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조용한 권위: 웃음으로 편집하는 삶

제4화_웃으면 풀리고 웃으면 통한다

by 축성여석

웃음, 가벼움이 아닌 깊이

공자, 맹자, 노자, 장자…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시대를 초월해 우리의 삶을 밝혀왔다. 그러나 내게 가장 오래, 가장 가까이 삶을 가르쳐준 스승은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웃음'이다. 공자의 엄숙한 성찰도, 노자의 심오한 도도 귀하지만, 나는 웃음으로부터 삶을 부드럽게 감싸안는 법을 배웠다.

우리 속담에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이 있다. 웃음 짓는 문으로 온갖 복이 들어온다는 뜻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지만, 정작 우리는 왜 그리도 웃음에 인색할까? 혹시 웃음을 그저 가벼운 것, 진지함의 반대편에 있는 것으로만 여겨온 건 아닐까?

사실 웃음은 가벼움이 아니라 깊이의 또 다른 얼굴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큰 재주는 서툰 듯하고, 큰 곧음은 마치 굽은 듯하다"라고 했다. 진정한 지혜는 결코 무게를 자랑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리숙하고 유쾌한 모습 속에 숨어 있다. 웃음도 그렇다. 겉으로는 가벼운 표정 같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통찰과 포용이 담겨 있다.


웃음, 마음을 여는 기술

<동의보감>에서도 "기쁨은 마음을 기르고 백 가지 병을 없앤다"라고 하여 웃음을 만병통치약에 비유했다. 웃음은 몸과 마음을 가볍게 하고, 어두운 표정을 걷어내며, 타인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말보다 더 빨리, 더 깊이 전해지는 진심이 되기도 한다. 예전에 이런 문장을 보고 피식 웃은 적이 있다.

"돼지은행은 어린이를 구두쇠로, 부모를 은행강도로 만든다."

장난스러운 유머 같지만, 묘하게 가슴을 건드렸다. 가난하던 시절, 급한 살림에 부모가 아이의 돼지저금통을 몰래 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돼지의 배를 가르던 그 손에는 미안함도, 절실함도, 사랑도 깃들어 있었을 것이다.

피식 웃음이 터진 그 말속에, 가벼운 농담과 함께 가난과 가족의 사랑이 뒤엉켜 있었다. 웃음은 그렇게 뜻밖의 순간, 삶의 무게를 건드린다. 설명도 강요도 없지만, 그 짧은 웃음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나는 40년 넘게 편집자로 살아왔다. 멋있기보다는 꾸준했고, 즐겁기보다는 고단했다. 문장을 다듬고, 저자와 이견을 조율하며, 마감에 쫓기던 나날이었다. 어떤 날은 워드 파일 하나 여는 것조차 버거워 '퇴사'라는 이름의 폴더를 만든 적도 있다. 물론, 다음 날엔 지웠다.

이런 일상에서 나를 버티게 한 것은 유려한 문장력도, 해박한 지식도 아니었다. 오히려 웃음이었다. 한 번은 한 작가가 지나치게 날 선 원고를 보내왔다. "제 글은 날카로워야 제맛이에요"라며 퉁명스레 굴었다. 수정을 요청하자 그는 더 날이 섰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저도 제 펜을 갈아서 면도칼로 만들어드릴까요?"

그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편집장님, 유머 감각도 편집하시네요."

그 웃음 하나에 팽팽하던 분위기가 풀렸고, 우리는 함께 멋진 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웃음, 오늘 실천하는 지혜

웃음은 대화의 시작이자 갈등의 완충제다. 진지함만으로는 닿지 못하는 곳을 웃음은 가볍게 건너간다. 유머는 말하지 않아도 마음을 여는 설득의 기술이다. 나는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몇 번이나 웃을 수 있을까?"

마음 같아선 열 번쯤 웃고 싶지만, 현실은 '카톡 오타'에 한 번, '이체 실패'에 한 번, 사장님의 유머에 억지로 한 번. 그래도 세 번은 웃었다. 그 정도면 성공한 하루다.

웃음은 거창하지 않아도 그 안에 무한한 힘이 있다. 공자의 말씀은 깊은 숙고를 요구하고, 노자의 가르침은 오랜 사유를 필요로 하지만, 웃음의 지혜는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다. 부드럽게, 유쾌하게, 그리고 조용히. 웃으면 풀리고, 웃으면 통한다.

소중유도(笑中有道), 붓장난을 하려고 내가 급조한 한자이다. 웃음 속에 도가 있다는 뜻이다. 글을 짓고 다듬으며 살아온 세월이 내게 가르쳐 준 가장 귀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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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소중유도(笑中有道), 웃음 속에 도가 있다. 웃음은 가벼워 보여도 마음의 무거움을 덜어낸다. 잔잔한 미소 속에 오래된 깨달음이 숨어 있고, 고요한 도는 그렇게 우리 곁에 머문다. ⓒ 이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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