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산에서 쓰던 글자, 일상의 질문으로 돌아오다
[프롤로그]
_"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에서 "한자 人文學 언박싱"으로
산에 오르면 말수가 줄어든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도록 혼자 산에 들어가 지필묵을 펼치고 ‘붓장난’을 했다. 서예의 기본적인 필법을 배우지 않았기에 더 조심스럽게 붙인 이름이었다. 서예라 부르기엔 모자랐지만,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엔 충분했다.
누가 보라고 쓴 것도 아니고, 잘 쓰겠다고 마음먹고 쓴 것도 아니었다. 그저 쓰다 보니 마음이 고요해지는 시간이 있었을 뿐이다. 한 획을 긋기 전에는 자연스레 숨을 고르게 되었고, 획이 어긋나면 종이보다 먼저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글자는 종이 위에 남았지만, 그보다 더 분명하게 남은 것은 그때의 마음 상태였다. 이 시간을 취미라고 부르면서도, 속으로는 늘 마음공부라 여겨 왔다.
오마이뉴스에 오랫동안 〈산에서 즐기는 인문학적 붓장난〉을 연재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산에서 노닐다가 문득 마음이 멈추는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쉬웠고, 그때 마주한 글자와 생각을 함께 기록해 두고 싶었다. 설명하려 들지 않았고, 가르치려는 마음도 없었다. 오늘 내가 쓴 글자가 오늘의 나를 어떻게 건드렸는지, 그 사실만 담담히 적어 두었을 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산에서 쓰던 그 글자들이 자꾸만 일상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왜 남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지, 왜 마음이 곧지 않으면 말도 비틀어지는지, 왜 어떤 공간은 사람의 말을 품고 어떤 곳은 끝내 듣지 않는지 같은 물음들이었다. 그 질문들 앞에서 나는 다시 한자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번에는 붓으로 쓰기보다, 눈앞에 글자를 올려두고 가만히 뜯어보기로 했다. 외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과 이 글자가 어디쯤 맞닿아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글자를 하나씩 꺼내어 부수와 획을 살피다 보니, 그 안에 오래 접혀 있던 태도와 삶의 결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이 연재의 이름을 〈한자 人文學 언박싱〉이라 붙였다. 상자를 열 듯 한 글자를 꺼내어, 그것이 요구하는 마음의 자세를 천천히 살펴보려는 시도다. 산에서 붓을 들던 시간과 책상 앞에서 글자를 바라보는 시간은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속도를 늦추고, 말을 줄이고, 마음을 먼저 살피는 일이다.
이 연재는 한자를 설명하기 위한 글이 아니다. 산에서 붓을 들며 해 오던 마음공부를, 이제는 글자 하나씩 풀어 기록해 보려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산에서 쓰던 글자가 집으로 돌아왔을 뿐, 그 글자를 대하는 마음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한자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내어 다시 바라보려 한다.
어느 봄날, 남양주 축령산 계곡에서
어느 봄, 고향 해남읍 금강저수지 옆 산길을 걷다가 정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