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왜곡, 의곡, 외곡

by 축성여석

사실을 틀어 전하는 일은 늘 “남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그러다 어느 날 문장을 쓰다가, 슬쩍 자신이 쓴 말이 마음에 걸린다.

‘이게 정말 틀어져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찾아온다.

그때 떠오르는 단어가 바로 왜곡이다.

1) 왜곡(歪曲)인가, 의곡인가?

사실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비틀어 전달하는 것을 ‘왜곡(歪曲)’이라 한다.

지금은 너무 당연한 표기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전마다 ‘왜곡’과 ‘의곡’이 뒤섞여 있었다.

서울대 이응백 교수 조사에 따르면, 당시 사전에서 ‘왜곡’이라 적은 곳은 4곳, ‘의곡’이라 적은 곳은 6곳이었다.

옥편에서는 이 글자를 ‘의’로 적는 경우가 더 많았고, 발음과 표기가 한동안 엇갈려 있었다.

‘왜곡/의곡’ 논쟁은, 사실을 비트는 것만큼이나 표기도 한동안 비틀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 왜 결국 ‘왜곡’으로 통일되었을까

갈피를 잡게 한 근거는 조선 시대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였다.

이 책에서 ‘歪’자를 ‘왜’로 읽는다고 밝히면서, ‘왜곡’이 역사적 근거를 가진 읽기가 되었다.

언론인이자 국어학자였던 고(故) 정재도는 ‘왜곡’을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꾸준히 주장하며 학계를 설득했다.

그 결과, 지금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의곡’, ‘외곡’을 찾으면 모두 ‘왜곡의 잘못’ 또는 ‘왜곡으로 가라’는 안내를 보게 된다.

‘왜곡’은 많이 쓰인 말이어서 아니라, 가장 오래된 근거 위에 서 있는 말이기도 하다.

3) 남과 북의 다른 선택

남한은 『훈몽자회』의 전통을 따라 ‘왜곡’을 표준으로 삼았다.

북한은 ‘강희자전’ 등의 음을 근거로 ‘외곡’을 표준으로 정했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 조작을 비판할 때, 남한에서는 ‘역사 왜곡’, 북한에서는 ‘력사 외곡’이라는 표현을 쓴다.

한 뿌리에서 나온 말이지만, 표준을 세우는 선택의 차이가 남북의 언어를 갈라놓은 사례 중 하나다.

4) 한 줄 정리 & 기억법

남한 표준어: 왜곡(歪曲) – 사실을 비틀어 전하는 일

비표준 표현: 의곡, 외곡(역사적으로 쓰였지만 현재는 ‘왜곡’의 잘못으로 처리)

기억법

‘왜’ 이렇게 비틀었지? → 왜곡

‘외곡’은 ‘외국 곡물(外國穀物)’이라는 전혀 다른 한자어라는 점도 함께 떠올리면 더 헷갈리지 않는다.


***

본 연재는 브런치에서 30회째 연재 중인 〈聰明記, 출판편집 40년의 기록〉의 현장 메모에서 언어에 관한 대목만을 따로 추려 묶은 것입니다. 〈聰明記〉가 삶의 장면들이라면 이 매거진은 그 장면들 사이에 남은 문장의 잔향에 가깝습니다.

[〈聰明記〉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brunchbook/mysoo50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 결제와 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