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석이와 술 한잔하고 싶다.

by 서완석

한 잔의 술에 버지니아 울프를 띄웠던 박인환 시인과
안주보다 사람이 먼저라던 황동규 시인을
나는 좋아하는데,
내 친구 현이는 글에 술 냄새가 너무 진하다며
나를 타박한다.


그 옛날 부평 집,
명석이가 끓인 김치찌개에
소주를 원 없이 들이켜던 밤이 있었다.

검은 두건을 쓰고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악귀 같은 놈,
과거의 명석이라면 단숨에 때려눕혔을
그 암이란 놈에게
내 친구가 붙들려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오지 말라는 만류를 뚫고 찾아간 병실,
우리를 보고 웃던 친구는
순댓국밥이 먹고 싶다 했다.
거짓말처럼 국물 한 방울,
밥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는 국밥 한 그릇을 통째로 비워냈다.
그날 명석이의 목소리엔 다시 힘이 넘쳤고
나는 암이란 놈이
기어이 나가떨어진 줄로만 알았다.


작당 모의하듯
다시 번동 순댓국집으로 녀석을 부르려는데
임시 퇴원해 돌아간 김포 집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기 너머 친구는
다시 많이 아프다 한다.


며칠 전 신문에는
명석이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황동규 시인이
고급 위스키를 들고 웃는 사진이 실렸다.


의사는 명석이의 병이 술 때문이라 하지만,
나는 그 양반이 돌팔이라 믿고 싶다.
내 친구가 아픈 건
고급술이 아닌 값싼 소주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명석아, 어서 낫기만 해라.
내 방에 아껴둔
23년 산 밸런타인이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순댓국에
그놈을 얼음 가득 채워 마시자.


순댓국엔 어울리지 않는다 타박하는 놈이 있다면

그 얼굴에 시원한 얼음 한 바가지를 퍼붓고,


그날은 술 마시지 말라는 현이는 부르지 말자.

뜨거운 국물 앞에 마주 앉아

아무 말 없이 살아 있는 얼굴만 보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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