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人文學, 언박싱-① 聽(들을 청)

by 축성여석

한자는 오래된 문자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지금도 현재형이다.

이곳에서는 어려운 설명을 잠시 내려놓고, 상자를 열 듯 한 글자씩 꺼내어 본다.

외우기 위한 한자가 아니라, 살아보기 위한 한자.


한자 人文學, 언박싱-① 聽(들을 청)


耳 귀

王 임금

十 열

目 눈

一 하나

心 마음


聽 자를 가만히 풀어 놓고 보면, 귀 하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말을 하는 듯하다.

耳, 귀가 있고, 王, 임금이 있으며, 十과 目이 겹쳐 있다.

그리고 맨 아래에는 一과 心이 놓여 있다. 글자는 말이 없지만,

이 배치를 오래 바라보고 있으면 듣는 일에 요구되는 태도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귀를 열되, 아무 귀가 아니라 왕의 귀처럼 무겁게 열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열 개의 눈으로 상대를 살피듯, 말의 겉과 속을 함께 보라는 주문도 담겨 있다.

무엇보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않으면, 그 모든 감각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듣는다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에 가깝다.


우리는 흔히 말을 잘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지만, 실은 듣는 사람이 훨씬 드물다.

귀는 열려 있으나 마음은 이미 판단으로 가득 차 있고, 눈은 마주하고 있으나 생각은 다른 데 가 있는 경우가 많다. 聽이라는 글자는 그런 우리에게, 듣기 전에 먼저 마음부터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듯하다.


관청 청(廳) 자를 떠올리면 이 글자의 의미는 한 번 더 확장된다.

‘관청 청(廳)’은 ‘집 엄(广)’과 ‘들을 청(聽)’이 결합된 형성자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공간’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과거에는 궁궐이 그랬듯, 오늘날에는 SNS 라이브 방송이나 온라인 커뮤니티도 디지털 시대의 ‘관청’이 아닐까?

산에서 붓을 들 때도, 누군가의 말을 잘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글자를 쓴 적은 없었다.

다만, 획 하나를 긋기 전마다 마음이 고요해지는 경험을 반복했을 뿐이다.

이제 와서 보니, 그 시간 자체가 이미 聽의 연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줄어들수록, 듣는 자리는 조금씩 넓어졌다.

오늘은 누군가의 말을 조금 늦게 판단하고, 조금 더 오래 들어보고 싶다.

왕의 귀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하나만은 온전히 내어놓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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