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人文學, 언박싱
_③ 誠(정성 성)

by 축성여석

한자는 오래된 문자지만, 그 안에 담긴 사유는 지금도 현재형이다.

이곳에서는 어려운 설명을 잠시 내려놓고, 상자를 열 듯 한 글자씩 꺼내어 본다.

외우기 위한 한자가 아니라, 살아보기 위한 한자.


한자 人文學, 언박싱-③ 誠(정성 성)


誠은 위에 말 言을 얹고, 아래에 이룰 成을 받치고 있다.

이 글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덕이 왜 쉽게 흔들리는지부터 떠오른다.

사람의 마음이 약해서라기보다, 마음이 하나로 모이지 않아서다. 말은 이미 앞서 나갔는데,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는 상태, 誠은 바로 그 어긋남을 조용히 드러내 보이는 글자다.

말은 쉽고, 이루어짐은 늘 시간이 걸린다.

입으로 한 말이 삶 속에서 끝내 도착해야 비로소 誠이 된다.

이 글자는 말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그 말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서 나왔는지를 묻고 있는 듯하다. 말과 마음 사이에 건너야 할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誠은 가볍지 않게 보여 준다.

우리는 정성을 흔히 열심히 하는 태도나 노력의 양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誠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성은 힘을 더하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흩뜨리지 않는 상태에 가깝게 느껴진다. 입으로 한 말을 마음이 끝까지 따라가고, 마음먹은 바를 말이 앞질러 달아나지 않게 붙잡아 두는 일이다.

사람들은 흔히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지극한 정성이면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말 뒤에 이어지는 지성무식(至誠無息)은 자주 잊힌다.

至(지극할 지), 誠(성실할 성), 無(없을 무), 息(쉴 식).

지극한 정성은 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늘을 감동시키는 일이 아니라,

정성이 스스로를 멈추지 않는다는 뜻에 더 가깝다.

한 번의 마음으로 끝내지 않고, 말한 마음을 거두지 않은 채 계속 데리고 가는 일. 誠은 바로 그 지속을 묻는 글자처럼 보인다. 정성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그래서 誠은 늘 조용하고, 눈에 잘 띄지 않는다.

聽이 마음을 비워 듣는 태도였다면, 德은 그 태도가 삶에 쌓이는 방식이었다.

誠은 그 둘이 흩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중심이다. 말이 앞서 나가지 않게 하고, 마음이 뒤처지지 않게 하는 힘은, 결국 정성에서 나온다.

산에서 붓을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잘 쓰겠다는 말이 앞설수록 획은 흔들렸고, 말이 사라졌을 때 오히려 손은 차분해졌다.

한 획을 긋기 전, 마음이 이미 그 자리에 와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시간이 필요했다.

말하지 않았기에 어긋나지 않았고, 그래서 그 시간은 오히려 誠에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말을 조금 줄이고 싶다.

대신 이미 한 말 하나를 마음으로 끝까지 데려가 보고 싶다.

誠은 새로 더하는 것이 아니라, 흩어지지 않게 지켜내는 일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한자 人文學, 언박싱 _② 德(덕 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