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우 May 31. 2024

불협화음, 마침내

탈출

   2021년 11월 초 명퇴 서류를 작성하여 교감에게 신청했다. 해가 바뀌고 2022년 1월 28일에 졸업식 전, 명퇴 식이 있었다. 성의껏 감사 문구를 인쇄한 명퇴 기념 타올과 기념 치약을 교직원 모두에게 돌렸다. 밤새 설레며 준비한 고별인사를 나누고 기념품, 송공패, 화환 증정, 사진 촬영 등 약 한 시간에 걸쳐 명퇴식은 조촐하나마 감개무량하게 마무리되었다. 이윽고 11시, 교사 생활의 마지막을 함께한 3학년 4반 아이들의 졸업식을 뜨거운 포옹으로 마무리하고 3학년 선생님들과 신림동 중국 요릿집에서 늦은 점심을 하고 헤어졌다. 집에 와서는 샘들이 정성껏 준비해 준 수제 케이크, 와인, 아이스크림, 상품권 등 여러 선물을 앞에 두고 가족들과 명퇴 파티를 했다. 

  이렇게 31년간의 교직은 일반인문계고 3학년 담임, 미술 과목 평교사로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아니 그런 줄 알고 약간의 흥분과 긴장, 설렘 속에 명퇴 후의 설계를 뭉클한 감격으로 준비하며 지냈다.

  2022년 1월 30일, 집 앞 공터에서 담배를 피우며 한 가지 생각에 꼬리를 물고 골똘했다. “ 왜 여태 명퇴 확인 서류가 교육청에서 안 내려오지!”, “ 내려와도 벌써 내려와야 하지 않나?, 이상한데!” 하도 이상해, 설 연휴가 시작된 토요일이었지만 교육청 중등 인사과에 전화를 해봤다. 다행히 당직 서는 주무관이 전화를 받았다. “아니요, D고에서는 명퇴 서류 자체가 올라온 것이 없습니다.”, “ 이미 명퇴 확정분들은 12월 전에 통보되었습니다.” 아! 하늘이 노래지며 멘붕이 왔다.

  오후 3시경 부랴부랴 작업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부팅하고 나이스 업무 철을 확인하니 ‘내부 결재’만 지정되어 있었다. 아날로그 상황으로 쉽게 말하자면 책상 서랍 속에 내 명퇴 서류가 썩고 있던 것이다. 실무사-교무-교감- 행정실장-교장 순으로 내부 결재라인만 완료되어 있고 교육청 담당자에게는 올라가지 않은 것이다. “으아! 개ㅇㅇ들~ 무슨 일을 이따위로 하나!” 손에서 담배는 계속 타고 있고 욕은 계속 나왔다. 애초 외부 결재라인을 지정하지 않은 채 다섯 명 모두 확인 없이 기계적으로 열람 후 엔터만 누른 꼴이다.

  교감부터 시작해 결재권자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돌아오는 답은 죄송하다는 말뿐 대책이라고 내놓는 변명이라곤 8월까지 6개월, 한 학기 더 근무하시면 모든 편의를 봐주겠다는 사탕발림뿐이다. 

  30여 년 교직 시스템하에서 십여 번의 불협화음이 있었고 그때마다 크게 느낀 바 있었다. 행정가들은 좌석에 딱 붙어 입만 뻥긋거릴 뿐 상위 기관 눈치 보기와 하명만 기다린다. 내려온 서류, 문서 앞에서 벌벌 떨며 평교사들만 불러 쥐 잡듯이 할 뿐이다. 때로는 대인배나 된 듯 조폭 두목인 양 액션을 취하고, 본인은 큰 손해나 본 것처럼 과장하며, 애써서 행동한 듯 위장하고, 달콤한 결과는 본인의 노력으로 포장해 공치사를 해댄다. 복지부동과 무사안일의 전형을 그들에게서 많이 봤었다.

  1998년 쓰나미처럼 불어닥친 교사 정년 단축과 거기서 파생된 여러 교육 정책 아래의 변수들 앞에서 그랬고, 나눠 먹기식 일방적 부전공 연수를 시킬 때, 사교육의 폐해가 크게 부각돼 학교 내에서 방과 후 과외를 개설하라 할 때도 그랬다. 세기말에 벌어진 온갖 교단의 허튼짓 앞에서 일선 교단의 행정가들은 제 책상에 딱, 달라붙어 윗선 정치꾼들의 눈치만 살피며 서류가 구멍 날 듯 만지작거리고 현장 평교사를 물 묻은 프라이팬에 기름 두른 듯 볶아댔다. 그 밖의 사적인 온갖 관계와 시스템 속에서 비롯되었던 불협화음은 또 얼마나 많았었나.

  마찬가지로 요번에도 교장부터, 교감, 교무부장까지 그저 남의 사정에 말 보태듯, 미안하다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나 스스로 교육청에 전화해 담당 장학관, 장학사와 길게는 두 시간 넘게 통화를 했다. 돌아오는 답은 법적, 행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며 되돌릴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명퇴 심사가 까다로워 나 혼자만을 위해 기획재정부까지 거쳐야 하는 절차와 위원회를 다시 구성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2021년 6월부터 명퇴를 결심하고 경제적, 심적으로 준비한 내 미래 설계가 마지막 5년간 근무한 직장 행정가들의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바보 같은 서류처리 실수로 수포가 된 것이다. 

  2월 1일 설이었고 연휴가 겹쳐 3일 목요일에야 교육청 담당자들이 출근했다. 부지런히 출발해 교육청에 올라가 장학관을 만나고 내려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자에게 제보해 망신스러운 행정적 실수를 알리거나 결재권자들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거나 내 사정이 경제적으로 급하니 반드시, 꼭 이번에 명퇴해야만 한다고 좀 과장하여 읍소할 수밖에 없었다. 장학관도 내가 딱해 보였는지 교육청 엘리베이터까지 따라 나와 죄진 듯 말한다. “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교육청에 올라갔던 그날 오후 5시경 교감, 교무, 실무사가 손에 설 선물을 들고 집 앞으로 왔다. 처의 반대로 집으로 들이지 않고 근처 스타벅스에서 약 한 시간 대화했다. 짐작건대 교육청 올라가 매스컴 제보나 행정소송 운운했던 점이 유선을 통해 그들 귀에 들어갔을 것 같다. 여하튼 몇 년간 같이 보낸 직장동료로서 막상 얼굴을 대하니 화는 좀 가라앉았다. 출근해 자리에만 앉아 있어도 된다는 식의 비굴한 설레발을 더 듣고 앉아 있기도 힘들었다. 6개월 D고에서 연장 근무하는 것으로 그 자리에서 매듭지었다. 겉으로 애써 예의를 갖추고 겸손하게 대했지만, 나는 극도로 피로했고 그들을 빨리 피하고 싶었다.

 연장 근무하는 쪽으로 결심한 후 애써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앞에서 “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하던 장학관의 말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간 근무하며 겪던 잘되면 자기 덕분, 잘못되면 남 탓인 몇 행정가들과는 다른 진정성이 엿보이는 울림이 있었다.

 초조한 가운데 시간을 보내던 2월 9일 교육청 인사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가 왔다. “명퇴 서류를 다시 올리세요” 

  그 후 다시 초조하게 시간은 갔고 14일경 전화를 받았다. “원래대로 요번 2월 말 명퇴가 확정되었습니다!” 속사정이야 알 수 없었지만, 난 만세를 불렀다.

 1월 30일 명퇴 불발을 알게 된 후 2월 14일 명퇴 재확정까지 약 보름간 술, 담배를 끼고 앉아 학교와 나의 불협화음 31년간 역사를, 쓰고 아프게 되새김한 것 같다. 화를 다스리고 참아가며, 아! 끝까지 학교는 나를 힘들게 하는구나! 겪지 않아도 될 마음고생, 몸고생을 이렇듯 시키는구나.

그리고 마침내 2월 28일 난 학교를 탈출했다.     

 

  초등 6년에 중고등 6년을 더하고 대학, 대학원에 이른 후 직장으로 선택, 평생을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허우적댄 것 같다. 나여! 너의 남은 미래에 애써 웃으며 응원을 보내마. 겸허히 홀로 명상하듯 경건한 기도처럼. 마침내!


 


작가의 이전글 인간의 향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