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반점

by 서완석

세월의 갈피를 넘기다 보면 유독 선명하게 멈춰 서게 되는 장면이 있다. 아마 15년 전쯤의 일일 것이다. 고향 후배이자 내가 가르쳐 대학에 보낸 제관이가 술에 거나하게 취해 나를 찾아왔다. 녀석은 심성이 곧고 성실해 구로동에서 작은 공장을 꾸리며 제 앞가림은 넉넉히 하고 살았다. 지금이야 술 한잔하겠느냐 물으면 “형님, 이제 예전 같지 않아요”라며 꼬리를 내리지만, 그때만 해도 녀석은 알아주는 술꾼이었다.


성남의 대학교 부근까지 불원천리 달려온 후배가 반갑기 그지없었다. 녀석의 집은 내 어린 시절의 안식처였다. 셋방살이 처지였음에도 상이라도 타오면 제 자식 일처럼 동네방네 자랑해 주시던 녀석의 아버지는 내게 든든한 지붕이었고, 대학생 시절, 청량리에서 배고픈 이 고학생에게 정성 어린 밥상을 차려주시던 제관이 외할머니의 손길은 늘 따뜻했다. 한솥밥을 먹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부대꼈으니, 우리는 이미 한가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도착한 녀석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았다. 이미 3차까지 마시고 왔다는데도 취하지 않았노라 우기는 꼴이 영락없는 객기였다. 그냥 보낼 수 없어 자리를 옮기다 눈에 띈 곳이‘금성반점(金城飯店)’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짜장면과 짬뽕 대신 양꼬치와 마라탕, 가지덮밥과 어향육사가 적힌 메뉴판. 알고 보니 조선족 아주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당시엔 양고기가 생소해 주춤했지만, 사장님의 출중한 미모보다 더 고왔던 친절함에 이끌려 자리를 잡았다. 칭다오 맥주에 양꼬치가 기계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풍경이 생경해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양고기 맛은 기가 막혔다. 고량주였을까, 소주였을까. 녀석과 나누었던 술잔의 개수만큼 기억은 흐릿해졌지만, 그날 밤의 공기는 유독 달큼했다.


비극은 이튿날 아침 전해졌다. 제관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때렸다. “형님, 가방을 잃어버렸어요.” 그 안에는 무려 400만 원이라는 거금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백반 한 그릇이 4천 원 하던 시절이니 지금 가치로는 1천만 원에 육박하는 큰돈이었다. 녀석은 간밤에 술집 세 곳을 돌고 택시와 지하철을 수차례 갈아탔다니, 가방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보다 막막해 보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출근 후 금성반점을 찾았다. 영업 준비를 하던 사장님께 조심스레 묻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가방 하나를 내놓았다. 가방 속 큰돈을 확인하고는 누군가 절망하고 있을까 봐 애태우며 보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다. 녀석에게 평생 내 마음의 부채가 될 뻔한 절망이 사장님의 정직함 덕분에 씻은 듯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내게 금성반점은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곳이 아니었다. 귀화하여 어쩌면 편견의 벽을 넘으며 고단한 삶을 일궈가는 사장님이 내게 돌려준 것은 400만 원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신뢰’였고, ‘삶의 품격’이었다. 나는 외부 손님이 오거나 제자들을 대접할 때면 기어이 금성반점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경의이자 보답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 나는 명예교수가 되었고, 수필가로 등단해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브런치 스토리에서 어리둥절한 알림이 떴다. ‘김선우’라는 낯선 이름으로 10만 원이라는 거액의 응원금이 입금된 것이다. 잘못 입금된 돈이라 생각하고 주인을 찾으려 백방으로 수소문했다. 연락처를 뒤지고 흐릿한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보았지만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한 달여가 지났을 무렵, 그 익명의 프로필 사진과 이름이 ‘금성반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서둘러 전화를 걸어 확인하니 금성반점 사장님이 맞았다. 그저 내게 가는 길을 응원하고 싶었다는 수줍은 고백이 돌아왔다. 세상에는 기어이 갚아나가야 할 고마움이 있고, 그 고마움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더 큰 온기가 되어 돌아온다. 15년 전, 가방을 찾아주어 고맙다고 내가 그 집 문턱을 넘어

사람들을 데려갔던 시간들이, 사장님에게는 또 다른 고마움의 빚으로 쌓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사장님의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문학소녀의 감수성이 내 비루한 글줄에서 공명을 일으킨 것일까. 서로가 서로에게 빚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회전하는 불판 위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구수하고 따뜻한 ‘사람 사는 맛’ 일 터다.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사장님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며, 내가 쓰는 글 한줄이 누군가에게는 잃어버린 가방을 되찾은 안도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름으로 날아온 10만 원의 응원 같은 기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오목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