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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동 May 20. 2024

인간의 향기

혹은 인간의 냄새

 음치인지라 노래를 잘 부르지도 못하고 지금껏 악보도 볼 줄 모르는 저에게 음악과 노래에 관한 고교 시절의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뭐, 특별할 거까지야!”라고 애써 무시하려 해도 왠지 기억 속에 아름다운 영상으로, 앨범 속의 오래된 흑백사진의 여운처럼 남아 있는 기억입니다.

 그 시절의 어느 한때 중간고사 시험이 끝난 날, 단체로 ‘성악 발표회’를 갔었습니다. 행사의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고 장소는 ‘세종문화회관’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직 화가이신 미술 선생님의 전시회에 초대받아 갔던 기억처럼, 학교에 작곡 전공, 성악 전공, 두 분의 프로 폐셔날 한 음악 선생님이 계시기에 생긴 이벤트였지 않았나 합니다. 연미복을 차려입으신 Y 선생님이 오케스트라 앞에서 눈부신 동작으로 지휘하던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또 다른 한 분 K 선생님이 부르던 우리 가곡도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잘 갖추어진 무대 현장에서 성악가의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직접 듣는 일이 그렇게 가슴 떨리는 감동으로 다가옴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껏 남아 있는 특별한 기억은 다른 무엇도 아닌 땀을 흠뻑 쏟으며 노래하던 키가 작고 통통한 모습인 성악가의 인상이 그 후로 내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던 일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가 부른 노래 제목도 생각나지 않지만 특별하게 오랫동안 각인된 이 기억은 어디서 왔을까요?”

특별히 키가 작은 가수들이나 국가대표 축구선수 중 키가 제일 작은 ‘최종덕’ 선수와 ‘여건부’ 레슬링 선수를 유난히 애정한 데서 볼 수 있듯, 사춘기 남학생이 본인처럼 작은 체구의 상대방에게 갖는 역할모델로서의 긍정적 자아 찾기에서 비롯되었을까요?

아니요, 그것은 너무 빗나간 억측, 끼워 맞추기 갖습니다.

지금에 와서, 환갑이 지난 인생의 황혼 녘에서 그때를 다시 돌아보고 찬찬히 막연하나마 그 이유를 찾아봅니다.

처음 보는 깊고 넓은 엄숙한 조명의 무대 현장에서 키 작고 통통한 성악가의 노래를 역시 키가 작아 맨 앞자리에 앉아 또렷이 주목, 집중, 관찰하며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라디오나 전축 등에서 귀로만 듣던 음악의 소리에 깊이와 감동이 더해지고 직접 가까이서 잡힐 듯 지켜본 그의 목젖, 뱃살의 움직임, 모아 쥐거나 뻗어 올리거나 한껏 뒤로 젖히던 손동작, 조명에 반사되어 빛나거나 떼구루루 굴러 내리던 땀방울과 피부에서 마치 뿜어져 나올 듯한 열감 등이 온몸에 전해져 왔습니다.

그의 목소리에서 퍼져 나오는 진한 떨림과 힘은 그와 감정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이 들고 카리스마 넘치는 고요함과 열정이 공존한 손짓, 표정, 몸짓 속에는 무언가 특별한 메시지를 바로 앞의 나에게 전달하는 듯한 마법 같은 순간을 선물하였습니다.

그렇듯 오감으로 체화된 통통하고 작은 키의 약간 배 나온 성악가의 움직임이 웅장하고 화려한 무대의 조명 아래 빛나며 어린 소년의 시각에 잔상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예술적 카타르시스와 음악적 감동과 더불어 그것은 자기 일에 몰두하여 열정적으로 빠져있는 사람에게서 공감되는 연민과 애정, 경외감, 존경의 범벅이 된 감정이었지 않았나 합니다.     


 한 1년쯤 지나 화실에서 밤을 새우고 삼선교 센강(고교 시절 통학로 부근 개천의 별명)을 따라 걸으며 집으로 돌아오던 때였습니다. 찬바람이 좀 쌀쌀했던 이른 새벽의 가을 초입이었습니다.

바로 눈앞에 그때의 그 성악가가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새벽녘의 공기와 바람, 색깔, 냄새까지 더해져 마치 그림처럼,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진한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껏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안 되고 말로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나는 새벽에 만난 그의 뒷모습을 오랫동안 서서 지켜보다가 발길을 옮겼습니다.     


“나 역시 열심히 그림 그리며 밤을 새운 후 맡은 새벽의 향기 때문이었을까요?”     


“귓속말이 들리듯 잠시 스치는 사람에게서도 꽃가루 같은 향기로운 인간의 냄새가 납니다.”     

                   

                                                                                                    2024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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