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by 서완석

며칠을 심하게 앓았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있으니

책들이 제 발로 걸어와

내 앞에서 글자들을 풀어놓았다.

활자들은 줄을 맞추지 못하고

열에 들뜬 내 몸처럼 비틀거렸다.


천장의 형광등은

옷 벗은 두 놈이 마주 서서

내가 깨어 있는지 확인하듯

나를 내려다보며 비웃고 자빠졌다.


아침에 코피가 났다.

얼마나 기다리던 피냐.

이제야 내 안의 무언가를 제대로 태우고 있다는

뜨거운 신호 아니더냐.

치열하게 살았다는 증거이니

어디 가서 자랑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늘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던 몸뚱아리가

숟가락을 밀어낸다.

먹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단호한 태도였다.


오늘 비가 내릴 거라는데

겨울도 저 혼자 심하게 앓으며

끝내 몸져눕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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