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정의 전설(8)

고누에 대한 말

by 서완석

아마 쉰여덟 해 전의 일일 게다.

탑정에는 시정(詩亭)이라 불리는 모정 두 채가 있어

신명 난 노인이 지그시 눈을 감고 “청사안~” 뽑아낸다.


선풍기는 양조장집 안방에서나 돌돌거릴 뿐

서늘한 마룻장에 목침 하나 베고

적삼은 훌렁 벗어 옆에 두고 베잠뱅이 골마리 느슨히 푼 아저씨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대작해 주러 온 파리 한 마리 귀싸대기를 후려친다.


지금도 거기 남아 있으려나.

어린 내가 아랫돔 모정 마룻장에 칼끝으로 꾹꾹 눌러 파낸 호박고누 판.

오른쪽 섬돌이 맞닿은 그 언저리,

마룻장 위에 내 유년의 손때가 아직도 화석처럼 박혀 있으려나.


기어이 한 판 더를 외치던 날 선 칼날은 무뎌지고

이제는 말을 쥐었던 손목의 힘마저 놓아줄 시간.


이기고 지는 게 대수더냐.

아침에 옥녀봉에서 떠올랐던 저 해가 전좌암과 병바위에 걸쳐 있다가 구암과 선동을 훑어 오르더니 이미 화시산 능선쪽으로 지고 있는데.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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