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목요일 아침마다 생각나는 글을 씁니다
날씨가 너무 춥다. 그냥 춥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뼛속까지 시려 온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지금 사는 곳은 오래된 구옥이다 가스를 마음껏 틀기엔 요금이 먼저 떠오른다.
그래서 잘 때는 장판만 켜 두고 이불을 깊게 뒤집어쓴다 아침에 눈을 떠 이불 밖으로 나올 때면
마치 목욕탕에서 찬물에 발을 담그는 것 같은 감각이 밀려온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불 밖 세상은 유독 쉽게 발을 들이기 어려운 곳이다. 전날 밤, 불안은 심장 가까이까지 그림자를 드리웠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잠을 설쳤고 그 여파 때문인지 오늘 아침의 추위는 더 날카롭다.
일하러 가기 1~2시간 전,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잠들자”라고 다짐했던 어제의 나는 이미 깨어 있으면서도
굳이 지금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핑계를 만들어낸다.
알람은 다섯 번이나 울리고,
나는 다섯 번이나 미룬다.
왜 나는 이 세상에 나왔을까.
이 질문은 크지도, 날카롭지도 않게 나지막하게 나를 옭아맨다.
물론 이 생각이 나를 낳아 준 부모님의 못에 대못을 박는 이야기라는 것도 안다.
그렇다고 삶이 싫은 것도, 세상이 원망스러운 것도 아니다. 그저 이 유난히 추운 아침과 선명하지 않은 미래가
내 머리끝부터 바싹 마른 발꿈치까지 차갑게 잠기게 할 뿐이다.
긍정과 부정, 끝없는 책임감이 시야 가장자리에서 흐릿하게 흔들린다.
천장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고,
뒤돌아 연인의 잠든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반대로 돌아
알람 진동에 바닥으로 떨어질 것 같은 핸드폰을 멍하니 본다.
“이제 더 이상 선택지가 없으니까, 어쩔 수 없어…”
혼잣말을 공기 중에 한 번 흘려보낸 뒤 나는 몸을 일으킨다.
왜인지 모르게 이불 반을 밖으로 빼낸 채 웅크리고 있는 연인에게
내 이불을 김밥 말듯이 한 바퀴 둘러주고 조용히 이불 밖으로 나온다.
철학자 니체는 고통을 제거하려 하지 말고
그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라고 말했다.
이불 밖으로 나와 찬 공기가 살결에 닿을 때,
이 집에서 가장 차가운 타일로 둘러싸인 화장실로 향할 때,
옷을 갈아입고 영하 10도의 바깥으로 나설 때
이 모든 순간은 분명 고통스럽다.그런데 살결에 닿는 차가운 공기는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다.
“너, 오늘 하루도 살아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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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추운 영하의 날씨를 이겨내고 밖으로 나온 모든이들에게 응원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른 아침 에세이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