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33화 흩어지는 이름들, 길 잃은 영혼들 (2)

민우가 떠난 뒤, 도솔산의 안개는 걷혔지만 태허 스님의 마음에는 더 짙은 안개가 내려앉았다. 민우가 남기고 간 비장한 약속은 스님의 가슴을 짓누르는 바위가 되었다. 태허 스님은 참당암을 찾아온 정희 어머니를 마주했다. 화장품 가방을 멘 정희 어머니의 얼굴엔 민우를 보낸 뒤의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님, 그 충청도 총각 무사히 잘 갔겄지요? 그 쑥떡이 요기 거리나 되었을랑가 모르겄어요.”

정희 어머니의 물음에 태허 스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민우가 마지막으로 남긴 당부를 꺼내 놓았다.

“정희 엄마, 그 청년이 떠나기 전에 제게 비장한 약속을 하나 하고 갔어요. 자기가 광주에 잠입해서 활동하다가, 5월 25일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선운사 종무소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전하겠다고요.”

태허 스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만약 5월 25일이 다 지나도록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그것은 자기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줄로 알라고 했었어요. 그때가 되면 정희 엄마께 이 사실을 전해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자기 고향집에도 기별을 넣어달라고 주소까지 알려주고 갔어요.”


정희 어머니의 손에 들려 있던 화장품 가방이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가방 안의 화장품들이 부딪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그녀는 그것을 주워 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덜덜 떨고 있었다.

“5월 25일요? 시방 며칠 남지도 않았는디? 그 젊은 사람이 어째서 고로코롬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고 갔다요. 연락 없으면 죽은 것이라니,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요?”

정희 어머니의 눈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아모레 아줌마로 고창 산천을 누비며 온갖 험한 꼴을 다 봤지만, 생면부지 청년이 내던진 ‘죽음의 기한’은 그녀에게 차원이 다른 공포로 다가왔다.

“그 총각, 우리 정희가 서울서 믿고 의지하던 사람이라고 안 혔소. 우리 정희가 알면 고년 가슴이 무너져 내릴 틴디. 스님, 부디 그날 전화가 꼭 오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고 또 빌어주시오. 예?”

태허 스님은 합장을 했다.

“저도 매일 새벽 예불마다 그 청년의 무사 귀환을 발원하고 있습니다. 정희 엄마도 25일까지는 마음을 졸이시겠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맙시다. 한 줌의 온기만 가지고도 기어이 내일을 붙드는 것이 인간 존재의 지독한 본능이라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청년이었으니 반드시 목소리를 들려줄 것이오.”

두 사람은 민우가 사선을 넘고 있을 남쪽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5월 25일. 그 운명의 날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민우가 불지옥 같은 광주에서 보내올 생존의 신호만을 기다리며, 도솔산의 고요는 더욱 깊고 처연해졌다.


정희 어머니는 바닥에 떨어졌던 화장품 가방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방 깊숙한 곳, 낡은 헝겊으로 된 지갑을 꺼내 손때 묻은 지폐 뭉치를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폈다. 며칠간 고창의 험한 산길을 타며 오랜 단골이 되어준 집들을 들러 받은 눈물겨운 외상값들이었다.

“스님, 이거 받으시오. 큰돈은 아니지만 지가 이번 달에 화장품 외상값 수금한 거 전부요.”

태허 스님은 그녀가 내미는 꼬깃꼬깃한 돈뭉치를 보며 당황한 듯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그냥 넣어두시오. 이건 정희 엄마가 발로 뛰어 모은 피 같은 돈 아닙니까. 이 귀한 걸 어찌?”

“아니요, 스님. 부처님 공양미로 써도 좋고, 향을 피워도 좋응 게 지발 좀 받아주시오. 나는 시방 이 돈보다 그 총각의 목소리가 더 귀허요. 우리 정희가 마음에 품은 사람이 저 고생을 하고 있다는디, 에미로서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인 것에 억장이 무너져서 그라요.”

정희 어머니는 돈뭉치를 스님의 가사 자락 위에 억지로 얹어두다시피 했다. 그녀의 거친 손마디는 떨리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어느 수행자보다도 간절했다.

“스님, 지같은 사람의 이름은 안 써도 좋응게, 그저 ‘충청도 함민우’라는 이름 석 자만 부처님 귀에 딱 박히게 빌어주시오. 25일 날꺼정 그 청년 목소리가 저 선운사 종무소 전화기로 꼭 들려오도록 말이오. 내 평생에 혹시라도 남은 복이 있다면 그 총각한테 다 몰아줘도 좋응게 스님 정성으로 간절히 기도 좀 해주시오.”


태허 스님은 더 이상 거절하지 못하고 두 손으로 그 돈을 소중히 받아 들었다. 돈뭉치에서는 오랫동안 산길을 헤매며 밴 땀 냄새와 화장품 냄새, 그리고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지독한 사랑의 냄새가 났다.

“알겠습니다. 정희 엄마의 이 간절한 마음이 부처님께 닿지 않을 리 없습니다. 제가 매일 밤낮으로 등불을 밝히고 민우 군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25일이 지나기 전, 반드시 기쁜 소식을 들려드릴 테니 마음 단단히 먹고 가십시오.”

정희 어머니는 태허 스님을 향해 깊숙이 고개를 숙여 절을 올린 뒤, 다시 화장품 가방을 어깨에 멨다. 가방은 아까보다 가벼워졌을지 모르나, 그녀의 발걸음은 생사의 소식을 기다려야 하는 천근만근의 무게를 담고 참당암 너머로 사라졌다. 태허 스님은 그녀의 그러한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고 서 있었고, 해 저무는 산사의 풍경 소리는 민우의 이름 석 자를 안고 광주 방향으로 길게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낡은 1톤 용달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구로역을 지나 가리봉 오거리에 도달했다. 정희는 운전석 옆에 앉았고, 영석이는 짐과 함께 용달차 짐칸에 앉았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명륜동이나 오목교와는 또 다른 공기를 머금고 있었다. 거대한 공장 굴뚝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그 발치 아래로 낮게 엎드린 수백 개의 ‘벌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거대한 미로를 형성하고 있었다.

용달차가 멈춰 선 곳은 시멘트 담벼락에 이끼가 낀 낡은 벽돌집 앞이었다. 영석과 정희는 삐걱거리는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좁은 복도를 따라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법한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흡사 벌집 같아 사람들은 이곳을 ‘벌방’이라 부르는 구나 싶었다.


“여기가 우리가 지낼 방이다. 영석아, 짐 좀 들여놓자.”

정희가 가리킨 방은 참담할 정도로 좁았다. 대문을 열면 바로 나타나는 반 평 남짓한 부엌에는 낡은 연탄 화덕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고, 작은 찬장 하나가 놓여있는데, 그것이 부엌의 전부였다. 안방은 성인 서너명이 몸을 모로 세워야 겨우 누울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벽지는 습기를 머금어 여기저기 들떠 있었고, 곰팡이가 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도배부터 해야겠다."

정희가 눅눅해진 벽지를 손으로 만지더니 말했다.

“누나, 화장실은 어디 있어?”

짐을 풀던 영석이 밖을 내다보며 물었다.

“대문 옆에 공동 화장실 보이지? 문 세 개 달린 거. 이 집 사는 사람들이 다 같이 쓰는 거야. 아침마다 줄 서야 하니까 일찍 서둘러야 할 거다.”


영석은 짐 보따리를 방 한구석으로 밀어 넣으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정희의 이어지는 설명이었다.

“이 집은 보통 여공 세 명이 한방을 써. 공단이 3교대로 돌아가니까, 한 명이 일하러 가면 다른 한 명이 들어와 자고, 그런 식으로 방 하나를 24시간 계속 돌리는 거지. 다행히 우리는 아는 분 덕에 남매끼리만 이 방을 쓰게 된 거야.”

정희는 옷가지를 정리하며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영석아, 조심해야 할 게 있어. 이 건물 전체에 남자는 너 하나뿐이야. 다들 공단 다니는 여공들이거든. 밤늦게 다닐 때 헛기침이라도 크게 하고 다녀라. 서로 놀라지 않게.”

영석이는 화장실 다닐 일이 큰 걱정거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마당에는 공동으로 사용하는 수도가 하나 있었다.

“그리고 숙모가 말씀하셨는데, 여름에 여공들이 대문 닫아걸고, 수돗가에서 목욕하는 경우가 있다더라. 그때는 네가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불편함이 있을 거야. 그래도 여름에 비 새지 않고 물난리 겪지 않을 곳이니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살자.”


영석은 좁은 방 안에서 짐을 정리하는 정희를 바라보며 엉거주춤 서 있었다. 오목교 판잣집은 그래도 이웃 간의 정이라도 있고, 안양천을 걷는 낭만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가리봉동에는 오직 거대한 기계 부속품처럼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잠자리와, 그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온 어느 대학생의 비루한 현실만이 존재했다.

영석은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공동 화장실의 낡은 문짝과, 쉴 새 없이 교대하러 들어오는 여공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들으며 정희와 함께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짐 정리 끝나면 내가 밥 해줄게. 그나저나 민우 씨는 무사한지?”

정희의 머리는 짐 정리를 하면서도 온통 민우 생각뿐이었다.

짐 정리를 마친 영석은 정희가 부엌에 앉아 냄비 밥을 짓는 사이,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가방에서 구겨진 편지봉투와 볼펜을 꺼냈다. 좁은 방 안, 짐 보따리를 책상 삼아 엎드린 영석의 시야가 자꾸만 흐려졌다. 가리봉동의 눅눅한 공기가 눈을 찔러서가 아니었다. 볼펜 잉크가 닿기도 전에 마음이 먼저 수아에게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아야.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내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곳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이 글을 쓴다. 명륜동의 그 골목도, 네가 마지막으로 남긴 택시의 뒷모습도, 같이 걷던 남산길도 이제는 내가 닿을 수 없는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져.

우리가 위도 바닷가에 있었을 때 기억나니? 사위는 온통 검은색이고, 강바람 소리와 잔잔한 파도소리만 들리던 곳, 세상에 우리 둘만 남겨진 것 같았던 그 밤 말이야. 사실 수아야, 나는 그때 너를 간절하게 안고 싶었어.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내 마음이 차가워서가 아니었어. 상처 입은 너를 온전히 지켜주고 싶었고, 내 서툰 욕심이 너라는 예쁜 꽃을 꺾어버릴까 봐 죽을 만큼 참았던 거야.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그게 내 오만이었던 것 같아. 그때 너를 더 꽉 안아주었더라면, 어떤 진흙탕 속이라도 내가 함께 있겠노라고 몸으로라도 말해주었더라면, 너는 지금 내 곁에 있었을까? 그건 너만이 알 수 있는 일이지만, 네가 떠난 뒤에야 많은 걸 깨달았어. 지켜준다는 핑계로 내가 너를 너무나 외롭게 만들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

나는 지금 가리봉동 벌방으로 이사 왔어. 여공들의 고단한 숨소리가 벽을 타고 넘어오는 이 좁은 방에 앉아 있으니, 내가 짊어지고 있는 가난의 무게가 내 어깨를 짓누른다. 수아야, 딱 한 번만 만나줄 수 없겠니? 네가 나를 오염시킬까 봐 도망쳤다면, 이제는 걱정하지 마. 나도 이제 그 진흙탕 속으로 발을 내디뎠으니까. 네가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어. 그냥 네 눈을 보고,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만 전할 수 있게 해 줘. 제발 나를 외면하지 말아 줘.


영석은 편지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수아네 쌍문동 집주소를 적었다. 수아가 이 편지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최악의 경우 반송이라도 한다면 어쩐단 말인가? 태종이는 집착하지 말라고 했지만, 당사자로서는 쉽사리 그녀를 보낼 수 없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남들은 이걸 집착이라 부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무너진 세상에서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밧줄이야. 이걸 놓으면 내가 사라질 것 같은 공포야.’

‘사람들은 쉽게 “놓아 버려”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놓으면 편해지는 짐 가방이 아니라, 놓는 순간 절벽 아래로 추락하게 될 생명줄 같은 거야. 수아를 생각하는 게 괴로운 게 아니라, 수아를 생각하지 않는 상태의 나를 상상하는 게 더 끔찍해. 그건 내 존재의 소멸이나 마찬가지니까.’

‘수아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떠났지만, 내 마음의 시계는 여전히 우리가 사랑하던 어느 지점에 멈춰 있는 Time Lag 상태인 거야. 나는 멈춘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 갇힌 채 나가는 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야.’

‘내 머리는 끝이 났다고 말하지만, 내 가슴은 ’수정‘을 원해. “그때 그러지 말았더라면?” 같은 가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어,’

‘내 마음은 오답 노트를 붙들고 있는 낙제생 같아. 이미 시험은 끝났고 채점도 끝났는데, 나는 여전히 틀린 문제 위에 연필로 정답을 써넣으려 애쓰고 있어. 이 집착은 미련한 욕심이 아니라, 단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끝맺음하고 싶다는 처절한 수정 작업이야.’

‘수아를 붙잡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 연결되었던 '나의 찬란했던 시절'을 잃기 싫은 거야.’

‘그녀를 잊으라는 태종이의 말은,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과 나의 진심을 모두 폐기 처분하라는 선고처럼 들려. 내가 집착하는 건 그녀가 내게 해주었던 사랑스러웠던 행동들이 아니라, 그녀의 눈동자에 비쳤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내 모습인 거야.’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니 사랑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영석은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수천 번 오락가락하는 자신의 마음을 어찌하지 못하며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렸다가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수아를 향한 그리움과 고통이 현재의 자기 삶의 전부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이를 ‘집착’이라고 정의해 버리면, 영석이는 순수한 슬픔이나 사랑했던 자기 마음이 ‘잘못된 것’ 혹은 ‘구차한 것’으로 치부된다는 느낌, 즉, 위로보다는 비난으로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영석이 본인으로서도 이미 끝났다는 것, 붙잡아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그의 이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집착하지 마라’는 태종이의 조언이 “너 왜 아직도 못하는 거야?”라는 압박으로 다가와 영석이를 극심한 무력감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영석의 고립감과 서운함은 더 커질지도 모르는 일이고, 오히려 자신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커질지도 모른다.


영석이 입장에서는 태종이가 오히려 “그만큼 네가 정말로 좋아했으니까 힘든 건 당연해”, “지금은 억지로 잊으려고 하지 마.”, “네가 충분히 슬퍼할 때까지 옆에 있어 줄게.”라고 말해줄 수 없었는지 야속한 마음까지 들 수도 있는 것이다.

영석에게는 이 편지 한 장이 수아에게 닿을 수 있는 마지막 생명줄과도 같을 것이다.

"영석아, 밥 먹자. 콩나물국 끓였다."

정희의 목소리에 영석은 급히 편지를 품속으로 숨겼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상을 마주 앉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민우와 수아라는 두 개의 커다란 빈자리가 차가운 벽처럼 버티고 있었다. 영석은 숟가락을 들었지만, 밥알이 모래같았다.

'수아야, 너는 지금 밥은 먹고 있니?'


반 공기의 밥도 다 먹지 못한 채, 영석은 집을 나섰다. 솔직히 말해, 수아에게 전화를 걸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걸었다가 받지 않거나, 단호하게 “연락하지 마”라는 소리라도 들었을 때의 좌절감을 조금이라도 미뤄두고 싶었다. 그리고 수아를 이태원의 ‘리자’라는 경양식집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경숙이 입장을 봐서 만나주는 거라고 했던 기억까지 떠올리며 어떻게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우체국은 이미 문을 닫은 시간이었지만, 영석은 가슴팍에 든 편지를 쥔 채 가리봉 오거리의 낯선 어둠 속을 계속해서 서성이다 집으로 들어왔다.

정희가 이사 오면서 새로 산 빨간색 TV에서는 MBC의 ‘수사반장’ 오프닝 테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가리봉동의 첫날밤은 TV 속 최불암의 걸쭉한 목소리와 시끌벅적한 벌방 여자들의 목소리, 그리고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를 품에 안은 영석의 막막함과 함께 깊어 갔다.


다음 날 아침, 영석은 일찍 서둘러 집을 나섰다. 어젯밤 품속에 넣어두었던 편지를 드디어 우체국 직원에게 속달로 부쳐달라고 맡겼다. 우표를 붙여 창구 너머로 편지를 넘기는 순간, 그리고 우체국 직원이 편지봉투 겉면에 ‘속달’이라는 빨간색 스탬프를 찍는 순간, 그는 절벽 아래로 생명줄 하나를 던지는 기분이었다.

편지를 부친 후 그는 곧장 명륜동 학교로 향했다. 전철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학교 근처에 다다를수록 공기는 더욱 날카로워졌다. 교문 앞은 평소의 활기찬 모습 대신,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대검을 착용한 계엄군들이 두 줄로 늘어서 삼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들은 학생들의 가방을 거칠게 뒤졌고, 고압적인 태도로 출입을 통제했다.

영석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그들 사이를 지나 교무처로 향했다. 게시판마다 붙어 있던 화려한 대자보들은 처참하게 뜯겨 나간 채 흰 종이 조각만 흉하게 남아 있었다. 휴학계를 제출하는 영석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제 그는 학생이라는 마지막 보호막마저 스스로 걷어치운 채, 태종의 말대로 이 비극적인 시대의 한복판으로, ‘국가라는 기계’의 부속품이 될 준비를 마친 셈이다. 영석은 나오는 길에 과외도 입대 전까지만 하겠다고 도곡동과 청담동 학부모 모두에게 통보했다.


영석이 학교에서 돌아와 가리봉동 벌방의 눅눅한 공기 속으로 다시 들어왔을 무렵, 세상의 한쪽에서는 민우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 했던 ‘진실’이 거대한 권력의 기계 안에서 무참히 난도질 당하고 있었다.

5월 21일 저녁, TV 화면에 굳은 표정의 앵커가 나타나 정부의 공식 발표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광주 사태에 관한 계엄사령부 발표입니다. 현재 광주 시내는 불순분자와 고정간첩들의 선동에 휘말린 폭도들에 의해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무기고를 탈취하여 무장하였으며, 군인과 경찰을 살해하고 공공건물을 방화하는 등 반국가적 폭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TV 화면은 불타는 자동차와 몽둥이를 든 시민들의 모습만 계속해서 보여주고 시민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계엄군의 모습은 단 한 컷도 존재하지 않았다. 신군부가 장악한 언론 검열단의 가위질은 이처럼 완벽했다.

“세상에, 광주가 정말 난리가 났나 봐. 북한 놈들이 내려왔다는 소문이 진짜였어?”

퇴근하고 돌아온 옆방 여공들이 수돗가에서 발을 씻거나 설거지를 하면서 겁에 질린 목소리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벌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영석은 가슴이 서늘해졌다. TV 속 앵커가 내뱉는 ‘폭도’라는 단어 위로, 광주 시내 어딘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민우 형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정희는 짐 정리를 하다 말고 털썩 주저앉아 화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언론 통제라는 거대한 장막이 진실을 가로막고 있었지만, 정희의 가슴은 직감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영석아. 저게 정말 사실일까? 저 사람들이 정말 폭도란 말이냐? 민우 씨가, 그 착한 민우 씨가 폭도란 말이냐?”

정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영석은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입술만 깨물었다. 학교 교문 앞을 지키던 군인들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랐다.

“민우 씨는 저 불지옥 같은 곳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갔는데, 저기서 간첩 소리를 들으며 죽어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정희의 눈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이 툭 떨어졌다. 엄마가 전해준 민우의 ‘25일의 약속’이 머릿속을 스쳤다. 연락이 없으면 죽은 것으로 알라고 했다던 그 비장한 선언이, 이제 보니 단순히 계엄군과의 사투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폭도’로 낙인찍혀 영원히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까지 포함된 것임을 정희는 비로소 깨달았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상대를 규정해버리는 인간의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정희는 일동방직에서 배운 바 있다.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은 '아리아 인종이 우월하고 유대인은 해로운 존재' 라는 과학적 근거 없는 잘못된 신념을 국가적 이데올로기로 삼았다. 왜곡된 신념은 독일 대중의 증오를 자극했고, 끝내 600만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한 인류사 최악의 범죄로 귀결되었다. 이는 신념이 '도덕적 브레이크'를 상실했을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증명한다. 광기 어린 신념에 매몰된 인간은 마치 자신이 절대적 진리를 독점한 양, 동족은 물론 친구와 친척, 심지어 배우자의 목숨을 앗으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비극은 인간이 그 광풍의 한복판에 있을 때는 결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오직 자신이 칼날 끝에 선 피해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타인에 대한 사랑과 공존을 배우니, 이 얼마나 미련한 존재인가.


정희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곁에 있었더라면 차라리 가지 말라고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을 수 있었을 텐데. 왜 하필 그 무서운 데를 간단 말이야.”

영석은 정희의 어깨를 감싸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누나의 떨림이 손바닥을 타고 자신의 가슴속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그 역시 누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괜찮을 거야”라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공허한 위로뿐이었다.

가리봉동의 밤은 잔인할 만큼 평범하게 흘러갔다. 마당에서는 여전히 교대하여 잠자러 오는 여공들의 발소리와 두런거리는 소리가 계속되고 있었지만, 남쪽의 어느 도시에 남겨진 한 남자의 생사는 안개처럼 불투명했다.

“누나, 민우 형은 강한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반드시 약속을 지킬 거야. 25일 전에 반드시 전화할 거야.”

영석의 말에 정희는 대답 대신 소매로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벽에 걸린 낡은 달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5월 21일. 민우가 그어놓은 운명의 날까지 남은 시간은 단 나흘이었다. 그 나흘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노동의 시간이겠지만, 정희에게는 1분 1초가 1년 같은 피 말리는 형벌의 시간이 될 터였다.

두 사람은 불을 끄고 좁은 방에 나란히 누웠다. 천장의 얼룩진 곰팡이 자국이 마치 광주의 검은 연기처럼 보였다. 영석은 가슴팍에 넣어둔 편지의 감촉을 느끼며 생각했다. 수아에게 보낸 자신의 간절한 편지와, 광주에서 민우가 보내올 생존의 신호. 이 두 가지가 모두 무사히 도착하기를, 그래서 무너져가는 이들의 삶에 아주 작은 등불이라도 되어주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


영석이 어제 오전, 가리봉동 우체국에서 간절함을 담아 보냈던 속달 우편은 정확히 다음 날 오전, 쌍문동의 좁은 골목에 도착했다. 자전거가 끽소리를 내며 수아네 대문 앞에서 멈춰 섰다.

“속달요! 이수아 씨 계십니까?”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마루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만 바라보고 있던 수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나가서 대문을 열었다. 배달부가 내미는 하얀색 봉투 위에는 영석의 반듯한 글씨와 함께, 어제 날짜가 찍힌 ‘속달’이라는 붉은색 스탬프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봉투를 받아 든 수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그녀의 눈이 빨개지면서 앞이 뿌예졌다. 그녀는 배달부가 골목 어귀를 빠져나갈 때까지 멍하니 봉투만 바라보았다.


방으로 들어온 수아는 닫힌 문걸쇠를 확인하고서야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었다. 그 안에는 영석이 밤새 지우고 고쳐 썼을 처절한 고백들이 가득했다.

‘수아야. 지금 네가 어디에 있는지, 내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 곳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이 글을 쓴다... 사실 수아야, 나는 그때 너를 안고 싶었어...’

영석의 진심이 담긴 문장 하나하나가 수아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지켜주고 싶어서 참았다는 말, 그게 오만이었다는 뒤늦은 깨달음, 그리고 가리봉동 벌방에서 가난의 무게를 견디며 수아라는 등불을 붙잡으려 애쓰는 그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수아는 편지를 가슴팍에 꼭 끌어안았다. 입술을 깨물었지만 흐느낌은 새어 나왔다.

‘바보!’

수아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를 밀어내지 않으면, 영석은 이 진흙탕 같은 현실 속에서 결코 발을 빼지 않을 것임을. 그가 말하는 ‘생명줄’이 실은 그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어당기는 밧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수아를 더 괴롭게 했다.

‘내가 이보다 더 단호해져야 하나?’

수아는 눈물로 얼룩진 편지지를 바라보며 독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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