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5인

by 서완석

며칠째 장염에 몸살 기운이 뼈마디를 훑고 지나갔다. 하지만 한숨도 이루지 못한 몽롱한 정신을 억지로 깨워 버스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번동의 ‘벼랑순대국’. 오늘은 바다 건너 미국 땅, 메릴랜드 실버스프링의 그 막막하던 세월 속에서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며 서로의 어깨를 다독이던 성균관대학교 선후배들이 뭉치는 날이다. 사실 어제는 이철송 교수님, 이웅영 교수, 그리고 아끼는 후배 다율이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으나, 도저히 약속 장소에 나갈 기력이 없어 결례를 무릅쓰고 양해를 구하며 두문불출했었다. 하지만 병원 주사와 처방약의 힘을 빌려 오늘은 기필코 자리를 지켜야 했다. 단국대 천안캠퍼스 약대 교수인 서동완이가 주도해 몇 년 만에 성사된 귀한 만남인 데다, 천안에서 먼 길을 올라오는 서 교수를 홀로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건국대 의대 최완수 교수와 국립암센터 출신의 유능한 연구자 윤성필 박사까지 합세하니, 우리 가슴 속엔 수십 년 전의 잊지 못할 추억들이 이미 예고편처럼 들떠 있었다.


나는 이들 중 가장 나이 많은 큰형이자 이미 정년을 맞이한 처지지만, 동생들은 여전히 현역의 중심에서 팔팔하게 뛰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걱정거리는 따로 있었다. 엉뚱한 흰소리는 기본이요, 여기서 다 밝힐 수 없는 해괴한 객기로 평생 내게 고개를 들지 못할 죄를 지었던 윤성필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늘도 늦지는 않을지’, ‘그 특유의 묘한 표정으로 사람 혼을 빼놓지는 않을지’, ‘그러다 제일 먼저 취해 삐치며 집으로 가겠다고 앙탈을 부리지는 않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인물이 바로 그다.


오전 11시 반에 문을 여는 ‘벼랑순대국’은 11시부터 대기 줄이 길게 늘어지는 맛집이다. 아픈 몸을 이끌고 서둘러 도착하니 다행히 내 앞엔 대기자가 두 명뿐이었다. 나는 대기 명단 2번란에 ‘4명’이라 적고 전열을 가다듬었다. 11시 28분, 윤성필 박사와 서동완 교수가 속속 도착하는데 카톡방에 난데없는 메시지가 떴다. “종로3가역에서 10분 이내 거리?” 번동 식당 앞에서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소리인가. 메시지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최완수 교수였다. 역시 세상사는 예측대로 흐르지 않는다. 윤성필이 사고를 칠 줄 알았더니 진짜 복병은 최교수였다. 멍청한 놈은 늘 의외의 곳에 숨어있는 법이다. 국밥이 준비되는 시간을 계산하니 최 교수도 25분이면 오겠다 싶어,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고자 그의 국밥까지 미리 주문을 넣었다.


그런데 다시 온 최 교수의 답장이 가관이다. 몇 호선이냐 물으니 당당하게 4호선이 아닌 3호선이란다. 며칠 전 서 교수가 분명히 이곳 주소를 공유했거늘, 최 교수의 변명은 더 황당했다. “챗GPT가 그러던데? 벼랑순대국은 종로 3가에 있다고.” 이 대목에서 나는 대한민국 교수 사회의 위기를 느꼈다. 이런 사람을 교수로 뽑은 건국대는 깊이 반성해야 한다. ‘벼랑순대국’은 서울에 단 한 곳뿐이다. 가끔 틀린 정보를 당당히 뱉어내고 지적하면 “실수했노라”며 또 다른 오답을 내미는 AI의 천연덕스러움을 몰랐다면, 최 교수는 윤성필을 능가하는 바보가 분명하다. 식당에 도착해 ‘기술적 특이점’ 운운하며 변명이라도 하면 머리통 한 대를 쥐어박아주리라 다짐했다. 소주 한 병을 더 시키며 시간을 끌었지만,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주인장의 눈치가 정수리에 꽂힐 때쯤에야 최 교수가 나타났다. 식어버린 국밥을 흔쾌히 다시 데워주신 주인장께 경의를 표한다. 식사비를 내겠다는 서 교수를 제치고 내가 계산을 마쳤는데, 소줏값 5천 원을 현금으로 낸 윤 박사가 갑자기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내가 샀다!” 어째 조용하다 싶었다. 그 지독한 개그 본능은 세월도 막지 못하는 모양이다. 나는 약기운 탓에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오후 1시, 서 교수가 서울역 발표회 참석을 위해 떠났다. 오후 5시에 예약된 ‘용두동복집’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우리는 동대문에서부터 걷기 시작했다. 황학동 풍물시장을 거쳐 동묘에 닿았다. 동묘(동관왕묘)가 촉나라 장수 관우를 모신 곳이라는 사실을 이 똑똑한 교수들이 처음 알았다니, 그들에게 역사를 전수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형의 어깨가 뿌듯하게 솟았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복집 부근 찻집에 앉아 우리는 실버스프링에서 보냈던 그 눈물 젖은 세월들을 반추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는 역시 윤 박사의 차지였다.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표정 연기를 보고 있노라니 암 연구보다는 개그 무대가 더 어울리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오늘도 “건강검진은 필요 없다”는 해괴한 논리로 우리를 당황시켰다. 설득을 포기한 나 대신, 회의를 마치고 합류한 서 교수가 다시금 그의 궤변을 반박하기 시작했다. 아, 실버스프링의 그대들이여, 아직도 윤성필이라는 인간에 대해 학습이 되지 않았단 말인가? 아내와 대판 싸우고 집을 나왔다더니 정작 그날 저녁 슬그머니 귀가했다는 그가, 그걸 ‘가출’이라 우기는 뇌 구조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건국대 로스쿨에 성대 출신이 없어 외롭다던 후배 다율이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와서 술 한잔하라”는 말에 그는 냉큼 달려오겠단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인연인가. 귀여운 다율이가 합류하자 선배 셋은 기다렸다는 듯 술을 부어대기 시작했다. 서 교수는 복불고기, 복튀김, 복맑은탕에 볶음밥까지 코스로 주문하고는 소주와 맥주를 깔아놓더니 카운터로 가서 기습적으로 계산까지 마쳐버렸다. 장인 기일이라 인천에 가야 한다는 최 교수도, 천안행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 서 교수도 광란의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사장님이 술병을 한차례 치웠음에도 탁자 위엔 다시 술병이 쌓여갔다. 갈 생각을 않는 동생들 사이에서, 낮에 이철송 교수님과 고량주 반 병을 마셨다던 다율이의 눈이 드디어 풀리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몸이 아파 술을 조금만 마셔서 맨 정신인 나만이 이 아수라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입가심으로 맥주 한잔 더 하자는 최 교수의 제안에 누구 하나 반대하지 않았다. 나만 괴로웠다. 이게 다 실버스프링의 그 뜨거웠던 우정 때문일까, 아니면 다율이가 와서 흥이 난 걸까? 혹은 아픈 큰형을 위로하려는 눈물겨운 효심이었을까? 얼굴이 벌게진 윤 박사에게 밀크씨슬 두 캡슐을 먹여 진정시킨 뒤 떠나야 할 두 사람을 배웅했다. 그리고 성필이와 다율이를 택시에 태웠다. 늘 그렇듯 다율이의 집 앞 계단까지 확인하려는데, 이 친구가 자꾸 현관 비밀번호를 틀린다. 우여곡절 끝에 현관문이 열리고 그가 계단을 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 다시 택시에 올라 윤 박사를 성수역에 내려주었다. 그리고 월곡동 ‘삼양라운드스퀘어’로 가자고 했다. 운전기사는 스물여섯 살의 당찬 여성분이었다. 김제에서 올라온 경찰학과 출신의 그 씩씩한 모습이 대견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낯선 동네다. 불닭볶음면의 신화로 본사를 퇴계로로 이전했다는 사실을 깜박한 내 실수였다. 다시 월곡동으로 돌아와 다율이에게 괜찮으냐 물었더니, 한참 뒤 메시지가 왔다. “괜찮은데 휴대폰이 없어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다율이를 불러낸 내 탓인가 싶어 서둘러 카카오택시 앱으로 기사님께 전화를 돌렸다. 운전 중이니 이따 연락 주겠다는 기사님의 대답에 피가 말랐다.


그런 줄도 모르고 단톡방의 세 놈은 “오늘 너무 행복했다”며 이모티콘을 날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메시지가 왔다. “휴대폰 찾았어요. 침대 밑에 있었어요.” 당장 전화를 걸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헤헤헤”였다.


아! 다율이를 어찌할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그놈의 실버스프링이 사람 여럿 잡는 하루였다. 아니 나만 잡은 하루였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서동완, 서완석, 윤성필, 최완수

번동에서 수유역으로 가는 버스 안

동묘

벼랑순대국, 저는 지금 (특)순대국 기다리는 중

최완수 교수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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