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매운 경고와 투박한 위로, 남도의 뿌리말에 깃든 삶의 서사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이나 큰누님, 큰형님에게 꾸중을 들을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따라붙던 말이 있었다.
내 몰골이 말이 아니거나, 하는 짓이 영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듯 혀를 쯧쯧 차며 내뱉던 한마디.
“쯧쯧… 학원이 신세 될라고 그러냐?”
“니는 아주 학원이 신세 될 줄 알아, 학원이 신세!”
그때의 ‘학원이’가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다.
다만,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괜히 세상에서 가장 딱한 처지가 된 듯 어깨를 움츠리곤 했다.
“학원이 신세가 돼야, 정신 차릴래?”
이 서슬 퍼런 엄포를 듣고 나면, 보지도 못한 ‘학원이’라는 인물이 내 미래에 드리운 먹구름처럼 느껴져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학원이 신세'라는 말의 뿌리를 더듬어 가면, 해남·강진 쪽 어른들 입에 떠돌던 이야기 하나에 닿는다.
그들 말로는 ‘학원이’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한다.
구한말이나 일제강점기 즈음, 큰 뜻을 품고 동지를 모아 거사를 도모했으나,
정작 날이 닥치자 폭우가 쏟아지거나 밀고가 생겨 기세 한 번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채 허망하게 붙잡혀 버린 인물. 끝내 이름만 남고 뜻은 이루지 못한 사람….
기록으로 딱 잘라 남은 것은 없다.
설령 그렇다 해도, 김학원이 실존했는지는 지금 와서는 따질 길이 없다.
어쩌면 ‘학원이’는 한 사람이 아니라, 그 시절 남도 땅에서 꿈을 꾸다 좌절된 여러 실패한 인물들의 기억이
한 이름으로 뭉쳐진 것일지도 모른다.
말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살아남는다.
그래서 남도 사람들에게 ‘학원이 신세’는 단순히 불쌍하다는 말이 아니다.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기회 앞에서 미끄러져 버린 처지,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경고다.
그 비극적인 ‘학원이’의 정서가 가장 농익게 터져 나오던 곳은 단연 ‘차부(車部)’였다.
하루의 고단함과 희비가 교차하던 그 공간은 지금은 ‘정류소’니 ‘터미널’ 같은 말로 불리지만,
그때는 오로지 ‘차부’가 전부였다.
털털거리는 버스가 매연과 먼지를 부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던 곳.
짐보따리를 들거나 머리에 인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곳.
가뭄에 콩 나듯 돈도 떨어져 있던 곳.
실제로 그곳은, 아이들에게는 떨어진 돈 하나가 행운이 되던 곳이기도 했다. 우리 동네 조무래기들은 가뭄에 콩 나듯 떨어져 있을 돈을 주우러 차부를 헤매곤 했다.
어느 해남 장날 저녁이었을까.
막걸리 기운이 거나하게 오른 사내가 비척거리며 차부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는 멀어지는 버스의 뒷모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좃빠지게 차부에 왔드니만 막차가 폴세 가부럿당께. 시팔것!”
‘폴세’라는 말은 ‘벌써’라는 서울말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속도감을 지녔다.
내 의지보다 한 발 앞서 달아나 버린 시간,
손쓸 틈 없이 닫혀버린 기회 앞에서 남도 사람들은 ‘폴세’라고 했다.
거기에 딸려 나오는 ‘시팔것’은 단순한 욕설이 아니다.
막차는 폴세 가버렸고, 집까지 걸어갈 길은 구만리.
그는 이미 ‘학원이 신세’가 된 자신을 향해 한숨처럼 그 말을 뱉어낸 것이다.
“정신 못 차리고 술 쳐 마시다가 학원이 신세가 되어부러서네, 잉.”
큰형님의 질책 속에 있던 ‘학원이 신세’와 차부에서 막차를 놓친 사내의 ‘시팔것’은 결이 같다.
모두가 고단했던 시절,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던 매운 경계이자 투박한 위로였다.
이제 해남 차부에는 ‘폴세’ 가버리는 막차도, ‘학원이 신세’를 경고하던 목소리도 드물다.
세상은 좋아졌고 말은 정갈해졌지만,
한마디에 인생의 사정을 다 담아내던 그 시절의 흙냄새 나는 말들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린다.
말은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 사라지기 전에, 오늘은 이 말 한 자락만 불러 둔다.
그리하여 이 말이, 사라지지 않는 생명력을 얻기를 염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