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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우 Jul 04. 2024

‘보통 살기’의 어려움

박완서 수필 ‘보통으로 살자’를 읽고

   최근 박완서 작가의 수필집 ‘사랑을 무게로 안 느끼게’를 읽고 있다. 책은 내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새로 단장해 펴낸 것이다. 소년기를 지나 삶의 황혼기에 다시 읽는 그의 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내 삶의 흔적과 경험, 알량한 앎의 그릇이 그만큼 현실의 무게에 가까워졌기 때문이리라. 특히 근자 나의 일상에서 그의 수필 ‘보통으로 살자’는 더욱 가깝고, 아프고, 힘들게 정독했다. 


 작가는 글을 시작하며 자식 키우기의 어려움을 이렇게 한 줄로 요약하고 있다. “ 자식 기르는 일에 대해서 감히 누가 입바른 소리를 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맞는 말이다! 자식의 앞날이며 교육은 가진 자나 없는 자나 중산층, 보통의 우리들 모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의 일’이다. 하나의 우주를 여는 만큼 힘들고, 모범답안 없는 예측 불가능이다. 늦게 결혼해 적잖은 나이에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그렇기에 젊은 부부처럼 쿨하지 못하고 노파심에 전전긍긍하며 노심초사하기 일쑤이다.


  아빠의 사랑, 기쁨인 두 아이가 큰애는 고1, 작은애는 중1이 되었다. 작은애는 한창 진로 찾기에 몰두하더니 체육 교사를 거쳐 지금은 게임 프로그래머에 이르렀다. 6월 19일 오후에 특성화고인 S디지텍 고등학교 진로 체험활동을 신청했고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내가 동반해 옆에서 활동을 지켜본 후 보고서 쓰기를 함께 했다. 또 언제 장래 희망이 바뀔지 모르겠으나 짐작건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로의 진학 결심은 거의 굳혀진 것 같다. 올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한 큰애는 작은애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이다. 일찌감치 무엇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는 작은애와 달리 뚜렷한 진로를 아직 정하지 못하고 있다. 학기 초 공부에 지쳤는지 최근 모든 학원을 끊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시위 중이고 틈나는 대로 책 읽기에만 몰두한다. 거의 밖에서 친구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작은애, 친구는커녕 늘 혼자 책 읽기, 영화 보기, 피아노 치기, 글쓰기 등 혼자 놀기에 너무 치중해 한편 걱정되는 큰애. 두 아이의 교육, 진로, 진학 등으로 처와 가끔 불화를 겪기도 한다. 


  박완서 작가는 수필에서 보통의 우리들 역시 부자가 되고 싶은 속내를 숨길 수 없으니 자식 문제에 관한 한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입바른 소리에 그칠 뿐이라고 한다. 역시 맞는 말이다. 나 역시 매스컴의 사건, 사고 기사에 분노하고 입바른 소리로 훈수 두며 숟가락을 얹는다. 실천적 통찰 없이 내가 누리는 정도의 보통을 합리화시키는 데 급급해져 있을 뿐이다. 작가는 그 점을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 일상어로 쓰고 있다. 보통으로 산다는 게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부자 지향, 흉내, 황금만능주의, 가난에 대한 혐오, 복수심, 이질감 등으로 보통 사람들의 숫자가 외로울 정도로 너무 적어지니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마땅히 보통으로 사는 사람이 제일 많아야 할 텐데 그렇지를 못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는 진정한 보통 사람의 정의는 이렇다. “재벌과 극빈 사이 중간층은 돈이 귀한 것을 알지만 사람보다야 못함을 알아 타인, 이웃, 공공을 위해 돈 쓸 줄 안다. 나와 가족을 떠나 이웃, 사회, 세계의 어려움, 처지를 살펴보는 양심의 소유자로 부와 빈을 다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정신, 태도를 가진 삶이 참 보통인이다.” 작가의 글을 분석하고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보통으로 살기는 힘들뿐더러 오히려 ‘특별한 삶일 수 있겠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더구나 보통 사는 게 떳떳한 거라는 줏대와 오기, 긍지까지 요구하고 있으니 보통 살기는 내겐 요원한 일일 수 있겠다. 


   며칠 전 특성화고를 졸업한 19살 청년이 전주시 팔복동 제지공장 설비실에서 기계를 점검하다가 숨졌다는 뉴스를 접하고 한동안 가슴이 먹먹하고 눈앞이 어지러웠다. 그 청년이 꼼꼼하고 섬세하게 기록한 일기를 읽으며 눈물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런 한편 내 앞의 걱정으로 주춤하며 우리 막내를 떠올린다. 그런 나의 심상을 인지상정으로 돌리며 입바른 소리만 할 뿐이다. 어리석고 야만적인 지휘체계로 억울하게 숨진 채상병 순직 사건이 가해자들의 사과 없이 1년이 다 되도록 매스컴의 따따부따 와 정치권의 쟁점만 키우며 부모와 국민들의 속만 태우고 있다. 지난 5월 육군 12사단 훈련병이 가혹한 훈련으로 목숨을 잃었고 뒤늦게 모든 체력 단련 식 ‘얼차려’를 전면 금지 한단다. 그 또한 분노하고 가슴을 아프게 한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 우리 애들의 미래를 동시에 떠올리며 다행스러워하는 나는 그저 중산층 소시민일 뿐이다. 네 가족이 지지고 볶고 먹고살 만함을 다행으로 여기며 하루를 안심하고, 남의 불행이 나에게 오지 않았음에 가슴 쓸어내리는, 신문이나 보며 분노하는 방구석 쫄보이니 참 보통인에 다가가기는 어렵고도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올해는 세월호 참사 10주기이다. 바다 밑 아이들의 시신을 건져 올렸을 때 마치 순두부처럼 으스러졌다는 비망록을 읽고는 절망적인 기분에 휘청거릴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한 큰애가 올해 4월에 2박 3일 충남 아산으로 수련회를 갔다 왔다. 내년이면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나이가 된다.      

  

  박완서 작가가 수필‘ 보통으로 살자’를 쓴 것이 1975년이다. 글의 말미에 작가는 이렇게 써 놓았다. “요새처럼 보통 사는 걸 알아주고 보통 사는 게 외로운 시기도 없었던 것 같다. 붕 떠서라도 누구나 보통 이상으로 향상들을 해간다. 그래서 보통 사는 지대(地帶)는 적막한 무인 지경이 돼가는 느낌이다.”


   지금 2024년 6월, 부와 빈의 극한 대립과 불균형, 부조화. 불합리는 더욱 벌어져 있고 중간 지대는 뻥 뚫려 서로 양극단에 엉겨 붙여 발버둥 치듯이 살아가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중산층의 경제적 안정과 태도와 정신의 떳떳함, 오기, 줏대, 긍지는 애초에 있기나 했었나? 주위를 둘러보고 실천할 줄 아는 ‘보통으로 살기’에 나의 지난 삶은 후회막급이요, 인지상정, 합리화, 이기심만이 놓여 있어 슬프다.     

 

   내가 가진 보통의 무게만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것을 알게 하고 마음을 모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




  윗글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아래 만화는 박완서 작가의 수필‘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를 읽고 영감을 받아 그렸습니다. ( 1998년 G고 재직 시-육상부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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