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재식이 형님과 그의 아들 원빈이를 만났다.
재식이 형님은 철학교수이고,
원빈이도 철학박사다.
오랜만에 형님을 뵐 수 있다는 것이 너무 기뻐서
성북구청 앞 세꼬시집으로 달려갔고
그곳에서 거나하게 취했다.
술자리에서
형님은 내 글들이
얼핏 보기에 매우 현상학적이라고 말했다.
오늘날 현상학에서 자아는
본질이라기보다 드러남에 가깝다.
나는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나타남이다.
주체는 고정되지 않는다.
나는 하나의 자아가 아니다.
그렇다면 나의 글쓰기는
책상 위에서 완결되는 형태가 아니라
타인의 인식 속에서
계속 생성되고 변형되는 경험일 것이다.
무엇이 사실인가 보다
어떻게 경험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승현이 형이
나의 글쓰기를 사기로 보거나
나를 다중인격자처럼 말하는 것과,
김병준 교수님이나 위진 교수님은
나를 작가라고 부르지만
경선영 교수님이나 이선화 간사님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 것 역시
내가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달라지는 드러남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렇다면 호칭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내 존재를 열어 두는 하나의 행위다.
누군가 나를 작가라고 부르면
나는 작가로 나타나고,
그렇게 부르지 않으면
나는 다른 모습으로 남는다.
그런데
경선영 교수님이나 이선화 간사님의 침묵은
부정이라기보다
아직 의미가 결정되지 않은
열려 있는 상태에 가깝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직 나 자신을 작가라고
선언한 적은 없지만,
이미 작가로서 세계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메를로퐁티(Merleau- Ponty)는
재식이 형님을 통해
“당신은 결정된 작가가 아니라
언어가 당신을 통과하며,
통과된 언어가 세계를 그려내고,
그래서 당신은
스스로 작가로 태어나고 있는
존재다.”
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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