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

by 서완석

어제
누가 연구실 문을 두드려
나가보니


말씀을 전하러 왔다며
발 하나가 쑥 들어온다.


말씀이 고프지 않아
돌려보냈다.


글 쓰고 있던
내 마음도
바사삭 깨졌다.


배고플 때
신은 간절했으나


허기를 면하자
그분은
냉담해졌다.


예수의 말씀이 달아
천당을 믿었고


부처의 말씀이 깊어
열심을 냈으나


공(空)을 가르치는 그분은
정작
곁에 없다더라.


술 마시지 말라는 교회를 등지고
술 마셔도 된다는 성당에 숨었으나


고백성사 창 너머,
내 죄가 너무 무거워


결국
다시
냉담의 길로 돌아섰다.


불교는 지옥이 깊다 겁을 주는데
착하게 살아보려 해도


마음은
제멋대로라.


마음먹기가
지리적 위치보다 멀다는
원불교의 극락과 지옥 사이를


나는
매일,
뜬눈으로 오간다.


왔다 갔다,
갈팡질팡.


천당은 이미 멀어졌고
지옥은 너무 가까워졌다.


어디,
지옥이 없는 종교는 없을까


오래 헤매다
문득 깨닫는다.


배가 부르면
신을 잊고


잊은 뒤에야,
신을 다시 부른다.


굶어야 천당간다.


굶어야 극락간다.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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