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ㅕ'를 'ㅐ'로 깎아 부르는 습관, 그 속에 담긴 '생존의 울림'
내 이름은 참말로 이명수여.
그란디, 내 고향 해남에서는 평생을 '맹수'로 불리며 살았다네.
사촌 아그들까지 맹운이, 맹돈이, 맹석이, 맹희가 돼부러쓰니, 아따, 거 참 희한한 일 아니것소?
이 즈음 되면 다들 궁금해할 것이네.
"도대체 왜 전라도 사람들은 'ㅕ'를 'ㅐ'로 요로코롬 깎아 부르기 좋아했을까?"
국어학자들이야 이걸 두고 단모음화니 개구도니 하면서 학술적으로 복잡허게 설명해댈 것이지만,
내 생각은 쪼까 다르네라.
내 살아온 경험과 삶의 이치를 더해 보니 말이여, 그 이유가 그리 어렵지 않더구먼잉.
가만 보랑께라. 굽었던 허리를 쭉 펴는 걸 '패다'라고 혔제.
애지중지하는 며느리도 '매느리'라 불렀고, 어지간히 별난 사람한테는 '밸시런 놈'이라 혀를 찼어야.
다들 입 모양을 한번 떠올려 보소.
'ㅕ' 소리는 입 안으로 뭔가 아끼고 감추듯 소리를 오목하게 모으는 느낌이 강허제.
그란디, 'ㅐ' 소리는 다르더구만잉! 입술을 양옆으로 시원하게, 활짝 열어재끼듯 소리를 밖으로 푸짐허게 뱉어내는 소리여.
맞아, 바로 이거라!
그 가난했던 보릿고개 시절, 먹을 것도 변변찮고 살림마저 팍팍했던 그때는 소리마저도 아낄 여유가 없었다네. 논두렁 너머로 부모님을 부를 때나 매느리를 부를 때, 우리는 목청껏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질러야만 혔어야. 그래야만 멀리까지 소리가 가 닿고, 팍팍한 삶 속에서 서로의 존재가 명확히 전달될 수 있었다네.
학술적인 '경제성'보다 더 절실하고 간절했던, 우리네 '생존의 울림'이었던 것이지.
이 한마디에 삶의 무게와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제.
이렇게 'ㅕ'를 'ㅐ'로 깎아 부르는 습관이 가끔은 웃지 못할 풍경을 맨들기도 한다네.
오래전 일인디, 해남 우리 집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데 이웃집 할매가 서울서 내려온 손녀딸 손을 꼭 잡고 지나가다가 나헌티 요로코롬 묻는 것이었어야.
"맹수 삼춘, 요새는 쩌어기 우체국서 펜지 안 온다요?"
그 옆에 있던 초등학생 손녀 눈이 시방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휘둥그래져서 요로코롬 되묻더구먼잉!
"할마니, 우리 핵교 화단에도 팬지꽃이 흐드러지게 폈는데! 우체국에서 꽃도 배달해 준당가?"
할매는 "먼 놈의 꽃 타령이냐!" 혀를 차셨지만, 나는 그 광경이 참말로 재밌었다네.
기가 막히제? 할머니의 '펜지'는 소식 끊긴 자식의 안부를 기다리는 간절한 편지(Letter)였고, 손녀의 '팬지'는 학교 화단에 피어난 알록달록한 꽃(Pansy)이었으니 말여.
가만히 보랑께라. '편지'라고 혀코롬 정직하게 발음하면 입술이 앞으로 툭 튀어나오면서 소리가 어딘가로 갇히듯 모이지 않것소? 그란디 '펜지'라고 발음하면 입꼬리가 귀 쪽으로 사알짝 당겨지면서, 마치 활짝 웃는 듯한 입 모양이 되는 것 아니것소?
아마 소식 끊긴 자식의 편지를 기다리던 에미의 마음이, 그 간절하고 절절한 마음이 'ㅕ'라는 좁디좁은 문에 갇히기 답답해서 'ㅐ'라는 시원한 문으로 터져 나온 것은 아닐까, 나는 그리 생각한다네.
그러니 우리 해남 할매들에게 펜지는 단순한 종이에 쓴 글귀가 아니라, 고된 기다림 끝에 입가에 피어나는, 아리고도 예쁜 '꽃'이었던 셈 아니것소?
이렇듯 우리 뿌리말 속에는 삶의 지혜와 깊은 마음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네.
앞으로도 이런 살가운 이야기들, 잊히기 전에 한 번 더 불러보는 일을 계속할 작정이네.
이 말들, 그냥 사투리가 아니당께라.
살아내느라 그렇게 발음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기록이었응께,
우리 함께 생각해 보면 어째것소 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