 수혁이 휴가 나오면 먹이겠다며 마당 평상에서 정성스레 나물을 다듬어 말리고 있었다. 햇살은 평화로웠고, 라디오에서는 통행금지 해제 논의에 대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평화를 찢어발긴 것은 거실에서 울린 전화벨 소리였다.
“따르릉, 따르릉”
유난히 날카롭고 집요한 울림이었다. 수아가 손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쌍문동인데요.”
수화기 너머에서는 지지직거리는 기계음과 함께 낯설고 딱딱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는 ○○부대 인사계입니다. 이수혁 상병 댁입니까?”
“네, 맞는데요. 무슨 일이세요?”
수아는 목구멍에서 갑자기 ‘훅’하고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듯하더니 속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수아의 가벼운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수아의 고막을 칼로 베어내는 듯했다.
“이수혁 병장이 오늘 오전 11시경 부대 내에서 사망했습니다. 곧 시신 안치와 절차 안내를 위해 간부들이 방문할 예정입니다.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네, 뭐라고요?”
수화기를 들고 있는 수아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얘지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전화기 속에서 계속 사람의 소리가 들리더니 뚝하고 끊겼다.
마당에서 나물을 다듬던 어머니는 수아가 전화받는 소리가 들리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쿵 소리가 나고 더 이상 아무 소리가 안 들리니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졌다.
“수아야, 왜 그러냐? 수혁이 전화냐? 오빠 휴가 나온다더냐?”
어머니의 해맑은 물음에 수아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바들바들 떨었다. 입술을 달달 떨며 간신히 내뱉은 말은 “엄마” 한마디였다.
“엄마! 사실이 아니겠지? 지금 누군가 장난 전화를 건 걸 게야.”
영문을 모르는 수아 어머니가 수아의 눈물로 범벅이 된 창백한 얼굴을 보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
“수아야. 무슨 일이야?”
“오빠가, 오빠가”
간신히 일어났던 수아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다시 쓰러졌다.
“오빠라니 어떤 오빠?”
수아는 자꾸만 까무러치는 정신 줄을 붙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수아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내뱉은 첫마디는 “엄마 수혁 오빠에게 큰일이 생겼대.”
라는 말이었다.
그 순간, 수아에게 먹이기 위해 들고 있던 어머니의 물컵이 엎질러 쏟아졌고, 어머니의 "뭣이라고" 라는 절규가 쌍문동 골목의 하늘을 찢는 듯했다.
한 시간 뒤,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가 육체가 되어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군용 지프차에서 내린 장교 한 명과 하사관 한 명이 빳빳한 군복을 입고, 마치 사무적인 서류 한 장을 배달하듯 수아네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수아 어머니를 향해 깍듯이 경례를 했다. 어머니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 장교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졌다.
“이놈들아! 내 아들 내놔라! 멀쩡하게 나라 지키러 간 내 새끼를 왜 시체로 만드냐 말이여! 자살이라니, 우리 수혁이가 어떤 놈인데 자살을 해! 저번 편지에도 곧 휴가 나온다고 했던 놈이야!”
어머니의 통곡에 장교는 곤혹스러운 듯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수아에게 서류봉투를 내밀었다.
“유가족분들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조사 결과 현재까지는 심신 미약으로 인한 자살로 판명되었습니다. 여기 그에 대한 우리 군의 통지서가 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을 조심하라며, 일상의 안부를 암호처럼 보내오던 그 명민한 오빠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궤변이었다.
집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가족들의 곡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어머니는 수혁의 방 문고리를 붙잡고 “수혁아, 네가 왜 거기 있냐, 어서 나와라.”라며 넋을 놓은 채 옹알거렸다.
“우리 수혁이가 그럴 리가 없어. 그놈이 어떤 놈인데, 얼마나 효자인데 지 에미 이렇게 놔두고 절대 먼저 갈 놈이 아니야. 도대체 내 새끼가 어디 있는 거야. 지금 당장 가보자고.”
하사관이 시신이 안치된 곳, 장례 일정, 부대 방문 가능 여부 등을 구두로 설명하고 동의서에 수아의 지장을 받아 돌아갔다.
다음 날 수아의 연락을 받은 영석이는 태종이와 함께 수아네 가족과 함께 구파발에 있는 부대를 방문했다. 그러나 현장 접근을 제한하고, 군사시설보호법 등을 이유로 부대장의 승인 없이는 사건 장소를 직접 볼 수 없다고 하며, 헌병이나 지휘관이 이미 작성한 ‘사건 경위서’나 ‘자술서’의 내용을 중심으로만 설명하는 데 가족들은 분통이 터졌다. 게다가 수사결과 통지서에는 “타살 혐의점 없음, 자살로 판단”이라는 문구만 적혀 있었고 그 이외에 어떤 사실도 적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내민 것은 수혁이의 물건이 담긴 봉투였다.
봉투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수혁이 생전에 끼던 안경과 피 묻은 군인 수첩, 그리고 며칠 전 수아가 보낸 편지였다. 수아는 그 피 묻은 수첩을 보는 순간, 오빠가 마지막 편지에 썼던 ‘낯선 얼굴들’이 누구인지 확신했다. 그것은 오빠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국가라는 거대한 괴물의 그림자였다.
수아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피 묻은 군인 수첩을 넘겼다. 장교들은 “본인의 우울증과 군 복무 부적응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며 이를 자살의 증거로 내밀었다. 실제로 수첩의 앞부분에는 '집에 가고 싶다', '군 생활이 너무 힘들다', '잠이 오지 않는다' 등과 같은 무기력한 문장들이 반복되고 있었다.
수아는 눈물을 훔치며 수첩의 페이지 하단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페이지 구석에 연필로 아주 작게, 점처럼 찍힌 숫자들을 발견했다. [12, 5, 14, 20...]
수아 옆에서 수첩을 함께 보던 영석의 눈이 번뜩였다. 영석은 수아의 손에서 수첩을 건네받아 뒷장의 여백에 숫자를 옮겨 적기 시작했다. 법대생다운 기민함으로 그는 이것이 알파벳 순서를 의미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12(L), 5(E), 14(N), 20(T)...
조합된 단어는 ‘LENT(사순절)’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작은 한자로 ‘假(가)’라는 글자와 함께 날짜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영석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건 자살 일기가 아니야. 수혁이 형님은 부대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위장(假)’해서 기록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면 수첩을 뺏길지도 모른다. 아직 수아에게도 이야기하면 안 돼.”
태종이도 영석이와 같은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수첩에는 “학교를 떠나온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생각해 보면 나는 참으로 나약한 인간이었다. 명확한 미래도 없이 그저 책 속에만 파묻혀 살았으니. 단 한 번이라도 나 스스로 당당해 본 적이 있었던가.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 앞에 나는 무력할 뿐이다. 요즘 들어 부쩍 서울 하늘이 그립고 눈물이 난다. 보고 싶은 수아와 어머니, 나는 죄인입니다. 안개 자욱한 새벽녘이면 들려오는 환청들.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다. 거짓으로 점철된 내 삶을 이제는 끝내고 싶다. 부디 못난 나를 용서하지 말기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히겠지. 죽음이라는 안식처가 나를 부르고 있다. 음산한 바람 소리가 오늘따라 차갑게 느껴진다.”라는 문장도 들어 있었는데 장교는 이것이 수혁의 우울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그러나 태종은 일상적인 문장들 사이의 특정 글자들에만 미세하게 손톱자국이 눌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글자들만 모아보았다.
[학. 생. 명. 단. 강. 요. / 보. 안. 사. / 거. 부. 시. 죽. 음.]
태종은 말없이 뒤돌아서서 입을 닫았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이들이 증거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막을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교로부터 "이 수첩은 유족들이 받은 형태 그대로이며 유족들 또한 이 수첩에 어떠한 변형도 가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함"이란 문구를 적어 넣고, 장교와 수아 아버지의 지장을 받아 수첩 속에 끼워두자고 했다. 장교는 아무런 의심 없이 이에 응했다.
수아는 오빠의 수첩을 가슴에 꽉 안았다. 피 냄새와 잉크 냄새가 섞인 그 낡은 수첩이 마치 오빠의 심장처럼 뛰고 있는 것 같았다.
“삼춘, 봤지? 오빠는 끝까지 싸운 거야. 혼자서 그 무서운 놈들한테 끝까지 안 된다고 버틴 거라고!”
수아는 연병장에 주저앉아 흙바닥을 손톱이 빠지도록 긁어댔다.
“삼춘! 오빠가 죽었어. 우리 오빠가 저 차가운 군인 놈들 손에 죽었다고.”
햇살이 따스하게 수아의 등 위로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 빛은 이제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었다. 영석은 수아를 품에 안았다. 그러나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것은 봄의 온기가 아니라 시베리아의 동토보다 더 차가운 절망의 냉기였다.
구파발 부대 연병장의 모래바람이 눈을 찔렀다. 먼지 섞인 바람 사이로 수혁의 유품이 든 봉투가 수아에게 건네졌다. 깨진 안경알 위로 비친 햇살이 수아의 눈을 찔렀으나, 수아는 눈을 감지 않았다. 아니, 감을 수 없었다.
“이게 다라고? 우리 오빠 목숨값이 겨우 이 핏자국 묻은 수첩 하나란 말이냐고!”
수아는 다시 흙바닥을 긁으며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손톱 밑에 흙이 박히고 피가 배어 나왔지만, 통증조차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그 옆에서 수아 어머니는 이미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수혁아! 내 새끼야? 네 안경 닦아 줘야겠다. 우리 아들 눈 나쁜데 안경알이 깨져서 어떡하니? 어서 일어나서 밥 먹자, 응?”
자식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의 해맑은 광기 앞에 군 관계자들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그때, 참다못한 수길이 사자처럼 포효하며 장교의 멱살을 낚아챘다.
“이 살인마 놈들아! 내 동생 살려내! 멀쩡하던 놈이 왜 하루아침에 자살을 해! 너희가 죽였지? 너희가 무슨 짓을 했길래 공부밖에 모르던 내 동생이 피를 묻히고 돌아오냔 말이다!”
장교의 정복 상의가 수길의 거친 손길에 우두둑 소리를 내며 뜯겨 나갔다. 헌병들이 달려들어 수길을 떼어놓으려 했지만, 동생을 잃은 형의 괴력을 당해낼 수 없었다. 수길은 바닥에 엎어진 채 장교의 구두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살려내. 우리 수혁이 살려내라고, 이 나쁜 놈들아! 나는 우리 동생이 정부가 하는 일 비판해도 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했어. 그런데 너희가 이런 짓을 해?”
수아 아버지는 그 난장판 속에서도 미동도 없이 멀리 북한산 자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생을 성실하게 세금 내고 국가의 부름에 아들을 기꺼이 보냈던 노부의 어깨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의 눈가엔 주름을 타고 마른 눈물이 깊은 골을 만들며 흘러내렸다.
“나라라고 믿었는데. 지 자식 지켜달라고 보냈더니, 지 자식을 죽여서 돌려보내는 게 이게 나라냐? 법은 어디 있고 나라는 지금 어디 있단 말이냐? 군대 보낸 이 애비가 죽일 놈이다.”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그의 탄식은 고함보다 더 무겁게 영석의 심장을 짓눌렀다.
영석은 차마 그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법대생으로서 정의를 논하고 법치를 공부하던 자기의 손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영석은 오열하다 기진맥진해 쓰러진 수아를 부축해 일으켰다. 수아의 몸은 방금 얼음물에서 건져낸 듯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일어나. 여기서 이러면 수혁이 형님이 더 슬퍼해.”
영석의 목소리도 젖어 있었다. 수아는 영석의 품에 머리를 묻고는 그의 셔츠가 다 젖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삼춘! 법 배우는 삼춘이 말 좀 해봐. 우리 오빠 죽인 놈들, 저 법전으로 다 잡아넣을 수 있어? 저 군복 입은 괴물들, 삼춘이 배운 법으로 벌줄 수 있냐고!”
수아의 서슬 퍼런 물음에 영석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 연병장에서 법은 오직 가해자의 입술 위에서만 군림하고 있었고, 피해자의 눈물은 법전 그 어디에도 기록되지 못하고 있었다. 영석은 수아를 껴안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이 피 묻은 안경과 수첩이 말하는 진실을 결코 잊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같은 시각, 정희는 ‘복음자리교회’ 구석에서 촛불 하나를 켰다. 밀러 신부님이 수혁의 영혼이 하느님께 잘 인도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해주었다.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정희는 영석을 통해 수혁의 비보를 듣고 난 후부터 그녀는 환청처럼 전화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민우 씨! 당신은 제발 죽지 마세요. 어디에 있든 숨만 쉬고 있어 주세요.”
정희의 간절한 기도가 성당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1980년의 서울, 민주화의 열기보다 더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피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