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를 추모하며
그저 소주 두어 병, 빈대떡 하나면 충분했다.
지배하려는 욕망은 남김없이 게워낸 채,
말간 진심으로 억압 없는 대화를 했어야 한다.
내 아가리를 닥치게 할 타인의 말을 기어이 들었어야 한다.
그러면 기울지 않는 마음이 모여 그와 나의 삶이 웃을 수 있었다.
기울지 않는 마음들이 모여 비로소 서로의 빈 잔을 채우는 광장이 될 수 있었다.
나와 그가 서로를 정복하려던 허기가 지나쳤다.
상대의 숨결이 말다운 말이 되어 돌아올 때까지
마침표를 뺏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어야 한다.
나를 낮추어 그를 가두지 않고
가슴의 온기에 닿으려 발버둥 쳤어야 한다.
결국, 그를 온전히 놓아주었어야 한다.
권력의 고함과 돈의 계산이 쓸고 간 자리,
그 말갛게 씻긴 폐허 위에 나는 홀로 서 있다.
이제 광장에는 그의 목소리 대신
빈 술잔에 고인 웅성거리는 물음표들만 가득하다.
위르겐 하버마스교수님은 2026년 3월 14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하버마스에게 '이성'은 사물을 조작하거나 타인을 자신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도구적 이성'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타인과 상호 이해를 추구하고 강제없는 합의에 도달하는 '의사소통적 이성(Communicative Reason)'으로서 그는 '억압 없는 대화'를 통해 우리 삶의 터전인 '생활세계'를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돈(자본)과 권력(관계)에 오염된 계산적인 말이 아니라, 서로를 대등한 주체로 인정하며 진심으로 이해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민주주의의 뿌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고 경청하는 '광장'에서 오직 '더 나은 논증의 힘'만이 승리하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따라서 그에게 대화를 거부하거나 파괴하는 자는 대화를 '이해'의 수단이 아니라, 상대를 속이거나 굴복시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지배의 도구'로 쓰는 자입니다. 또한 타인의 목소리를 지우고 오직 자신의 목소리만 광장에 울리게 하려는 자이며, 인간적인 유대와 진심보다는 돈의 계산과 권력의 위계로만 세상을 보며, 대화의 가치를 '효율성'으로만 재단하는 자입니다. 결국 그에게 대화를 거부하는 자는 "상대를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정복해야 할 대상이나 이용할 수단으로만 대하는 오만한 자", 즉 '민주주의의 적'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