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목교

1978년-1980년 언저리

by 서완석

제2화 숙희(2)


옆집 사내는 영석의 집에 들어오지 못한 채 삽짝문에 매달려 서 있었다. 희미한 전등불에 벌레가 시커멓게 달라붙어 있고, 사내의 모습은 마치 유령 같았다. 삽짝문이라기보다는 주워 온 나무판자 한 장이 합판집에 대충 붙어 있을 뿐이었다. 전등도 전봇대에서 불법으로 끌어온 전력선에 의지하고 있어 깜박거리며 위태로웠고, 축축한 바닥 위에 흩어진 전선은 언제든 감전이나 화재를 부를 듯했다.

“나씨, 얼른 김씨를 바닥에 눕히고, 두 손 겹쳐 가슴 한가운데를 계속해서 누르세요!” 사내가 소리쳤다.

숙희가 소리치며 뛰쳐나가자 그제야 사람들은 김씨가 쓰러진 것을 알아차렸다. TV에서 눈을 떼고 김씨를 흔들며 정신 차리라 외쳤지만, 서로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내가 소리치고 나서야 얼룩이 진 셔츠와 후줄그레한 바지를 입은 나씨가 앞으로 나서 김씨의 가슴을 힘껏 계속해서 눌렀다. 순간, 정적 속에서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공사판에서 단련된 듯한 그의 구릿빛 팔뚝에만 모였다.

그 와중에 영석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동네엔 왜 이름이 없지? 왜 모두 김씨, 나씨, 이씨, 최씨라고만 부르는 거지?”

영석의 누나는 양재기에 찬물을 떠왔고, 숙희 엄마는 머리에 쓰던 수건을 벗어 연신 부쳐댔다. 숙희는 겁먹은 얼굴로 엄마 곁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사내는 여전히 사람들 곁으로 오지 않고 멀찍이 서서 지시만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양평지서에서 나온 경찰은 김씨의 시신을 형식적으로 훑어보고 돌아갔다. 며칠 후 김씨가 무연고자로 처리되어 세브란스병원 해부학 실습용으로 보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숙희 엄마는 “어쩐디야, 불쌍해서…” 하며 눈물을 흘렸지만,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은 무덤덤했다. 다만 신부 한 분이 성체 성사를 집전하고 장례를 맡았다고 했다. 그는 판자촌 주민들의 재정착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이 판자촌에 사는 사람들을 시흥 어딘가로 집단 이주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토요일 오후에 숙희가 영석을 찾아왔다.

“오빠, 뚝방에 안 갈래?”

영석은 옷을 챙겨 입고 숙희를 따라나섰다. 숙희는 손을 꼭 잡고 신난 눈치였다.

“숙희는 몇 살이니?”

“열 살.”

“어느 학교 다녀?”

“양평국민학교.”

“공부 열심히 하겠네.”

“공부 못하면 공순이 된다잖아.”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지.”

“울 아저씨도 좋은 대학 나왔는데 백순데 뭐.”

열 살 아이의 입에서 ‘백수’라는 말이 나오자, 영석은 잠시 말을 잃었다.


멀리 경인고속도로 건너 파란 벼가 익어가고 있고, 김포 비행장을 오가는 비행기들이 붉게 물든 하늘을 가로질렀다. 안양천에서는 하수와 폐수가 뒤섞인 냄새가 풍겼다. 판잣집 지붕은 합판, 골판지, 루핑 페이퍼로 어지럽게 덮여있었으나, 그 틈을 뚫고 굴뚝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영석에게 그것은 가까스로 생존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숨결 같았다.

“그런데 왜 아버지를 아저씨라 불러?” 영석이 물었다.

“울 아버지 아니거든. 울 아버지는 공장에서 죽었어. 다섯 해 전에.”

숙희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뒤에 깔린 그림자는 무거웠다.

영석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나 숙희 엄마가 왜 굳이 사내를 아버지라 부르라 하는지는 의문이었다.

숙희는 또 말했다.

“동네 사람들은 우리 아저씨를 폐병쟁이라 해. 근데 폐병쟁이가 뭐야?”

영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폐결핵을 앓았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초, 쌀쌀한 바람이 여전히 이어지던 봄. 영석은 한 달 넘게 감기를 앓고 있었다. 인천 수도국산 산꼭대기에 있는 월세방은 눅눅한 흙냄새와 곰팡이 냄새가 가득했고, 벽에는 습기 때문에 얼룩이 져 있었다. 낮에는 대한통운 사무보조로, 밤에는 야간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는 지친 얼굴로 돌아오곤 했고, 영석의 등록금은 이미 3기분이나 밀려 있었다.

누나가 사다 준 판콜과 정체 모를 가루약도 소용이 없었다. 기침은 밤낮없이 이어졌고, 밤이 되면 열이 오르내리며 땀이 이불을 적시거나 오한 때문에 벌벌 떠는 경우도 있었다. 영석의 몸무게는 50킬로가 채 되지 않았다.

가장 괴로운 것은 학교생활이었다. 교련대회를 앞두고 방과 후에 매일 태권도 훈련을 하고, 체력장을 위해 천 미터 달리기를 강제로 해야 했는데, 영석은 늘 꼴찌였다. 그리고 그 벌로 팔굽혀펴기와 구보를 할 때마다 식은땀이 쏟아져 금세 쓰러질 것만 같았다.

결국 어느 날, 영석은 운동장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뜨니 병원. 곁에는 체육선생님이 서 있었다.

“이 정도 될 때까지 치료도 안 하고 있었다니.”

X선 사진을 들여다본 의사는 단호히 말했다.

“폐결핵이야. 다행히 약을 복용하면 전염력은 급격히 줄어들지. 그런데… 주 2회 이상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가능할까?”


영석은 대답하지 못했다. 치료비와 약값이 머리를 짓눌렀다. 밖으로 나간 의사와 체육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주고받는 말이 들려왔다.

“수도국산에 산다지?”

“너무 딱하다.” 체육 선생님의 친구라는 의사 선생님 목소리는 작아서 들릴 듯 말 듯 했다.

잠시 뒤, 의사 선생님이 다시 들어와 말했다.

“내 고등학교 동창인 네 체육 선생님 얼굴을 봐서 치료비와 약값은 받지 않으마. 대신 내가 주는 약을 꾸준히 먹어야 한다, 폐결핵은 소모성 질환이라 몸을 갉아 먹는 병이란 말이다. 그러니 약을 복용하면서 고기도 꼭 먹어야 한다. 알겠니?”

영석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약 한 보따리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약을 먹기 시작하자, 소변이 붉게 변했고, 세상이 기울어진 듯 발밑의 땅은 늘 파도처럼 출렁였다.

“이번엔 2차 약이다. 3차 약까지 쓰고도 재발하면 방법이 없어.” 의사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영석은 6개월간 꾸준히 약을 먹었고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영석은 판잣집 평상에서 모기장 속에 홀로 누워 있는 숙희네 ‘아저씨’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숙희 아저씨는… 이제 방법이 없는 건가.”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오래 해?”

숙희가 네잎클로버를 들고 달려오며 소리쳤다. 서쪽 하늘은 붉게 물들며 어스름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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