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인생의 갈림길에서 내가 택한 길
남양주 축령산은 서울 근교의 여느 산들보다 고요하다. 오래전 늦가을 아침, 안개가 자욱한 산길을 배낭 하나 메고 터벅터벅 걸었다. 굽이진 길 위에 떨어진 낙엽마다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말없이 계절의 깊이를 새기고 있었다. 흰머리가 늘어가는 나이, 서리 낀 풍경은 더 이상 쓸쓸함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온 세월과 마주하는 묵직한 울림이었다. 내 인생의 계절 또한 저무는 가을 어디쯤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안개처럼 번졌다.
비탈길을 오르던 중, 희미한 사람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녀 두 사람의 대화였다. 축령산 자연휴양림 펜션에서 하룻밤 묵은 이들이 아침 산책을 나선 듯했다.
조금 더 오르자 갈림길이 나타났다. 한쪽은 임도를 따라 빙 돌아가는 길, 다른 한쪽은 가파른 오솔길이었다. 안개 속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질 무렵, 남자의 중저음이 산중에 퍼졌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었다.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낭송은 깊고 낮았다. 안개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는 시의 여운을 한층 짙게 만들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였다. 마치 시인 프로스트가 그 짙은 안개 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낭송이 끝나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멋진 낭송이네요. 이 안개 속에서 ‘가지 않은 길’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남자는 머쓱하게 웃었다. 시는 낭송자의 목소리에 따라 한 폭의 그림이 되기도, 서정적인 노래가 되기도 한다. 그의 목소리는 축령산의 고요한 아침을 한 폭의 묵화로 물들이고 있었다.
피천득 선생을 만난 적이 있다. 수필가 김진식 선생의 사무실에서였다. 그의 수필집 《인연》을 감명 깊게 읽은 터라, 마주 앉은 순간 가슴이 콩콩 뛰었다. 《인연》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와의 교류가 기록되어 있다. “당신의 시는 화려하지 않고 그윽하며 어슴푸레하다.”라는 구절은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 구절에 밑줄을 치며 중국의 시성 두보를 생각했다. 시를 잘 이해하려면 그 시인의 생애를 아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두보는 전쟁과 방랑 속에서 비참한 삶을 살았다. 자식이 굶어 죽는 아픔을 겪고, 집도 절도 없이 떠돌다 60세도 안 되어 객사했다. 그의 시에는 잔잔한 슬픔과 인간의 따뜻한 정이 짙게 녹아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 또한 그러했다. 농부 시인, 자연 시인 등으로 불리며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수상했지만, 그의 삶은 영광만큼이나 우울했다. 11세에 아버지를, 26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여동생을 정신병원에 보내야 했다. 자신과 어머니, 아내와 딸 모두 우울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그 역시 안정되고 편안한 명문대학 교수의 길을 거부하고, 글 쓰고 강연하는 일로 최소한의 생계를 벌면서 밭을 가는 가난한 농부의 삶을 살았다. 그의 시는 평이하여 쉽게 읽히지만, 삶에서 건져 올린 깊은 철학적 사유와 성찰이 서릿발처럼 폐부를 찌르는 듯했다. 그의 시가 내포하는 '선택'의 무게는 곧 그의 삶의 궤적과 다르지 않았다.
〈가지 않은 길〉을 처음 읽은 것은 청소년 시절이었다. 그때는 시의 무게를 몰랐다. 그러나 40대가 넘어 삶의 갈림길에 서보니, 시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나는 출판계에서 일하며 여러 선택의 순간을 맞았다. 그중 하나가 1990년대 중반, 서근석 교수와의 만남이었다. 그는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낸 풀잎출판사를 이끌고 있었고, 내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출판사를 맡아주시오. 월급 사장으로 전적으로 밀어드리겠소.”
그날 이후 며칠 밤을 뒤척였다. 마음만 먹으면 바로 사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계산기를 두드리며 경영을 고민하는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글을 만들고, 작가들과 교류하며 사유하는 일에서 더 큰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결국 그 제안을 거절했다. 시간이 흘러도 가끔 그날의 장면이 불쑥 떠오른다. ‘그 길을 택했다면 지금쯤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미련이 남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그 미련조차 나를 성장시킨 하나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선택을 한다. 어떤 선택은 새로운 길을 열고, 어떤 선택은 스스로를 단련시킨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라고 말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며, 정답이 없기에 고뇌한다. 젊은 날의 나는 성공으로 향하는 ‘곧고 빠른 길’을 선호했다. 그러나 살아보니 인생은 곧은 길이 아니라, 굽이진 오솔길 같았다. 길을 잃고 헤매던 시간 속에서 오히려 길의 의미를 배웠다.
피천득 선생님을 뵈었을 때 〈가지 않은 길〉 말고 프로스트의 다른 시 한 수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자작나무〉를 말씀하셨다. 시집을 사서 읽어 보니 마음속 깊이 와닿았다. 살아오면서 "인생은 꼭 길 없는 숲 같아서"라는 구절을 떠올릴 때가 몇 번 있었다. 정말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처럼 앞날이 막막하게 생각되던 암울한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길을 잃고 헤매던 그때, 나는 길의 의미를 배웠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미지의 세계가 지닌 환상 때문이다. 행복의 파랑새는 멀리 있지 않았다. 화려한 사장의 길 대신, 글을 통해 사람들과 조용히 소통하는 지금의 이 길이 내게는 진정한 파랑새였다.
이제 나는 깨닫는다. 후회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걸어온 길의 의미를 알아보는 일이다. 그 길 위에서 배운 지혜가 내 안의 나침반이 되어 다시 새로운 갈림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해 준다.
Life에는 늘 ‘if’가 있다. 그 안에는 수많은 가능성과 유혹이 숨어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해득실보다 성숙을 택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40년간 글과 함께 걸어온 여정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가지 않은 길을 미련 없이 떠나보내고, 내가 걸어온 길 위에 흔들리지 않는 나침반을 세워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