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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성동 Sep 30. 2024

정말 미안해

안녕, 치즈

정말 미안해치즈     

 한층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팔월 중순에 처와 나는 ‘치즈’를 차에 싣고 경기도 고양시 일산 D 사설 동물 분양원으로 향했다. 차만 타면 치즈는 외출하는지 미리 알고, 마냥 즐거워하며 제가 먼저 쏙 들어가 꼼짝 안 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가본 사설 분양원은 밖에서 보면 3층으로 된 사각의 독채 캔들에 갓 태어난 듯한 어린 새끼들과 2~3년생 돼 보이는 소형견 위주로 잘 보이게 진열되어 있었다. 안채에는 대형견과 훈련이 안 된 비교적 사나운 아이들이 연신 으르렁, 컹컹거리고 있다.

 한 50 돼 보이고 정수리에 어쩐 일로 대형 반창고가 붙어있는 좀 거칠어 보이는 덩치가 제법인 남자가 대표라고 어슬렁거리며 우리를 맞았다. 뒤쪽으로는 직원으로 보이는 노란 조끼를 걸친 젊은 남녀 2명이 앉아 있다. 대표가 분양 서류를 펼쳐놓고 애완견의 건강 상태, 훈련 정도, 파양 이유 등 상세히 꼬치꼬치 살피듯 묻는다. 그리곤 말끝에 사후 옵션을 거의 포함하지 않고도 분양 가격을 170 넘게 부른다. 우리 부부는 깜짝 놀라 황급히 치즈를 안고 그곳을 탈출하듯 나왔다. 나오며 불현듯, 반려인의 분양 이유가 급박하고 반려견에 대한 정이 두텁고 강아지 나이가 많을수록 높게, “부르는 게 값이로구나!” 하며 무언의 공감과 흥분을 한다.

 

2022년 2월 경북 구미 장천면에서 태어나 D 분양원 울산점에 입소해 반려인을 기다리던 푸들 소녀는 그해 4월 26일에 몇 시간 차를 타고 늦은 밤 우리 가족에게 왔고 바로 위 오빠에게 ‘치즈’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초등 5학년 막내 ‘담우’의 몇 년, 몇 달, 며칠째 이어진 떼쓰기와 바람 끝에 이루어진 역사적인 만남이었다. 처를 제외하고 집안 남자 셋은 모두 첫 애완견 돌보기였다. 마치 갓 돌 지난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 같았고 오히려 할 일, 뒤 수발은 더 많아졌다. 

 

어쩌면 애초부터 치즈가 우리 집에 온 건 큰 무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올해 고1인 첫째 아이 아토피가 심해져 병원 알레르기 검사를 하니 강아지 면역력이 없었습니다. 결과를 알고도 치즈를 다른 곳으로 입양 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고 누구 하나 그런 말은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피부 트러블이 점점 심해져 밤마다 상처가 생길 정도로 긁었고 외출을 꺼릴 정도로 짓무른 상처가 늘고 커졌습니다. 밤이면 긁을까 봐 손에 장갑을 끼고 잤고 책상 위에서 집중력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치즈를 예뻐하고 늘 물을 갈아주고 우리에 있으면 보자마자 밖으로 꺼내 놓습니다. 아이들을 설득하고 가족 논의 끝에 치즈의 새 반려인을 찾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치즈와의 ‘이별 연습’을 준비한 게 벌써 1년 전부터였습니다.

 

가까운 지인에게 부탁도 했었고 믿을만한 단체대화방에 구구절절 길게 파양 이유와 치즈의 장점, 이후 부탁까지 써 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생면 부지의 반려견 카페에도 올려 거의 입양 직전에 캔슬되기도 했습니다. 상대편의 소극적 태도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우리 가족이 치즈를 마음 놓고 보내기 어렵고 믿을 수 없기도 했습니다. 치즈와의 2년 넘는 추억과 흠뻑 든 정에 이미 푹 빠진 상태였습니다. 더불어 올여름 유난스러운 땡볕 더위에 비례해 아이 피부 상태는 차마, 더욱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갔습니다. 몇 번의 반복된 결심과 설득, 이별 연습이 이어졌고 결국 심사숙고 끝에 처음 치즈를 입양한 D 분양원에 다시 분양하여 임의의 새 주인을 만나게 해 주는 것이 최선으로 결정되어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일산점을 서둘러 나온 우리는 D 분양원 안양점에 전화해 보았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상담 전화로는 많아야 40~50만 원, 분양 가격을 이야기합니다. 오늘도 집으로 치즈를 그냥 데리고 가 파양을 포기하면 앞으로 더 보내기 힘들어질 것 같기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급작스러운 한여름 땡볕 끝, 세차게 퍼붓는 소나기를 뚫으며 안양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다행히 안양점은 왁자지껄, 직원과 손님들이 분주히 상담하는 모습도 보이고 시설 중앙에 마련된 운동장에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습도 보입니다. 젊고 푸근한 인상의 담당자 설명을 듣고 최종 분양 서류에 사인을 했습니다. 반려견의 앞으로의 소식을 사진으로 받아 보거나, 안양점이 아닌 다른 점과의 교환을 반대하거나, 새로 입양하는 반려인에 대한 상식선의 정보 등을 원하거나, 아주 상세하고 세심한 옵션이 분양계약서에 나와 있고 옵션당 금액이 올라갑니다. 또한 강아지가 한 달 내 적응을 못 해 사람을 물거나 이상행동을 하고 건강에 위험이 생기면 계약은 파기됩니다. 반려견과 반려인 사이의 정을 마치 금전상으로 수치화해 놓은 듯한 인상입니다.      

 

치즈는 웬일인지 약간 묽은 변을 주변을 돌아다니며 세 번이나 싸기도 했습니다. 똥을 치우며 다른 때와 다르게 더 스며들 듯 안기는 듯하여 더욱 꼭 안아 주었습니다. 부가세 10만 원까지 더해 110만 원을 카드 결제하고 치즈를 두고는 처와 차로가 치즈의 짐을 트렁크에서 가져왔습니다. 몇 번 가족여행 시 치즈만 따로 강아지 호텔에 맡겼을 때나, 중성화, 슬개골 수술로 일주일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처럼 “며칠 지나면 아빠, 엄마가 다시 나타나겠지” 하고 안심하는 듯합니다. 그곳 담당 훈련사들도 그저 특별한 액션 없이 조용히 평소처럼 대하듯 헤어지길 권했습니다. 치즈 짐을 카운터에 인계하고 멀리 치즈를 봅니다. 이쪽을 두 발로 서서 쳐다봅니다. 그것이 우리가 본 치즈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자본시장의 처절한 계약서처럼 악착같고 지긋지긋한 여름 더위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몇 번의 이별 연습 끝에 이제 치즈는 가족 곁에 없습니다. 가족 중 덩치와 키가 제일 큰 막내가 몇 번 우는 걸 봤고 그 후 모두 치즈 얘기를 삼가고 있습니다. 큰아이의 피부트러블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가족 4인의 머리 위에는 마음의 소리, 구름 모양 말풍선이 떠다닙니다.

“정말 미안해, 치즈!”

“좋은 주인을 만나 산책도 마음껏 하고 맛있는 것도 실컷 먹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

“많은 것을 주고 간 치즈, 안녕!”     

                                             2024. 09. 1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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