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내 고향 해남 뿌리말로 허는 소리
문득 해남 뿌리말이 그리워서 사랑방 하나 열었소.
거창한 건 아니고, 생각날 때 한 자락씩 올릴 거요.
오다가다 들러서 “우리 동네는 요래 불렀소” 한 마디씩 보태주소 잉!
그라제, 들어오이소.
50년대 끝트머리,
59년 돼지띠인 나는 초꼬지불 밑에서 지내다 전등 켜지는 기적을 봤소.
보릿고개 넘던 가난과 지금 첨단 시대를 견주면 GDP 100배는 올랐는데,
우리 마음도 그만큼 크고 넓어졌을까?
소설과 희곡으로 글농사 시작해 출판사 편집자로 마흔 해를 넘겼소.
글로 먹고살았고, 글 다듬으며 살아왔소.
그런데 나이 들수록 새로운 말보다 오래된 말이 자꾸 생각나오.
머리로 배운 말보다 몸에 먼저 배어 있던 해남 말이 그리워지오.
논두렁에서, 부엌에서, 마루 끝에서 오가던 그 말씨들
–문법은 허술했어도 사람 상하게 안 했고, 짧았지만 사정은 늘 넉넉했소.
정리하려는 것도, 보존하려는 것도 아니오.
다만, 잊히기 전에 한 번 더 불러보는 일을 하고 잡은 것이오.
말은 쓰지 않으면 사라지니까,
사라지기 전에 살갑게 한 자락만 남겨 두려 하오.
형식은 이런 식으로 이어갈 것이오.
[그라제 한 자락]
전라도 사람 말버릇 가운데 가장 자주, 또 가장 편하게 튀어나오는 말이 있다.
“그라제.”
상대 말이 옳을 때,
굳이 토를 달 필요 없을 때,
고개 한 번 끄덕이며 건네는 말이다.
“그렇죠.”도 아니고
“맞습니다.”도 아니다.
그라제.
여기엔 동의만 있는 게 아니다.
알겠고, 이해했고, 더 말 안 해도 되것다는 뜻까지 함께 들어 있다.
조금 더 힘을 주면 이렇게 된다.
“그 말이제.”
이건 이미 결론이 난 대화다.
설명은 끝났고, 판단도 섰다.
이 이상 말 보탤 필요가 없다.
서울 말로 옮기면 “그게 바로 요점이죠.”쯤 되겠지만, 그 말엔 이렇게까지의 체온은 없다.
전라도 말은 대개 길게 돌려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한마디에 사정이 다 들어 있다.
-그라제.
-그 말이제.
이 두 마디면 논쟁도 끝나고, 오해도 접힌다.
말이 살갑다는 건,
말이 부드럽다는 뜻이 아니다.
말이 사람을 피곤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어디선가 쓸데없이 길어진 말들을 들으면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라제.
-그 말이제.
이렇게 사랑방을 맨들었으니,
다음에 이어지는 소리는 길손들이 하나 골라줘도 좋소.
댓글에 “아따” “허벌나게” “거시기” 뭐든 던져보이소.
내가 그 말로 한 자락 풀어볼 거요. 그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