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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동 Jun 21. 2024

사랑과 상처

강물에 들어 바다로 사라지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다.’라는 저명한 시구가 있습니다. 그 바람을 ‘사랑과 상처’로 바꾸어 보겠습니다. 나의 그동안이 바람 잘 날 없었듯이 ‘사랑과 상처’ 속에서 지금껏 살아온 것 같습니다. 사랑과 상처의 경중에 따라 나의 몸과 마음은 때로는 원숙한 노배우처럼 또 어떤 때는 신인배우의 어색한 몸짓처럼 시시때때로 변화무쌍하게 인생이라는 관계의 바다를 헤엄쳐 오지 않았나 합니다. 돌아보면 작은 너울 앞에서도 마치 큰 폭풍우를 만난 듯이 너무 크게 소리 내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합니다. 또 한편으론 불현듯 올라온 내면의 소리에 분연히 일어나 거친 파도를 따돌린 기억도 납니다. 흔히 말하듯 상처의 깊이와 길이만큼, 사랑의 크기와 무게만큼 이해와 해석의 불편한 뱃놀이 속에서 나의 현재를 결정지으며 노 저어 오지 않았나 합니다.

 

 아직도 지나간 얼굴들이 내 안의 심해에 숨어 있다가 감정과 형편의 추이에 두둥실 떠올라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럴 때면 한밤중 비밀스레 눈물짓기도 하는 낭만적 로맨티스트이기도 합니다. 어떤 땐 과거 불편부당한 상처받은 편린들이 증오의 감정에 휘말려 머릿속을 헤집어 놉니다. 그러면 지독한 편두통을 앓는 분노 서린 방구석 꼰대가 되기도 합니다. 지극히 사적인 내면의 ‘사랑과 상처’의 흔적들이 그렇게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괴롭히며 위축시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부터 최근의 관계들까지 경중에 따라 불현듯이 내 안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슬며시 웃음 짓게도, 조용히 눈물을 훔치게도 합니다.

 

 지난날의 필름을 되돌려 보면 그것들은 때와 장소, 처지에 따라 서로 다른 면을 가지고 있으며, 각각이 고유한 특성과 욕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 각각은 특정 시간이나 상황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기도 하고, 때로는 함께 혼재하여 나의 행동과 생각을 조종해 왔습니다. 그런 점이 에너지로 작용해 시간을 쌓아가 성취의 단맛을 보게 하기도 영혼을 흐려 놓기도 한 것 같습니다. 어떤 땐 다시 상처로 이어져 대낮의 태양을 피하고 어두운 그늘만을 찾는 어리석고 못난 부끄러운 인사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편 지나간 바람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향수, 사랑으로 향기롭게 빛나며 현실의 상처와 장벽 앞에서도 이상적인 목표를 꿈꾸는 나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나는 ‘열정적인 나’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치기 어린 도전자로 보입니다. 뻔하고 어리석은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 세월의 더께는 더욱 두꺼워졌습니다. 부끄러움과 염치를 덮고 더욱 단단해져 속절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그 바람이 에너지가 됩니다. 그러나 한편 실패와 상처의 수나 흔적만큼 안정적인 현실의 평온도 내면 깊숙이에서 갈구합니다. 잡을 수 없는 꿈 앞에서 일상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나도 늘 있었습니다. 그럴 땐 두려움과 소심함으로 가득해 게으른 모색만으로 눈치만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내 속엔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많기도 합니다.

  "내 안에 여러 명의 내가 있다."라는 명제는 상처와 사랑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성장하고 변화하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각기 다른 '나'들이 상처와 사랑을 경험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이를 통해 더 깊고 풍부한 자아를 형성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사랑과 상처라는 이름으로 내 안의 깊은 곳에 숨겨 놓았다가, 일상의 반복된 얼룩진 흔적과 희망의 부질없음으로 속절없이 눈물이 날 때 가끔 꺼내 음미하는 삶의 통속함 또한 내가 가진 ‘사랑과 상처’입니다.

 

 사랑과 상처는 외부의 관계에서 비롯되어 내 안에서 완성됩니다. 서로 대결하듯 힘을 겨루며 나의 삶을 경작하듯 일구어 수확해 왔습니다. 이 둘의 관계는 마치 동전의 양면 같아서, 어떤 서사에서는 길고 깊은 끝을 알 수 없는 블랙홀에 빠져 죽음의 문턱에 이르게 하거나 평범한 일상에서 너무 멀어져 구름을 걷는 듯하거나, 칠흑 같은 가시덤불을 헤치듯이 내 여린 삶을 헤집으며 자리를 잡게 됩니다. 무엇보다 삶에 대한 여유와 긍정적 태도는 상처보다 사랑이 그나마 중할 때 책임감의 외피를 두르고 힘차게 순항할 돛을 피기도 합니다. 인생의 항해에서 만난 풍랑의 종류와 부딪친 경험의 경과만큼이나 나의 서사는 풍부해졌고 자신감과 만족감, 효능감으로 꿈꾸는 자아를 만들어 줍니다.

 

그래서 지금은 지나온 내 인생의 나이테만큼이나 사랑과 상처의 파도는 많이 잠잠해져 고요하고 평안하며 여유롭습니다. 오늘 60대의 나는 평화와 균형을 추구하며 외부의 영향보다는 내적 조화에 더 귀 기울입니다. 일상을 명상하듯 남겨진 것을 줄이고 없애 가며 깔끔하게 정리된 삶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나는 오늘도 내 할 일을 찾아 강물에 들어 바다로 갑니다.



윗글과 썩 어울리는 만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숱한 ‘사랑과 상처’ 중의 하나로 여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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