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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우 11시간전

만화교육사례보고서

서울시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만화교육에 대한 小考

  세기말에 정부, 지자체, 교육부 등 기관은 물론 기업을 비롯해 사회 전반에 만화 등 관련 콘텐츠에 대한 각성으로 교사들에게 만화 관련 연수를 필수로 했고 교과서는 물론 각종 미디어에 만화를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콜라보했었다.

아랫글은 지인 J형의 부탁으로 작성해 〈‘만화 비평 1’ (창간호) 풀빛 미디어 | 2009년 12월 30일 발행〉에 실었던 글입니다.



만화교육사례보고서     

서울시내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만화교육에 대한 小考      

                                                                                                       G고등학교 미술교사 황우      


들어가는 말

  이 글은 학술적 논문이라기보다는 본인이 학교현장에서 10여 년간 만화교육을 하며 겪은 이런저런 감상을 다소 두서없이 늘어놓은 소감문입니다.

  그래서 구체적 통계 혹은 각주를 필요로 하는 인용문에 의한 서술 없이 경험에 의존하여 기억에 육화 되어 있는 사실만을 그 소감으로 피력하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서두에 밝힙니다.     


만화동아리의 등장

  문화콘텐츠가 산업적 역량을 인정받아 적극 육성되기 시작한 것은 김대중 정권의 적극적 선택과 지원이 이루어지던 90년대 말 무렵이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PC방을 중심으로 게임 산업이 홍수를 이루어 번창하였으며 판타지소설 장르가 기세를 떨치기 시작하였다. 벤처기업이 적극 지원․ 육성되었으며 도전적인 개인의 역량이 큰 가치로 사회공동체에 인식되면서 마니아, 폐인, 중독, 엽기 같은 단어들이 사회적 트렌드로 부상하였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이전의 제도적 억압에 의한 공동체적 통합의 가치관에서 개인의 자유의지와 권리를 우선하는 가치로 선회하고 있었다.

  만화 또한 부가 가치 면에서 산업적 생산성과 문화적 가치로 위상을 인정받아 대학에 만화과정이 생기기 시작하였고 몇몇 만화계 인사들에 의해 비평적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러한 사회적 열풍은 입시가 당면과제인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에도 예외 없이 불어오기 시작했고 이때를 기점으로 음성적인 문화였던 만화가 인정을 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햇빛을 받고 수면으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각 고등학교마다 만화동아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근무하던 K고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어서 음성 서클이었던 만화모임 ‘펜들(pendle)'이 있음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만화, 판타지소설 등을 좋아하는 몇몇 아이들이 모여 글쓰기, 그림 그리기 노트인 ‘돌림장’을 공유하며 저들 나름대로 모임을 구성하였고 복도, 매점, 빈 교실 등을 활용하여 모여들었다.

  중학교 이후 만화 그리기, 보기에 다시금 열중해 있던 나는 그 아이들 속에 자연스레 편입되어 어울릴 수 있었고 담당교사를 자처하였다. 학교에 정식 동아리로 등록하여 예산을 지원받고 회지 등을 만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어설프나마 기성만화작가 흉내를 내며 장, 단편의 코믹스를 창작했고 나 또한 더불어 자극받아 만화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만화 그리기에 애쓰는 한편 관련서적 등을 탐독하며 아이들 세계 속의 만화에 눈을 뜨는 발전적인 시간이었다. 이 무렵이 학교현장에서의 만화교육의 첫 시작이었다.

  아이들 중에는 희귀본 만화나 일본 A. V 시디를 소장하고 있는 마니아들도 있었고 그림을 잘 그리거나, 스토리를 잘 구성하거나, 나름대로 만화에 일가견이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실습으로 기본적인 인체드로잉을 해 보기도 하고 구색을 맞춰 만화원고용지. 펜. 스크린톤 등을 구입하여 사용해 보기도 하였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일반 인문계고의 형편상 시간, 예산의 부족과 만화에 대한 편견에서 오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만화동아리의 현재

  대학입시를 가장 큰 축으로 모든 학사 일정이 편성되고 유지되는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의 형편상 동아리 활동이 정책적으로 적극 운영되어 온 체육 관련 운동부처럼 전문가적 소양을 다소나마 소화하거나 입시와 연관되어 어떤 혜택을 기대하기는 아직 어려운 실정이다.

  대학에 만화 관련학과가 생기고 만화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 온 요즘의 실정에 비추어도 아이들은 음악이나 미술 등 다른 예능 관련 입시와 마찬가지로 학원을 통해 기량을 쌓기 마련이다. 동아리 활동은 친목 내지는 사교의 장으로 전락하여 그저 겨우 만화책의 주인공 캐릭터나 팬시상품을 베껴 그려 1년에 한 번 열리는 축제를 큰 축으로 활동한다. 본격적인 만화 작품이랄 수 있는 물건은 찾아보기는 힘들다. 이제 고등학교에서의 만화활동도 만연한 만화과정대학과 학원에서 정해진 룰에 따르는 입시교육의 시스템 속에 깊이 빠져 버린 것 같다. 대한민국 예체능 교육의 현주소여서 나무랄 수만도 없다.

  또한 만화가 산업적으로 원 소스 멀티 유즈를 지향하지만 다른 예술장르처럼 골방에서의 편집광적인 고독한 창작에 그 근원을 두고 있기에 단체 활동을 통해 재능 있는 아이를 가려내고 육성한다는 교육현장의 취지와는 한계가 있고 다소의 재능 있는 아이들도 스스로 동아리활동을 거부, 불필요함을 느끼는 형식적인 활동인 것이 현실이다.

  영상매체와 인쇄매체의 강점을 동시에 간직한 만화는 사회적 홍보와 지지가 눈에 띄게 반영되기 시작하던 무렵에 학교에서도 번성하기 시작하였으나 인문계고의 현실에서는 그 시작만 그럴듯하게 출발하였지, 튼튼히 뿌리내리거나 견고히 자리 잡혀가지 않고 있다. 그 점은 만화 관련 특성화 고등학교, 대학교가 사회, 국가의 문화적 성장속도에 탄력을 받아 눈에 띄게 발전해 나가는 과정과는 상관없이 나타나는 인문계고등학교만의 속성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거의 모든 학교에 구성되어 있는 만화 동아리는 입시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그들의 트렌드를 공개적으로 공유하며 공론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일반 학생을 대상으로 한 만화교육의 시작

  만화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분위기의 변화는 학교 현장에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교과서에 양념처럼 만화형식을 취한 삽화가 곁들여졌으며 교사들은 당시에 유행하던 ‘광수생각’등의 만화를 교재로 활용하고 갓 발령받은 신규교사들은 손에 익은 만화그림을 곁들여 아이들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업 자료를 개발해 내었다. IT강국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많은 이들이 개인 컴퓨터 등을 통해 손쉽게 온갖 만화적 형식의 비주얼에 길들여지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일반적으로 ‘만화’라고 뭉뚱그려 말하던 ‘아이들 대상의 그림’이 정치, 경제, 교육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깊숙하고 폭넓게 뿌리를 뻗어가고 있었으며 그 활용의 영역이 거의 무한대로 넓혀져 가고 있었다. 더 이상 만화를 단순히 우스갯거리로만 보아 넘길 단계는 크게 벗어났음을 뜻하게 된 것이다. 본인의 기억에 의존해 보면 당시부터 학습 만화류가 대 유행을 시작할 무렵이었고 만화세계사, 만화역사신문 등 만화라는 타이틀을 내건 교재들이 밀물처럼 상업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 같다. 바야흐로 만화가 소위 제도권 교육 안으로 적극 편입되어 다양하게 편집 재생산되기에 이른 것이다. 몇 군데 만화 관련 특성화고등학교가 설립됐고 교사들에게도 각종 연수를 통해 만화 관련 재교육을 시키기 시작했으며, 7차 교육과정에서는 만화수업을 정규미술교과에 포함하여 적극 권장하였다.

  만화에 대한 향수와 미련을 갖고 있던 개인으로서, 제도권 내의 미술교사로서 본인 또한 시류에 적극 편승하여 한 학기의 한 달 정도를 할애하여 만화교육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만화 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장르별 만화 그리기나 읽기, 토론 등을 통한 분석, 비판 등을 전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는 힘들었다. 처음에는 소극적으로 자화상 그리기를 한 다음 그것을 응용해 캐릭터 그리기 등을 시도하고 프린트 자료를 통해 만화 관련 이론서나 신문 등에 보도된 관련 기사를 짜깁기하여 이론으로 가르치는 정도였다.

  나름대로 교재를 개발하고 본격적으로 수업지도안을 만들어 가르치기 시작한 건 2002년 k고등학교에 근무할 때부터였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가장 가깝고 잘 알 수 있는 것을 소재와 주제로 선택하여 4절 도화지에 4컷 만화를 그리도록 하였다. 사전에 예비지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4컷 만화를 제시했다. 일간 신문의 사회 풍자만화, 어린이 신문 등의 명랑만화, 학습 4컷 만화, ‘아즈망가대왕’등 일본의 시트콤 형식의 만화 등이었다.

  만화의 형식은 기성작가들의 폼을 유지해도 좋지만 주어진 도화지의 프레임 안에 나름대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도록 하였다. 색칠 재료도 마카. 수채물감. 색연필등도 좋지만 이전 수업 중에 실습한 모자이크나 몽타주, 꼴라쥬 기법 등을 응용해도 좋고 심지어 입체적인 기법을 활용해도 괜찮다고 하여 경계 없이 최대한의 창작의 자유를 열어 놓았다. 실습 전 약 2시간의 이론 수업에서는 캐릭터 구축하기, 기승전결 구조의 스토리 만들기. 러프스케치하기. 자료 조사하기 등을 반복해 설명하였다. 만화 그리기 시간을 통해 아이들이 숱하게 보고 즐기던 만화를 스스로 창작한다는 즐거움과 설렘을 겪어 볼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최근 몇 년간은 조금 더 자료를 보강하여 시중의 만화 관련 이론서를 모태로 ‘만화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프린트교재를 만들어 형태적, 매체적, 장르적 개념으로서의 만화와 영역으로서 카툰, 캐리커처, 코믹스를 다루고, 산업적 측면에서 출판, 영상, 팬시 등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짧은 시간에 만화의 역사나 산업성, 예술성 등을 다 설명할 수는 없으므로, 학생들이 수업을 통하여 만화를 조금 더 이해하고 그 기초를 응용하여 아주 간단하지만 독창적인 만화를 그려보도록 지도하고 있다.


만화 그리기 수업의 결과물

 지금까지 약 10년 가까이 만화 그리기 수업을 일 년 중 길면 두 달, 짧게는 한 달 보름 정도에 걸쳐서 계속해오고 있다. 작년에는 연구수업을 통해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해보기도 하였고 올해는 수업이 끝나는 11월 말을 기점으로 현재 근무하는 G고등학교에서 관련부서의 협조로 교내만화공모전도 함께 실시한다. 수업 중에 나온 결과물을 수행평가 점수를 냄과 동시에 심사하여 수상하기로 하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바로 아이들의 만화 그리기 결과물을 채점하고 있는 시점이고 다음 주 12월 7일에 몇몇 선생님들과 공개 심사를 하여 시상하고 가능하면 교내전시뿐 아니라 학교홈페이지에도 올릴 계획이다.

  항상 그렇지만 한 반 약 35명의 학생 중 삼분의 일 정도는 매우 진지하고 열심히 하는 편이고 두 번째 그룹의 삼분의 일은 대체로 구색을 맞추어 만화일 수 있는 정도의 결과물을 내어 놓는다. 그리고 끝의 십여 명의 아이들은 미제출이 몇 명, 낙서 수준의 미완성이 몇 명, 일부분만 하다만 채로 낸 것으로 만족한다. 미술수업의 속성상 열심히 결과물을 내놓은 아이들도 미술전공자가 몇 명, 내신 성적에 신경 쓰는 최 상위권등수의 아이들이 한두 명, 그리고 나머지는 여학생이 대부분이다. 일반 인문계고등학교의 미술수업이 대학입시와 연관해서 그다지 크게 연관되지 않는 까닭에 모든 아이들이 열심히 창의적 결과물을 내놓기를 기대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완성도나 결과물의 창의성이 한 반 전체에서 5점 정도는 매우 우수한 작품이 있다. 그중에는 그저 땀 흘린 노력 이상의 성실성을 뛰어넘는 창작품이 한두 점 끼어 있어 반갑기도 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기성작가들의 그림이나 형식을 모방하거나 만화적인 구성에서 많이 비껴 난 서술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터넷상의 만화와 그 유사물의 범람으로 대부분의 아이들이 어렵지 않게 만화적인 형식을 흉내 내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창의적 아이디어나 우수한 테크닉을 갖춘 뛰어난 작품을 만나기는 매우 힘들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면 만화 교육 초기에 발견되던 일본 만화의 극성스러운 모방이나 베끼기에서는 진일보했다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만화 보기도 일본 만화에 편중돼 있고 그림의 형태나 내용 등도 일본 만화의 그것과 많이 흡사했었다. 사고와 행동까지 일본적인 것이 물들지 않을까 노파심을 갖고 훈장냄새를 피우며 아이들을 꾸짖던 일도 종종 있었다.


만화 그리기 수업의 의의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만화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만화 보기에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형편이다. 현재는 만화의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으로 개선되어 학교 도서관은 물론 교실의 학급문고에도 만화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이미 검증되어 교사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택된 목록이지만 말이다. 만화는 이미 아이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혀 있다.

  현재 근무하는 G고등학교의 경우만 보더라도 ‘아침 책 읽기 운동’의 일환으로 ‘좋은 학교 만들기’ 예산을 지원받아 1, 2학년 각 반에 60권의 도서가 지급된다. 그중에는 ‘저녁뜸의 거리’ ‘느티나무의 선물’ ‘26년’ ‘천일야화’ ‘열네 살’ ‘십시일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내 파란 세이버’ ‘아버지’ ‘순정만화’ ‘사이시옷’ ‘호두나무 왼쪽 길로’ ‘그림자 소묘’ ‘십팔 사략’ ‘아홉 살 인생’등의 만화가 다수 끼어 있고 도서관에 가면 만화 관련 전공이나 이론, 수필류 등과 양질의 애니메이션 CD도 꽤 많은 편이다.

  이렇듯 생활 속에 가깝게 자리한 만화라는 매체를 미술 수업 시간에 만화 그리기를 통하여 보다 분석적으로 접근하여 창작품에 대한 본질을 이해하기도 하고, 주제나 소재 선택에 의해 생활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도 가질 수 있으며, 기능이나 형식면에서 지금 이 시대에 범람하는 비주얼을 이해함이 만화교육의 큰 의미로 볼 수 있겠다. 그런 까닭에 고등학교에서의 만화 그리기는 만화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그리는 법에 대한 지도도 필요할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생산한 문화적 산물에 대한 기초적 경험과 이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일상적인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것으로 시도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관점에서 만화가 지도되어야 할 것이다.

    만화 그리기를 통해 특정 문화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 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태도를 가지게 한다. 미술교육에서 만화 그리기를 지도한다는 것은 오늘날 오락적 기능만 강조되어 부정적 시각으로 비치던 기존의 편견에서 벗어나 미술의 영역이 확대되는 것이며, 동시에 만화가 지닌 예술성과 교육매체로서의 기능을 수용하고,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해온 만화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미술이 생활의 일부분이며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이고 본질적이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즉 만화를 통해 ‘삶에서의 미술의 의미와 역할’을 알게 한 다음 미술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도울 수도 있다.

   인문계고등학교에서 예체능교과는 입시교육이라는 대명제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술이나 음악 체육수업은 아이들에게 때로 유쾌한 쉼터의 구실을 하게 된다. 그 시간만큼은 입시과목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크게 즐겁고 누구나 함께 하며 웃을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 반면에 예체능 교과를 입시과목으로 하는 학생들에게는 시간이나 하드웨어, 소프트웨어적인 구조에서 턱없이 부족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거대하고 견고한 고정관념의 시스템 속에서 제도권 안의 교사로서 이런 구조적 모순에 처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미술 시간만큼은 유쾌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 목적으로도 만화 그리기 수업은 유용하다.      

맺는말-일반학교에 독립된 ‘만화’ 교과를 만들고 수업하자.

  요즈음 청소년 문화를 거론할 때 '만화'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 출판만화. 게임 등)는 아이들의 생활 깊숙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알게 모르게 그들의 행동과 사고에 크게 작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그런 경향은 한층 두드러져 보이고 그 영향력은 때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지 않나 반성하게도 된다. 학교에서 만화를 보는 일은 이제 흔한 일이고 각 학교마다 만화동아리가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만화 예술과와 그 관련학과가 여러 곳이고 장래에 만화가 및 관련된 직업을 꿈꾸는 청소년들도 한 반에 서넛은 되는 것 같다. 본인의 청소년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의 만화를 둘러싼 학교환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고 꿈같은 현실이기도 하다. ( " 학교에 만 화 반이라니!" , " 만화 대학도 있어!" )

  또한 정부와 각 지자제의 소도시 등에서도 만화의 산업적인 고부가가치 생산성 인식으로 최근 소프트웨어적인 면은 물론 각종 하드웨어적인 방면까지 집중적으로 지원 육성하기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이들의 학교에서 만화 보기는 그리 자유롭지 못한 편이다. 지금도 교무실에 있다 보면 수업 중에 만화책을 보다가 빼앗겨 찾으러 온 녀석들과 선생님들의 신경전을 종종 보게 되고 나 자신도 수업 중에 만화책만을 보는 녀석들과 자주 실랑이를 하게 된다.

  이런 불협화음의 구조 속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화에 대한 긍정적 수용과 이해는 최근 몇 년간 비약적으로 발전․ 변모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짬짬이 학교 현장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발표하고 있고, 만화반 지도교사를 맡는 있는 현직 미술교사이며, 무엇보다 만화와 만화판을 사랑하는 본인은 청소년들의 '만화 보기'에 대해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바가 있다.

  아이들의 '만화 보기'에서 비판력을 상실한 것이 아닐까 한다. 너무 재미위주로만 만화를 선택하다 보니 인기 있는 작가의 흥미 있는 작품만을 접하게 되어 다양하고 폭넓은 만화의 세계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만화에서 재미를 뺀다면 남을 것이 무엇이겠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청소년들 현실에서 찾는 재미가 너무 폭력적이고 말초적이거나 현실부정. 왜곡 또는 지나친 감상과 허무적이고 엽기적인 재미만을 쫓는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있을 수 있겠다. 청소년들이 입시에의 강박, 억압된 구조나 제도 등의 스트레스 해소. 탈출로만 만화를 접하게 되는 것이 그 이유인 것 같다.

  연말이면 담임들은 생활기록부를 입력하게 된다. 그리고 제 작년부터 아이들의 독서활동을 비교적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데 한 반의 한두 명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제가 읽은 책에 대한 독후감이나 기록, 기억에 매우 어려워한다. 위에 나열한 학급문고의 경우만 보더라도 교실이라는 억압된 틀에서 잠시의 탈출로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치고 있을 뿐이지 독후의 감상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그 점은 학교에서 나누어 주고 기록하게 하는 ‘책의 향기’라는 독서 기록장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아이들이 집중해 빠져 드는 만화란 내가 목격하고 감히 증언하는데 주로 폭력적이고 공상적이거나 시간 때우기 편한 말초적 교감을 얻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다.

  교과부나 매스컴, 학교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최근 들어 매우 강조하고 좋은 만화를 집중소개하고 예산을 투자해 책 읽기 시간 등을 마련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아직 넓기만 한 것이 현장교사로서 느끼는 심정이다. 대한민국교육의 시스템에 그 원인이 있음은 누구나 알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만화의 최대 장점 중 하나가 풍자와 해학을 통한 현실비판의 기능일 수 있는데 과장된 현실과 왜곡된 세상묘사를 그려 재미만을 쫓는 만화류만 주로 보고 그 안에 너무 빠져들어 진정한 현실인식을 꾀하는 건전한 비판의 기능이 상실되고 스트레스 해소라는 차원으로의 만화 보기에만 너무 치중되어 있는 것이 청소년들의 만화 보기의 주된 양상으로 비친다.

  이제 만화도 그 품격이나 내용면 등에서 양질의 우수한 작품들이 많이 나오고 있으므로 소설이나 시를 읽고 그 안의 내용이며 기타의 여러 요소를 분석하여 비판적 읽기를 하듯이 만화 또한 하나의 텍스트로서 비판적 읽기가 필요한때인 것 같다.

  만화의 주된 독자층이 청소년에 거의 한정되어 있는 우리나라 형편에서는 우선 학교 등에서 지금보다 훨씬 만화가 양지에 서야 가능한 일 일 수 있겠으나 그러한 운동이랄까, 사회적 분위기를 청소년 독자층에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파격적으로 실습을 위주로 하는 미술교과에 예속된 만화가 아니라 국어 과목처럼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만화 읽기 수업이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되어 일주일에 한 번씩이라도 있으면 한다. 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그러한 비판적 만화 보기가 아이들 세계에 자리 잡힌다면 만화의 전반적인 질도 향상될 뿐 아니라 아직까지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만화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도 좋아지지 않을까 한다. 지금과 같은 만화 읽기 풍토에서는 현재의 기성세대를 다시 만들어 내기만을 반복하게 될 것 같다.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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