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1980년 언저리
파주군 광탄면에 있는 제106 야전병원 영안실은 장례식장이라기보다 계엄 하의 검문소 같았다. 구파발 인근에는 국군병원이 없다는 이유로 수혁의 장례식은 이곳에서 치러지기로 되어 있었다. 영안실 입구에는 무장한 헌병들이 배치되었고, 조문객들의 신분증을 일일이 대조하며 출입을 통제했다. 병원 마당 한구석에는 번호판을 가린 검은색 지프차들이 시동을 켠 채 대기하고 있었으며, 사복 차림의 보안사 요원들이 조문객들 사이를 유령처럼 배회하며 수첩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적어 내려갔다.
영안실 내부는 연탄난로 하나 없이 냉골이었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억지로 깔아놓은 가마니 위에서 수아 어머니는 이미 넋이 나간 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제단 위에는 수혁의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입대 전, 학교 도서관 앞에서 환하게 웃으며 찍었던 사진 속 수혁은 여전히 싱그러운 청년이었으나, 그 앞의 관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군은 ‘시신 훼손이 심해 정서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관에 못질을 해버렸고, 유족의 참관 없는 염습을 강행했다.
“이놈들아! 내 새끼 마지막 얼굴도 못 보게 하는 법이 어디 있냐! 관 열어라! 내 눈으로 직접 봐야겠다!”
수아 어머니가 헌병의 가슴팍을 밀치며 울부짖었지만, 장교는 서늘한 표정으로 “군법상 불가합니다. 이미 검시관과 법무관이 확인을 마쳤습니다.”라는 말만 기계적으로 반복했다.
그때, 영안실 문이 열리며 검은 상복을 입은 영석과 태종이 들어왔다. 그들 뒤로 곰소댁과 숙희, 그리고 창백한 안색의 정희가 뒤따랐다. 곰소댁은 시장통에서 억척스럽게 살아온 여장부였으나, 차가운 영안실 공기와 자식을 앞세운 어미의 처절한 모습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수아가 오목교 판잣집을 찾아왔을 때 만난 인연으로 정희는 하루 휴가를 냈고, 곰소댁도 하루 장사를 쉬기로 하였으며, 숙희는 하루 결석을 했다.
“어이구, 이 가여운 냥반을 어쩔까? 수아 어무이 기운 차리쇼. 기운 차려야 내 새끼 가는 길 배웅이라도 헐 거 아니요.”
곰소댁이 수아 어머니의 찬 손을 부여잡자, 낯선 사람의 목소리인데도 참았던 울음소리가 다시금 영안실을 가득 채웠다. 숙희는 곰소댁의 치맛자락을 꼭 쥐고는, 무섭게 서 있는 헌병들과 영정 속 수혁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눈물을 훔쳤다. 수아가 가족들에게 영안실을 찾은 사람들을 간단히 소개했다. 그러나 수아 어머니는 눈동자가 허공을 향해 있어서 이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정희는 제단 앞에 헌화하며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는 수혁을 직접 알지는 못했으나, 이 죽음이 민우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국가라는 괴물’의 소행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정희는 품속에 감춰둔 복음자리교회의 작은 묵주를 만지작거렸다. 만약 민우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그는 슬퍼하기보다 분노하며 저 폐쇄된 관을 뜯어냈을 것이었다.
“우리 수혁이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거요?”
수길이가 물었다.
“그건 안 됩니다.”
장교 한 명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국립묘지 안장의 근거가 되는 「국립묘지령」 제3조 제1항에 따르면, 국립묘지 안장 대상은 “현역군인...으로서 사망한 자. 다만, 불명예스러운 사망자는 제외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수혁이가 ‘불명예스러운 사망’을 했다는 거요?”
장교는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하사관이 나섰다.
“국방부와 보훈 당국은 자살(자해사망)을 ‘불명예스러운 사망’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군인으로서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행위는 군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으로 보아,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모시는 국립묘지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봐요. 나는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
수길이의 목소리는 당장에 한 사람의 병사라도 때려눕히고 싶다는 듯 거칠었다.
“전투 중 사망하거나 공무 수행 중 사고로 사망한 경우를 전사, 순직이라고 하고, 변사나 자살, 그 중에서도 자살은 '개인적인 사유' 혹은 '나약함'에 의한 것으로 간주하여 일반 사망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점 이해해 주십시오. 저희도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다시 장교가 나서서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유족들의 항의가 도저히 먹힐 수 없도록 아예 봉쇄의 못질을 하겠다는 태도였다.
“너희들은 사람이 죽어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며 ‘유감’이라고 하니? ”잘못했다”는 인정이 빠져 오히려 더 기분 나쁜데?”
장례식장에 참석한 군인들은 수길이의 외침에 일제히 입을 닫았다.
“국립묘지 안장은 기본적으로 '순직' 이상이어야 가능하다는데, 폭언이나 가혹행위로 인한 자살일지라도 그 원인을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 따라서 '순직' 판정을 받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
태종이가 영석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 새끼들의 인식 속에는 자살자를 국립묘지에 안장해 줄 경우, 그것이 자살을 용인하거나 군의 기강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는 것이고, “군인은 죽어서도 국가에 충성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 가치관이 강해서 자살은 군법과 군인 정신에 반하는 ‘금기’로 여기는 것이지.”
태종이가 영석이 귀에 대고 다시 귓속말을 했다.
장례 절차는 유족의 슬픔을 배려하기보다 ‘처리’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헌병대 수사관은 장례 도중에도 수아 아버지 곁을 지키며 “자살을 인정하고 장례를 빨리 치러야 국립묘지 안장은 안 되어도 위로금이라도 챙길 수 있다.”라며 끊임없이 회유했다.
“자식 죽은 돈 받아서 뭐 할 거요? 내 아들 왜 죽었는지 말해주기 전까진 한발도 못 나가!”
노부의 일갈에도 수사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석이와 태종이가 귓속말을 나누는 것을 매서운 눈초리로 감시할 뿐이었다.
이튿날 새벽, 발인이 시작되었다. 군은 유족들이 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일 것을 우려해 예정보다 두 시간 앞당겨 운구차를 출발시키려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직 해도 안 떴는데 어디로 데려가는 거야!”
수길이가 운구차 앞을 가로막았지만, 헌병들의 강압적인 위력에 밀려났다.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순간, 수아는 미친 듯이 달려가 차 뒷문을 붙잡았다.
“오빠! 가지 마! 혼자서 무섭다고 했잖아! 저 낯선 얼굴들이 괴롭힌다고 했잖아!”
수아의 손톱이 차체 바닥을 긁으며 피가 맺혔다. 영석은 그런 수아를 뒤에서 껴안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의 시선은 운구차 뒤를 따르는 보안사 차량의 검은 유리창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벽제화장장으로 향하는 길, 안개가 자욱했다. 화장터의 거대한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를 때, 어머니는 결국 실신하여 수아의 품으로 쓰러졌다. 한 줌의 재가 되어 작은 함에 담겨 나온 수혁을 보며, 아버지는 북한산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낮게 읊조렸다.
“미안하다, 수혁아. 이 애비가. 이 못난 나라에 너를 맡겨서 미안하다. 나라가 너를 지켜줘야 하는 것인데....”
장례를 마친 후, 부대 인근 식당에 모였으나 누구 하나 숟가락을 들지 못했다. 영석은 식탁 밑으로 수혁의 수첩을 만지작거렸다. 그 낡은 수첩은 이제 수혁의 유골함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이 되어 그의 손바닥을 눌러왔다.
정희는 멀리 북한산 자락을 바라보며 민우에게 닿지 않을 말을 속삭였다.
“민우 씨, 보셨나요? 1980년의 봄은 이렇게 검게 타버린 재가 되어 흩어지고 있어요. 하지만 이 연기 속에서도 누군가는 불씨를 지키고 있네요.”
그렇게 수혁의 장례는 끝났으나, 살아남은 자들의 전쟁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구파발의 차가운 바람을 뚫고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 영석의 눈빛은 더 이상 순진한 대학생의 것이 아니었다.
수혁의 유골을 벽제의 찬 바람 속에 묻고 돌아오는 버스 안, 영석의 시야에 들어온 창밖 풍경은 기이할 정도로 평온했다. 그러나 정희는 이 평온함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아주 작은 진동에도 곧 터져 나갈 비명 섞인 전조임을 알고 있었다.
1980년 4월 중순의 대한민국은 거대한 압력솥이었다.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희망이 거리마다 일렁였으나, 그 밑바닥에서는 신군부라는 거대한 괴물이 조용히 아가리를 벌리고 마치 어느 놈이나 들어오라는 듯했다.
1980년 4월의 대한민국은 마치 거대한 폭풍을 앞두고 무겁게 가라앉은 바다와 같았다. 겉으로는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파도처럼 일렁였으나, 그 심해에서는 권력을 향한 신군부의 치밀한 기동과 정치권의 안일한 낙관이 위태롭게 교차하고 있었다.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김대중과 김영삼, 그리고 구시대의 상징이자 합리적 보수를 표방하던 김종필은 각자의 계산기 앞에 앉아 있었다. 이들은 유신 독재라는 거대한 바위가 치워지자마자, 그 빈자리를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민주화 이후의 대권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며 서로를 향한 경쟁심을 숨기지 않았다.
태종이와 영석이는 성균관대학교 후문으로 나와 삼청동의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 집’을 찾아 각자 쌍화차와 대추차를 시켜놓고 앉았다,
“국민은 김대중, 김영삼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군부의 부활을 막아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으나, 야권의 분열은 이미 돌이키기 힘든 지점까지 치닫고 있는 것 같아. 김종필 역시 무너진 공화당의 잔해를 모아 권력의 틈새를 엿보고 있어. 이들은 '군대가 감히 다시 나설 수 있겠느냐'는 낙관론에 젖어 있는데, 이들이 꿈꾸는 청와대의 환상은 신군부가 쳐놓은 촘촘한 그물망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있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하다.”
태종이가 쌍화차 한잔을 마시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치인들이 말의 성찬을 즐기는 동안,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는 침묵 속에서 국가의 혈맥을 하나둘 장악해 나가고 있어. 그 서막은 지난 4월 14일, 전두환 사령관이 정보기관의 심장부인 중앙정보부장 서리직을 겸임하면서 이미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어.”
“이 사건은 '서울의 봄'에 불어닥친 서슬 퍼런 칼바람이야. 총칼을 든 군인이 국가의 모든 정보를 취급하는 정보기관까지 손에 넣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숨어서 정치를 조종하지 않고 대놓고 주인 노릇을 하겠다는 선언과도 같은 거야. 보안사령부의 지하실에서는 정치인, 종교인,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된 살생부가 업데이트되고 있으며, 신군부는 언론 장악을 위한 'K-공작'을 통해 여론의 입을 틀어막을 준비를 마쳤어. 그들에게 민주화는 진압해야 할 ‘혼란’이고, 3김의 경쟁은 그저 권력을 낚아채기 위한 좋은 먹잇감에 불과한 것이지.”
태종이는 마치 예언가처럼 계속해서 자신의 분석을 쏟아냈다.
수혁의 장례식이 치러지던 파주의 차가운 영안실 밖에서, 세상은 여전히 축제 같은 민주주의의 환상에 취해 있는 것이다. 대학가에는 연일 계엄 해제를 외치는 구호가 울려 퍼졌지만, 그 소리는 신군부가 배치한 탱크의 무거운 궤도 소리에 묻혀 가고 있었다.
삼청동의 낡은 한옥 벽면을 타고 스며드는 쌍화차의 알싸한 약재 향이 오늘따라 유독 맵게 느껴졌다. 영석은 찻잔 속에 띄워진 잣 하나를 숟가락으로 무의미하게 밀어내며, 태종의 비관적인 전망을 되씹었다. 태종의 말은 늘 칼날처럼 정확했기에, 그 냉정한 분석이 영석의 가슴을 더 깊숙이 후벼팠다.
“태종아, 너는 이 모든 판을 보고 있구나. 하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
영석이 고개를 떨구며 나직하게 입을 뗐다. 영석은 평생을 책 속에 파묻혀 살고 싶었던 청년이었다. 도서관의 서늘한 공기, 낡은 종이 냄새, 그리고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의 길. 그에게 교수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인간의 본질을 고민할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를 찾는 일이었다.
“나 교수 되고 싶었어. 정치니, 투쟁이니 그런 거 말고, 그냥 내가 배운 것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조용히 살고 싶었어. 그런데 수혁이 형님의 그 못질 된 관을 보고 나니까, 도서관의 정적이 비겁하게 느껴져. 내 미래가, 내가 꿈꾸던 그 안온한 강단이 사실은 누군가의 피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태종은 대답 대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자욱한 연기 너머로 영석을 바라보는 태종의 눈빛에는 연민과 단호함이 교차했다.
“영석아, 교수가 되고 싶다는 네 꿈은 잘못된 게 아니야. 누군가는 이 어둠이 지난 뒤에 무엇이 진실이었는지 기록하고 가르쳐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 네가 가려는 강단은 저들이 총칼로 만든 가이드라인 안에서의 강단일 뿐이야. ‘K-공작’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완성되면, 네가 가르칠 책들도 그들의 검열을 거쳐야 할걸? 그때도 네가 강의실에서 진리를 말할 수 있을까?”
영석은 찻잔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태종의 질문은 영석의 가장 아픈 곳을 찔렀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니? 거리로 나가 화염병이라도 들어야 하는 거니? 나는 정희 누나의 남자친구인 민우형 만큼 용감하지도 못하고, 너처럼 명민하게 정세를 읽지도 못해.”
“길은 네가 만드는 거야.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수혁이의 수첩을 네가 가졌잖아. 그건 이제 네가 읽어야 할 가장 중요한 텍스트가 된 거야. 도서관에 있는 칸트나 헤겔보다, 그 수첩 속에 적힌 수혁이 형님의 비명이 지금의 너에겐 더 절실한 학문이 되어야 해.”
영석은 품 안의 수첩을 가만히 만져보았다. 비닐 백 속에 들어있는데도 거친 종이의 질감이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 그것은 학자가 되어 상아탑 속으로 숨으려 했던 영석에게 세상이 던진 무거운 숙제였다. 수아가 수혁의 수첩을 집에 보관하지 않고 영석에게 준 것도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영석은 수첩에 어떠한 훼손도 생기지 않도록 비닐백으로 단단히 싸 가지고 있었고 이를 다시 수아에게 줘서 금고 속에 보관하라고 말할 예정이었다.
영석은 결심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삼청동 길가에 핀 꽃들처럼 화사하지 않았으나, 갓 구워낸 무쇠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그래, 태종아. 내가 갈 길은 정해진 것 같아. 당분간 내 강의실은 도서관이 아니라 거리가 될 거야. 수혁이 형님이 왜 죽어야 했는지, 왜 국립묘지조차 허락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세상에 묻는 것부터 시작하겠어. 교수가 되는 건 그 대답을 찾은 뒤의 일이야. 설령 그 길이 가시밭길이라 해도, 수혁이 형님의 관 위에 박힌 그 못을 하나씩 뽑아내는 심정으로 걸어가보려 해.”
태종은 말없이 찻잔을 들어 영석의 잔에 가볍게 부딪혔다. 찻잔 부딪치는 둔탁한 소리가 마치 출정하는 군사의 북소리처럼 두 청년의 가슴 울림으로 남았다.
가게 밖으로 나오자, 4월의 변덕스러운 찬바람이 불어왔다. 영석은 코트 깃을 세우며 멀리 보이는 청와대 근처의 삼엄한 경비병들을 노려보았다. 이제 영석에게 '교수'라는 꿈은 개인의 영달이 아닌, 이 시대의 진실을 증언해야 할 자로서의 '천명'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걷는 삼청동 언덕길 위로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이제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민우는 수덕여관의 삐걱거리는 마룻바닥을 밟으며 짐을 챙겼다. 4월의 공기는 낮에는 따스했으나 밤이면 뼛속까지 시린 냉기를 품고 있었다. 전두환의 중앙정보부장 겸직 소식이 신문 지면을 도배한 이후, 여관 주변을 맴도는 사람들이 모두 낯선 사내들로 보이고, 동네 구멍가게 앞이나 여관 어귀에서 신문을 뒤집어쓴 채 무심한 척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빛도 영락없는 사냥개의 그것으로만 보였다.
“아저씨!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시험이 코앞이라 이제 서울로 가서 마지막 학원 강의를 들으며 최종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민우는 짐짓 태연한 척, 사법시험 수험서를 보란 듯이 가방 맨 위에 얹으며 여관 주인에게 인사를 건넸다. 주인아저씨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민우의 안색을 살피더니, 봇짐 속에 마른반찬 몇 가지를 찔러 넣어주었다.
“아이고, 세상이 너무 무서우니 몸조심 혀.”
여관을 나선 민우는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걸음을 재촉했다. 뒤를 밟는 기척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마음이 초조했다. 그는 일부러 복잡한 시장통을 통과해 예산역으로 향하는 척하다가, 마지막 순간에 완행버스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멀어지는 수덕여관의 지붕 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온 민우는 신림9동 산꼭대기에 있는 방을 하나 얻었다. 여차하면 관악산으로 숨기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신림9동 파출소 뒤편,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굽이굽이 올라가면 관악산 그림자가 가장 먼저 내려앉는 ‘성실하숙’이 있었다. 낡은 슬래브 지붕 아래 다닥다닥 붙은 방들은 낮에도 어둑했지만, 저녁 6시만 되면 밥 짓는 냄새와 함께 생기가 돌았다.
“학생들. 밥 먹어! 늦게 오면 식어!”
하숙집 주인아주머니의 우렁찬 목소리가 좁은 복도를 때렸다. 아주머니는 커다란 함지박에 갓 무친 콩나물과 시큼하게 익은 깍두기, 그리고 이 집의 단백질원인 삼겹살과 돼지불고기를 쟁반 가득 날랐다.
식탁 주위로 초췌한 얼굴의 청년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도수 높은 안경에 목이 늘어난 러닝셔츠, 무릎 나온 츄리닝 바지는 신림동 고시생들의 교복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손에서 ‘곽윤직 민법론’이나 헌법 기본서를 놓지 않았다.
“아주머니! 오늘 국은 뭐예요?”
한 고시생이 묻자, 주인아주머니는 큼지막한 양은 냄비에 담긴 시래깃국을 국자로 푹 퍼 담으며 대답했다.
“먼지 많이 마시는 공부 하는 양반들이라 된장 좀 넉넉히 풀었어. 그리고 삼겹살도 조금 구웠어. 이번에 상근이는 꼭 2차 붙어야지? 얼굴이 반쪽이 됐네, 반쪽이.”
아주머니는 안쓰러운 듯 살이 제일 통통한 고등어 토막을 그 청년의 밥그릇 위에 툭 올려주었다. 밥상머리에서도 침묵이 흘렀다. 숟가락 부딪치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이 정적을 메웠다. 어떤 이는 밥을 입으로 가져가면서도 눈은 식탁 위에 펼쳐둔 메모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들에게 밥을 먹는 시간은 휴식이 아니라, 연료를 채우는 또 다른 고역이었다.
“아랫동네 대학가 쪽은 난리도 아니네. 최루탄 냄새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 같아.”
막 하숙집 대문을 들어선 고시생 한 명이 땀을 닦으며 말하자, 식탁의 분위기가 묘하게 경직되었다. 대학가의 시위 열기가 산꼭대기 하숙방까지 스며들고 있었지만, 이곳의 시계는 오직 ‘합격’이라는 글자에만 맞춰져 있었다.
“세상이 뒤집어지든 말든, 자네들은 법전이나 파. 여기서 나가야 세상을 바꾸든 법을 세우든 할 거 아녀.”
주인아주머니는 행주로 식탁을 닦으며 짐짓 퉁명스럽게 내뱉었지만, 그녀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녀에게 이 청년들은 나라의 기둥이 될 인재이기 전에, 매달 방값 내기 바쁘고 밤마다 흐린 백열등 아래서 눈을 비비는 안쓰러운 자식들이었다.
식사를 마친 고시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의 ‘독방’으로 흩어졌다. 한 평 남짓한 방안, 벽면 가득 붙은 ‘합격’ 부적과 가족사진, 그리고 천장까지 쌓인 법학 서적들이 그들을 압박했다.
밤 10시. 창밖 너머의 저 아래 서울 시내의 불빛은 화려했지만, 신림9동 산꼭대기 하숙방의 창문들에는 오직 차가운 형광등 불빛만이 박혀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낙엽 굴러가는 소리처럼 사각거렸다. 아주머니는 복도를 지나며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들을 보고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 젊은 청춘들이 저렇게 고생인데. 세상이 좀 조용해야 마음놓고 공부를 할 텐데”
1980년의 봄은 그렇게 신림동의 가파른 언덕 위에서도, 두꺼운 법전의 책장 사이에서도 위태롭게 피어나고 있었다.
민우는 정희에게 피해주지 않고 연락할 방법을 찾았다. 사무실로 연락하거나 근처로 찾아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오목교 정희네 집을 찾아가는 것도 꺼림칙했지만, 밤늦게 아니면 새벽에 찾아가는 것은 덜 위험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
새벽 3시. 도시의 소음조차 잠든 시간이었지만, 오목교 인근의 판자촌은 비릿한 강바람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함으로 가득했다. 민우는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을 가리기 위해 눌러쓴 모자를 더 깊게 눌렀다. 그는 안양천 둑길을 따라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가끔 지나가는 야간 순찰차의 불빛이 보일 때마다 그는 악취 나는 쓰레기 더미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요동쳤다.
정희의 집은 골목 끝자락,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롭게 서 있는 판잣집이다. 민우는 담벼락에 몸을 밀착한 채 한참 동안 주변 동태를 살폈다.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한 그가 떨리는 손으로 사립문을 조심스레 밀었다.
“똑, 똑똑. 똑.”
미리 약속한 신호도 없었지만, 민우는 본능적으로 정희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박자로 문을 두드렸다. 이윽고 안쪽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정적이 흘렀다.
“누구세요?”
문틈 너머로 들려오는 정희의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민우는 목이 메어 잠시 대답하지 못하다가, 간신히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정희 씨! 나요. 민우요.”
문이 벌컥 열렸다. 얇은 무명 잠옷 차림에 겉옷 하나만 걸친 정희가 불도 켜지 못한 채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눈은 형광등 불빛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민우 씨! 정말 민우 씨예요?”
정희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민우의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등 위로 뜨거운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민우는 그녀를 부엌 안으로 밀어 넣으며 재빨리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유사시에 도망갈 퇴로가 있는지 확인했다. 판잣집에 뒤란이 없으니, 퇴로도 있을 리가 없다. 그러나 좁은 부엌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듯 격렬하게 껴안았다.
“살아 있었군요.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었어.”
정희는 민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리 죽여 흐느꼈다. 민우는 거칠어진 정희의 손을 잡고 차가운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미안해요, 정희 씨. 연락도 못 하고... 나 때문에 정희씨까지 위험해질까 봐...”
그때, 방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자고 있던 영석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낯선 남자의 실루엣에 놀라려던 찰나, 영석은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봤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랐지만 그는 민우였다.
“민우 형이예요?”
영석은 단박에 민우를 존재를 알아봤다.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가?”
세 사람은 좁은 단칸방에서 서로 마주 앉았다. 정희는 혹시라도 밖으로 소리가 새 나갈까 봐 수건을 입에 문 채 울음을 참아냈다. 그녀는 서둘러 수혁의 소식을 꺼내놓았다.
“민우 씨, 수혁 씨가... 수혁 씨가 갔어요. 군대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민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수덕사에서 신문을 보며 느꼈던 그 막연한 불안이 현실이 되어 가슴을 난도질했다. 정희는 영석과 태종이 발견한 수첩의 암호, 그리고 그들이 장례식에서 겪었던 수치스러운 일들을 하나하나 전했다.
“그들이 수혁 씨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민우 씨, 당신을 찾는 그 사람들이요. 제발... 제발 이제 어디 가지 마세요. 그냥 서울 하늘 아래서 저랑 영석이랑 같이 죽든 살든 해요.”
민우는 정희의 눈물을 닦아주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수혁의 죽음은 민우에게 죄책감인 동시에 강렬한 불꽃이 되었다.
새벽안개가 판잣집 틈새로 스며들었다. 민우는 정희와 연석을 번갈아 보며 다짐했다. 이 가냘픈 목련 같은 여인과 그의 동생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는 이 어둠을 뚫고 나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옆에 있을게요. 해가 뜨기 전에 가야 해요. 하지만 정희 씨, 이것만은 약속해요. 반드시 다시 돌아올게요. 우리 셋이 저 오목교 너머 햇살 아래서 소금구이 배불리 먹는 날, 꼭 만들게요. 그 대신 연락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 나는 수덕사에 있다가 신림동으로 거처를 옮겨 숨어 있어요.”
“형! 우리 집에 전화도 없고 누나 회사로 연락하는 것도 위험하니 제가 믿을만한 친구 전화번호를 알려줄게요. 위급한 순간이나, 긴히 연락하고 싶을 때는 여기로 전화하세요,”
영석은 태종이의 전화번호를 적어 민우에게 건네주었다.
“아침 드시고 가세요.”
“아니에요. 너무 위험하고, 어서 신림동 하숙집에 가서 아침밥 먹어야 해요. 아침 운동 다녀왔다고 말할 거예요.”
민우와 정희가 밖으로 나가는데 영석은 악수만 하고 따라 나가지 않았다. 두 사람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밖으로 나온 민우와 정희는 꼭 껴안고 서로의 입술을 격렬하게 찾았다. 멀리 경인고속도로를 달리던 화물차가 빵 소리를 냈고, 곰소댁도 시장에 나갈 준비를 하기 위해 일어나는 기척이 느껴졌다.
오늘이 변호사 시험 5일차 마지막 날입니다. 후배 강다율이가 응시했고, 오늘 술 사달라 해서 한잔 사줘야 하므로 내일까지 오목교 쉬겠습니다. 가능한 모레에는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