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누에 대한 말
아마 쉰여덟 해 전의 일일 게다.
탑정에는 시정(詩亭)이라 불리는 모정 두 채가 있어
신명 난 노인이 지그시 눈을 감고 “청사안~” 뽑아낸다.
선풍기는 양조장집 안방에서나 돌돌거릴 뿐
서늘한 마룻장에 목침 하나 베고
적삼은 훌렁 벗어 옆에 두고 베잠뱅이 골마리 느슨히 푼 아저씨들,
양은 주전자에 담긴 막걸리 한 사발 마시고
대작해 주러 온 파리 한 마리 귀싸대기를 후려친다.
지금도 거기 남아 있으려나.
어린 내가 아랫돔 모정 마룻장에 칼끝으로 꾹꾹 눌러 파낸 호박고누 판.
오른쪽 섬돌이 맞닿은 그 언저리,
마룻장 위에 내 유년의 손때가 아직도 화석처럼 박혀 있으려나.
기어이 한 판 더를 외치던 날 선 칼날은 무뎌지고
이제는 말을 쥐었던 손목의 힘마저 놓아줄 시간.
이기고 지는 게 대수더냐.
아침에 옥녀봉에서 떠올랐던 저 해가 전좌암과 병바위에 걸쳐 있다가 구암과 선동을 훑어 오르더니 이미 화시산 능선쪽으로 지고 있는데.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