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없는 놈
공립 중고등학교 교사들은 대게 5년마다 정기 전보를 한다. 매년 2월 중순, 봄방학쯤에, 교육청은 이동할 학교를 발표한다. 그날, 전보 통지를 받은 교사는 전임 학교의 행정실에서 필요한 서류를 챙기고, 발령받은 학교에 제출한다. 이어 교무실로 가서 신상 정보와 희망 보직을 작성하는데, 이 과정을 흔히 ‘착임계’를 쓴다고 부른다. 그때 새로운 학교로의 이정표가 선명해지고, 낯선 곳에서의 시작이 다가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2007년도 2월에 나도 문래동 K 고를 떠나 G고로 정기 전보 발령이 났다. 내가 1순위로 희망한 학교이기에 기뻤다. 누런 행정 봉투를 들고 가파른 언덕에 위치한 G고로 착임계를 쓰러 갔다. G 고를 손꼽아 희망한 이유는, 집에서 차로 약 15~20분 거리에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 학교의 미술실이 본관 뒤편, 4층짜리 독립된 건물 3층에 넉넉한 면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1층 교무실의 문을 열고 교무계에서 희망 보직 서류 등을 받아 작성하기 시작했다. 한데 뜬금없이 교무부장이 말한다. “미술실 옮길 예정입니다. 알고 계세요!” 헉! 무슨 소리인가.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감정을 억누르고 차분히 대꾸했다. “당연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전엔 옮겨져 있겠지요?” 교무부장은 특별한 답 없이 그저 히죽거리며 웃기만 한다. 당시만 해도 미술 교사가 혼자라 수업이 많았다. 주 20시간 가까이, 법정 수업 시간을 훌쩍 넘는 개인 수업으로 담임 업무는 제외되었다. 미술실이 옮겨진다는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속내를 감추고 신학기 개학 전에 옮겨져 수업에 차질 없도록 만들어 달라고 이야기하고 나왔다. 별다른 답 없이 그저 히죽거리기만 하는 교무부장의 넉살이 왠지 불길하였다.
그리고 3월 신학기가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옮겨진다는 미술실은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무슨 조화 속인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1층 본관에 가사실이 있었는데 실습 시 음식 냄새 등으로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들었다. 좌우로 교장실, 행정실 등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가사 실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뒤편 건물로 가고 미술실을 본관 1층으로 옮긴다.”는 둥, “부장 등이나 교장, 교감 선에서 설왕설래가 많았었다.”라고 누군가 귀띔을 해준 일이 있다. ( 당장 사용할 담당 교사의 의견은 구하지 않고 저들끼리 설왕설래라니. ) 옮겨진다는 소문만 무성했고 구체적 진척 없이 시간은 갔다. 그 자체가 담당 교사인 나로서는 짜증 나는, 스트레스받는 일이었다. 간혹 교감 등이 수업 중 불쑥 찾아와 두리번거리다 나가기도 했다. 한 번은 교사실 소파에 누워 휴식하고 있는데 들이닥쳤다. 교감 왈, 덮고 있는 얇은 이불을 문제 삼더니 치우는 게 좋겠다고 한다. 화나는 일이었지만 그저 웃고 넘겼다. 그리고 5월이 되었다. 미술실이 독립된 정보동 4층으로 옮겨지고 가사실이 현 미술실 자리로 오는 것으로 정해졌다. 당시 1층은 교직원 식당( 학생은 교실 급식) 2층은 자율학습실. 3층, 미술실. 4층, 음악실. 이렇게 4층 단독 건물이 유지되고 있었다. 그 체제에서 본관에 있던 가사실을 미술실 자리로 옮기고, 교내에서 동선이 가장 먼, 현재 거의 창고 정도로 사용하는 정보동 4층으로 미술실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미술 교사에게 상의한 바 없다.
국민의 정부 시절, 대부분의 학교에는 정보화 사회를 대비하기 위해 정보동 건물이 들어섰다. 이 건물은 컴퓨터와 인터넷 교육을 위한 공간으로, 선진화된 교육 환경을 제공하고자 했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공간이었다. 그때, 나는 미술실이 학기 중에 옮겨지거나 변경되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공립학교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각 교실의 용도 변경은 담당 교사가 이동하는 시점에 관리자들 사이에서 마치 비밀스러운 거래처럼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교사나 학생들이 느낄 불편함과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테니까.
5월 둘째 주 일요일, 이삿짐센터를 통해 미술실을 옮기기로 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4층으로 실습 책상 등을 옮기는 일은 상상 이상으로 힘든 작업이었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계속 불평을 쏟아내자, 결국 사다리차가 나중에 오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실 직원은 없이, 교사인 내가 일요일에 출근해 끝까지 관리와 감독을 맡게 되었다.
정보동 4층은 매우 넓어서, 교과 교실 하나와 미술실을 나누어 사용하기에는 공간이 충분했다. 하지만 큰 문제는 미술실에 상하수도시설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를 행정실에 건의하자, 건물 구조상 수도를 끌어올릴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화장실도 있는데 왜 상수도 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행정실장과 다른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하길래, 그저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이 사실은 미술 수업의 특성상 매우 불편하고 어려운 상황이었다. 미술실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보다 원활한 실습을 위한 상하수도시설과 충분히 커서 단체로 사용하기 좋은 싱크대일 것이다.
2월에 착임계를 제출한 후, 3개월 넘게 지연되며 담당 교사를 힘들게 한 끝에, 그 결과는 학교 내에서 이동수업 거리가 가장 멀고, 상하수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미술실이었다. 화장실까지 가야 겨우 손을 씻을 수 있는 그런 불편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사건은 앞으로 3년 동안 계속될 미술실 수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기존 미술실이 있던 뒤편 건물 2층에는 자율학습실이 있었다. 입시를 앞둔 3학년 학생들을 중심으로 희망자를 받아 운영되었고, 평교사들은 순번에 따라 방과 후 야간에 자율학습실을 감독하게 되었다. 내 순번이 돌아오면서 나도 몇 번 그곳을 감독하게 되었고, 그 덕분에 자율학습실의 상황을 알게 되었다.
사설 도서실처럼 개인 사물함이 마련되어 있었고, 겨울에는 춥지 않도록 온돌마루가 깔려 있었다. 공간은 일반 교실보다 조금 컸고, 뒤편에는 화장실이 있었지만, 통풍이 잘되지 않아 장마철이나 여름에는 악취가 심하게 나곤 했다. 도서실용 개인 책상과 의자들은 좁게 붙어 있었고,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나무 재질의 온돌마루는 항상 습기를 머금고 있었으며, 일부 구역에는 두터운 카펫이 깔려 있었다. 창문은 항상 닫혀 있었고, 환풍기도 한두 대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방과 후 공부하는 학생은 손에 꼽을 정도로 거의 없었다.
‘자율학습실 활성화 방안’은 직원회의 시 단골 메뉴였고 부장들과 관리자들은 늘 뻔한 소리를 해댔다. 아이들의 면학 분위기 개선, 생기부 등재, 석식의 원활한 제공 등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자율학습실이 자율적으로 집중하기에는 매우 힘든 장소이자 환경이었다는 점이다. 내게 남아 있는 첫인상은 마치 컴컴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한 자율학습실에 대한 자각이 싹튼 후, 나는 하나의 해결책을 떠올렸다. 현재 미술실이 위치한 정보동 4층에 자율학습실을 만들고, 미술실은 별관 2층에 있는 현재 자율학습실로 옮기는 방식이었다. 즉, 두 공간을 맞바꾸는 것이다. 정보동 4층은 대략 교실 세 개가 들어설 만한 크기였고, 미술실만을 위한 공간으로는 너무 넓었다. 게다가, 앞쪽에 위치한 교과실도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었다. 2008년 봄을 지나며 나는 이 생각을 부장들과의 회식 자리 등에서 자연스럽게 언급하기 시작했다. 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 학교의 실세들이 참석하는 부장 회의에서라도 이 아이디어가 논의되어 실제로 추진되기를 바랐다.
이와 같은 고민은 무려 2년 가까이 이어졌고, 2009년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2007년 당시의 행정실장과 교장은 다른 학교로 떠났고, 새로운 실장과 교장이 부임했다. 교감만은 변함없이 G고에 남아 있었다. 2년 동안, 상하수도 시설도 없고, 이동 수업 시 이동 거리가 가장 먼 정보동 4층 꼭대기의 미술실은 여전히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3월 초, 내가 속한 특활부회식 자리에서 특활 부장과 동료 선생님들에게 미술실에 상하수도시설이 없어 불편함을 겪고 있음을 이야기하며, 자율학습실을 미술실 자리에 옮기는 것이 학생들의 교육 여건을 개선하는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날 이후, 특활 부장이 부장 회의에서 이 의견을 건의했다고 전해 들었다. 그리고 3월 16일, 나는 직접 교장실에 가서 미술실 상하수도시설 설치와 자율학습실 이전에 대해 건의했다.
건의를 한 후, 3월 23일 월요일, 나는 깜짝 놀랄 만한 일을 목격하게 되었다.
주말 사이, 미술실에 상하수도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커다란 싱크대 위에는 나란히 6개의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고, 물이 시원하게 콸콸 쏟아져 나왔다. 그 아래 하수구로는 물이 쏜살같이 빠져나갔다.
"아니! 하루 사이에 이렇게 잘 설치될 수 있는 시설이었다니!"
"2년 동안 뭐 한 거지? 내가 바보였네!"
"지난번 행정실장과 교장 등은 왜 안 된다고 했던 걸까?"
생각해 보면 정말 기가 막히는 일이었다.
2008년 2월부터 학교운영위원회 교사 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거의 떠맡듯이 하게 된 일이었다. 학교 행정의 일상적인 업무에 비춰볼 때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것이 다소 민망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가끔 내 의견을 말할 기회가 있었다.
2009년 4월 9일, 학교운영위원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미술실 수도공사에 대해 발언했다. 2007년 G고에 부임한 후, 학기 중 5월에 미술실이 이전되면서 겪은 불편함과 불쾌한 기억, 그리고 예산집행에서의 모순을 지적했다. 또한, 2년이 지난 후, 최근인 3월 22일에야 비로소 상하수도시설이 새로 설치된 사실을 강하게 비판했다. 은퇴한 교장 출신 위원장, 지역위원, 현직 교장과 교감, 학부모 및 교사 위원들 모두 큰 반응 없이 이를 듣고 있었다.
4월 18일 직원회의에서 구청 지원금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만약 지자체 지원금이 확정된다면, 정보동 4층에는 쾌적한 자율학습실을 마련하고, 미술실은 현재 자습실이 있는 후관 2층으로 옮길 계획이었다. 지원금 신청을 철저하고 완벽하게 진행하여, 반드시 넉넉한 방과 후 자습실을 만들어 보겠다고 교감이 힘주어 다짐하듯 말했다. 3학년 부장과 몇몇 부장들도 각자 자신들의 의견을 본인들의 공처럼 힘주어 말하며 자율학습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나에게도 이 설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던 바였기에, 매우 반가운 일이었다.
5월 25일 월요일, 직원 연수 중 교감은 자율학습실 이전 및 증축에 대해 계속 언급했다. 구청 보조금을 받아 자율학습실을 설치하는 일이 학교의 주요 과제가 된 상황이었다. 교감의 발언이 끝난 후, 나는 손을 들어 발언권을 얻고 미술실 이전 문제를 제기했다. 미술실 이전도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하며, 이번에는 시행착오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여러 선생님 앞에서 제대로 하겠다고 약속하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아마 교감은 이 발언에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2007년 미술실 이전 당시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경고였고, 한 달 전 2년 만에 미술실에 상하수도 시설을 설치한 문제를 다시 떠올리게 한 순간이었다.
2007년 K고에서 G고로 전보 이동할 때, 처음 들은 이야기가 미술실 이전이었다. 또다시 방관하다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것 같아, 이번 기회에 반드시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정보동 건물이 취약해 미술실에 수도시설을 설치할 수 없다고 들었다. 나는 그 말을 진실로 믿고 2년을 보냈다. 그런데 얼마 전, 특활 부장과 내 건의로 공사가 주말 이틀 만에 완료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이번에도 교장, 교감, 행정실장 등 몇몇 사람의 손아귀에서 휘둘릴 수는 없었다. 나는 분명히 내 의견을 전달해야 했다. 그리고 앞으로 미술실 이전 후 설계에도 내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G고로 전보와 벌어진 일련의 사건, 그리고 내게 가해진 부당한 대우가 혹시 전 학교인 K고에서의 전사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P 교장은 유독 나를 깔보듯 하대했고, 몇몇 부장들도 예외 없이 느물거리며 이죽거리곤 했다. 지난 학교에서 한두 명의 교장 및 관리자들과 심하게 부딪치고 전체 회의 시에 반말을 섞어가며 의견을 쏟아냈던 일이 몇 번 있었다.)
6월 18일 목요일, 2-12반 학생 3명이 ‘모자이크 조별 실습’을 위해 방과 후 미술실에 남아 있었다. 그날 19시 30분쯤, 교감이 갑자기 미술실에 나타났다. 아마도 교사 순회 중 미술실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예고 없이 방문한 것 같다. (몇몇 교사와 부장, 교감 등은 일주일에 몇 번씩 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근무하며, 야간근무수당을 챙기곤 했다. 당시 나는 그런 점이 민망하고 어색해서 휴일이나 야간에 학교에 남아도 수당을 챙기지 않았다. 퇴임 무렵에서야 ‘근무일지’나 ‘나이스’에 이를 기록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불쑥 나타난 교감은 이렇게 말했다. “자율학습실 이전 비용이 구청에서 지원되기로 확정되었으니, 방학 전, 기말시험 시작 전에 공사를 시작합시다.”
구청 보조금으로 자율학습실을 새로 증축하여 크고 쾌적하게 만들기로 하자, 부장과 교감, 교장을 비롯한 학교 전체가 들떠 있었다. 보조금 액수가 억 단위였고, 구 전체에 홍보도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미술실 이전 문제는 다시금 간과되는 듯 보였다. 이 분위기를 보며, 그저 지나쳐 가다간 2007년 미술실 이전 당시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일을 또다시 당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내 뜻을 확실히 전달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학내 네트워크를 활용해 전체 교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그날 밤, 메시지를 고민 끝에 작성한 후, 다음 날 출근하여 새로 타자를 한 뒤, 관리자는 물론 전체 교직원을 수신자로 설정하고 엔터를 눌렀다. 당시 보낸 메시지를 토씨 하나 고치지 않고 그대로 실어본다.
(2000년대 초부터 학내에 서버를 구축하고 메신저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정보 유출 걱정 없이 안전하게 개인 및 단체 간의 쌍방향 소통이 가능해졌다.)
어제 오후 7시 30분경 교감 선생님을 통하여 “구청에서 자율학습실 설치 및 시설비가 나왔으니 공사 및 이전을 기말시험이 시작되는 때부터 했으면 한다”는 양해를 구하는 통보를 들었습니다.
그 답으로 “미술 실습이 기말시험 이전에는 끝나므로 방학 전에는 교실 수업이 가능하기에 괜찮다.”는 허락을 드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현재 미술실의 기물 및 학생작품과 미술 교사 개인물품 등 공적 시설물에 대한 보전, 보관 문제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기말시험 및 방학 전까지는 성적처리 등 해야 할 업무가 남아 있으므로 컴퓨터를 비롯한 책상 등이 마련된 제 좌석 내지는 교사실이 짧은 기간에라도 꼭 있어야 함을 언급함은 물론 옮기게 되는 시설물 및 물품 등도 미술실이 완성될 개학 전까지 양호하게 보관, 보존돼야 함을 강조해 말씀드렸습니다.
단지 구두상의 의견, 내지는 의사 교환이었기에 교장, 교감, 행정실장님 및 학년 부장님들과 자율학습실 이전에 관심이 많다고 판단되는 진방 부장, 2007년 미술실 이전 시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여 미술실 배치며, 구조까지 상세히 신경 쓰시던 연구부장님 등에게 메시지를 통해서라도 제 의견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겠고 이전의 습성, 내지는 관행에 비추어 보건대 여러 선생님, 모든 교직원분께 서류상의 근거와 교사 개인의 의지를 언급하지 않으면 2007년 착임계를 씀과 동시에 시작된 미술실 이전과 관련된 기만적인 행정적 정책, 정치적인 술수에 놀아날 것 같기 때문입니다.
( 당시와 현재까지의 상세하고 정확한 기록은 원하시면 말씀드리겠습니다.)
통계상의 수치와 실적을 앞세우며 공명심에 사로잡혀 근본을 잊어버리는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국민 혈세를 낭비함은 물론 개인의 이익을 포장하여 공공의 기본 선을 무시하는 악행을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 되겠기에 국고 낭비를 막고, 미술실 이전에 따른 치욕스러운 미술 교사 및 학생 수업권 등에 준하는 권리를 찾기 위함입니다.
방과 후에는 충분히 남아도는 교실이 많은데도 웬일인지, 미술실이 옮겨 갈 자율학습실은 방학 중에도 유지되고 미술실의 기물 등은 당장에 다른 곳에 보관되어야 한답니다.
지극히 폐쇄적이고 소규모이며, 학교시설 내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시설이라고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명목상의 공부방이 정보동 4층으로 옮겨져, 쾌적하고 실질적인 소통과 학습의 장으로의 도서실이며 공부방의 역할과 기능을 하게 되기를 기대하며 국민의 혈세를 올바른 곳에 투자하는 행정적 절차를 만든 이전 정권의 지자제 위주, 아래로부터의 민주화가 아직은 살아 있어 다행스럽기에 미술교사 개인으로서 공부방이전을 환영하는 바이며 옮겨갈 미술실의 제대로 된 역할과 기능을 위해 몇 가지 꼭 실현되어야 할 원칙을 말합니다.
1. 기존 미술실의 시설물 및 물품, 자료 등은 하나라도 빠짐없이 옮겨져야 합니다.
2. 현재와 이전의 미술실과 마찬가지로 ‘교사실, 자료실, 실습실’이 구분됨은 물론, 동선이 자유롭고 쾌적하게 연결되어야 합니다.
3. 이전 미술실과 마찬가지로 적어도 5개 이상의 수도꼭지가 갖춰진 급수 및 하수시설이 있어야 합니다.
4. 냉방, 온풍 시설이 현재, 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시설되어야 합니다.
5. 미술 수업의 특성상, 많은 먼지, 소음 등에 대비해 바닥, 벽 등이 아무런 이차적 구조물 없이 마감되어 청소가 쉽게 조성되어야 합니다.
6. 출입문, 창문 등도 기존 시설과 이전시설에 견주어 사용에 불편함이 없고 개폐가 용이해야 합니다.
7. 이전 및 설치는 개학 후의 미술 수업, 축제전시 준비 등에 대비해 방학 중에 모두 완성, 완결되어야 합니다.
*2007년 이전 전의 미술실 구성과 설치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첨부하여, 이번 기회에 현재 미술실에 있는 20년도 더 돼 보이는 금성 브랜드의 사계절 마크가 찍혀있는 냉장고도 교체하거나 폐기 처분해 주시고, 학기 초 2번의 AS 후에도 작동이 안 되는 (작동 시에도 매우 느린 ) 프린터도 교체하거나 폐기해 주시고 역시 올해 초에 구청의 지원금으로 설치한 T.V 모니터는 실습실에 컴퓨터가 없어 무용지물이니 이번 기회에 컴퓨터를 설치하거나 폐기 처분해 주십시오.
위의 몇 가지 요구사항이 꼭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G고 교직원 모든 분께 이런 메시지를 드려 죄송합니다.
미술 교사로서의 위치와 역할에서 기인된 의지로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몇 분의 선생님들이 격려의 답글을 주셨다. 그다음 날, 20일 토요일에는 직원회의가 열렸다. 교장과 교감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분위기는 다소 차가웠다. 뜻밖에도 회의가 끝나갈 무렵, 행정실장이 마치 대변인처럼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 내용은 학교 시설과 관련하여 전체 교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대해 신중해 달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강당 뒤편 좌석에 앉아 있던 나는 한마디 보태고 강당을 나왔다. “왜 그리했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시라!”
( 당시의 직원회의라 하면, 겉으로는 회의라는 명칭이 붙었지만 사실상 지시와 전달이 주를 이루는 상명하달식으로 진행되었다. 각 부장은 부서의 전달 사항을 보고하고, 교감과 행정실장이 마무리 발언을 했다. 대부분의 내용은 프린트된 회의자료나 네트워크 메신저를 통해 충분히 소통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사회를 보던 교무부장이 “교장 선생님,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하고 물으면 교장은 마치 큰 양보라도 하듯 지긋이 웃으며 손사래를 치고 말을 삼가는 제스처를 취하곤 했다. 그것이 회의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권위를 내세우는 모습이 그때마다 드러났다. 교장이라는 자리는 마치 말을 삼가야 하는 자리인 듯, 혼자 젊잖은 척 감추며 제 마음에 드는 자나 교감, 실장을 따로 불러 개인적인 감정을 토해내는 드라마나 영화 속 빌런처럼 보였다. )
전체 메시지와 직원회의, 운영위 발언 등으로 내가 제시한 요구에 대한 나부터의 준비와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요구한 원칙에 맞게 계획서를 마련해야 했고 심사숙고하여 검증하고 따져봐야 했다.
그때부터 행정실장, 계장이 자주 미술실에 들렀고 전화가 빈번해졌다. 목요일( 2009년 6월 25일 )에 행정실장. 계장 등과 미술실이 옮겨갈 현재 자율학습실에 들러 두루 살펴보며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앞으로 한, 두 번 더 들려 설계도 등을 만들어 다시 의논하기로 했다.
7월 5일 (토) 미술실 이전 계획안을 만들었고, 7월 6일 월 ‘2009 미술실 구축계획서’라는 두 장 짜리 문서를 행정실장. 계장. 교감. 교장에게 복사해 돌렸다.
( 이 글을 쓰며 당시의 계획서를 찾아봤으나 못 찾았다. 이전 전체 교직원 메시지 등에 덧붙여 간략한 미술실 조감도가 추가되고 시설물 등이 표시되었을 것 같다.)
16년 전, 그날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2009년 7월 9일, 목요일 오후.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렸다. 교감은 자율학습실 공사와 구청 지원 예산, 진행 상황에 대해 간단히 브리핑했다. 그리고 나는 의견을 쏟아내듯 말하기 시작했다. 2007년 G고에 부임한 이후, 미술실이 전과 관련된 그동안의 일들을 내 감정을 담아 풀어냈다. 2007년, 미술실 상하수도 시설을 왜 그리도 고집스럽게 거부했는지, 건물 탓으로 돌리며 결국 해결하지 않았던 이유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행정실장, 교장, 교감을 모두 고소해야겠다고 격렬하게 토로했다. 그동안 쌓여온 관리자들에 대한 불만이 마치 봇물 터지듯 터져 나왔다. 차츰차츰 쌓여 폭발한 나의 발언들이 회의장의 관리자들에게 큰 상처로 다가간 듯했다.
내가 "당시 교장, 교감, 행정실장을 고소해야겠다!"라고 크게 말하자, 행정실장이 흥분하며 몸을 떨고 쓰러질 듯 고함을 질렀다. “으~아!”
행정실장이 지나치게 몸을 떨자, 그 모습에 조금 당황한 나는 순간 멈칫하며 망연자실하게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2007년 당시 직원이 아니었는데, 그 모습은 뜻밖이었다. 교장도 이미 전보되어 S고로 떠난 뒤였다. 유일하게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근무한 관리자이자 운영위 참석자인 교감은 눈만 똥그랗게 뜬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원장이 “황 위원, 발언을 좀 자제해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옆자리 교장은 특별한 대꾸 없이 떨떠름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때 회의장의 더 자세한 분위기는 기억나지 않는다. 갑자기 행정실장이 쓰러질 듯 몸을 떨며 흥분하는 바람에 나도 깜짝 놀랐다. ‘흥분하면 몸을 심하게 떨고 쓰러지는 고질병이 있지 않나?’ 추측하며 잠시 멍하니 그를 지켜봤다. 이후 위원장이 서둘러 회의를 마치고, 나도 자리를 떠났다.
( 몇 년 후 우연히 길을 걷다가 당시 행정실장을 마주쳤었다. 서로 아무 일 없던 듯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진 기억이 있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내가 너무 심하게 발언한 걸까, 책임을 관리자들에게 떠넘기듯 말한 건 아닐까, 여러 번 되물었다. 오히려 현재 실장과 교장은 얼마 전 상하수도 시설을 설치한 당사자들인데, 왜 저렇게 흥분하고 감정을 상해할까, 몇 번씩 생각했다. 고혈압이나 가슴 통증 같은 지병이 실장에게 있는 걸까? 순간, 실장의 발작처럼 떨리는 모습이 떠나지 않아 걱정이 밀려왔다. 이런 걱정이 오히려 순진한 걸까?
고심 끝에 금요일 3교시 후, 나는 행정실에 들러 먼저 사과를 했다. "제가 너무 지나쳤습니다. 당시 상황이 너무 화가 나서… 미술실을 5월까지 질질 끌며 옮겼고, 상하수도 시설도 건물 탓으로 미뤄져 정말 화가 났었습니다." 대충 이런 말들을 했던 것 같다. 그 말에 실장은 멀쩡한 얼굴로 충고처럼 말을 쏟아냈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교장, 위원장 앞에서, 더구나 지역 유지와 학부모 대표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그 말을 듣고 비위가 상했지만, 꾹 참고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기가 막힌 것은 그 후 교장실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지나쳤다고 사과하자, 교장도 충고라며 말을 쏟아냈다.
"근본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내가 황 선생을 어떻게 해버릴까도 생각해 봤소!" 듣고 보니 나를 협박하는 말처럼 들렸다. 특히 '근본' 운운하며 내게 내뱉은 말은 지금도 여전히 씁쓸하게 다가온다. 도대체 무슨 '근본'을 말하는 걸까? 어떤 근본이 없다는 건지, 그의 말투에서 그들 특유의 허세가 묻어났다. 더군다나 협박 비슷한 공갈이라니! 교장은 젊잖은 척, 대단하고 귀한 척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마치 큰 인심을 베푼 듯 '봐줬다'는 뉘앙스와, 나를 짓누르며 자신을 높이려는 말투가 역겨웠지만, 나는 그저 듣고 있다가 아무 대꾸 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지금껏 내 뇌리에 그 사람의 한마디가 남아 있다.
“근본이 없는 사람이 아닌가!”
아! 도대체 '근본 있음'은 무엇이었을까?
가끔 영화와 드라마 속 악당들의 대사에서 인용되기도 하는 그 '근본'은 어떤 근본일까? 지금도 그를 만나면 되묻고 싶다. “당신은 그래, 무슨 근본이 있소?”
비록 2007년 미술실 이전 당시 그가 당사자 교장은 아니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똑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자기들만의 ‘근본’이 있는 집단으로 말이다.
이후, 행정계장은 귀찮을 정도로 자주 연락을 해왔다. 원활한 미술실 이전을 위해 참고할 사항과 앞으로의 진행 상황을 이야기했다. 7월 10일 오후 5시가 넘어서 제안서를 들고 외부 업자들이 찾아왔고, 화요일에 다시 보기로 했다. 주말에는 마트에서 라면 상자 등을 구해 내 차에 실어 놓았다. 빈 시간에는 컴퓨터, 프린터, 냉장고 등 기자재 구입을 위한 기안을 다시 작성했다.
7월 13일 월요일, 미술실 이전 설치를 담당한 인테리어 직원이 다시 들러 출입문, 창문, 롤블라인드, 칠판 등을 상의했다. 그다음 날, 화요일에는 준비한 상자에 미술실 소모품, 자료, 작품 등을 하나하나 쌓았다.
7월 16일 목요일, 여름 방학식이 있었고, 전체 교사들은 1박 2일 연수를 떠났다. 나는 그 연수에 불참했다. 방학이 시작된 날, 남은 짐을 싸고 기자재를 정리했다. 기자재와 소모품을 철저히 분류하여 개학 전에 모든 이전을 마쳐야 했다. 인테리어 직원에게 공사 시작일과 이전 날짜를 확인하고, 행정계장과 연락을 취해 차질 없이 준비를 마친 뒤 학교를 나왔다.
7월 21일 화요일, 10시가 넘어 학교에 나와 공사 관련하여 행정계장과 인테리어 업체 직원을 만났다. 귀가 후, 오후 4시쯤 행정계장에게 전화가 왔다. 예산 문제로 공사 계획이 변경될 수 있다며 미안하다고 전했다. 인테리어업자와 내가 설계한 계획서가 교장과 실장 선에서 오더가 떨어지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교장에게 전화를 하니, 자율학습실 시설비가 초과되어 어쩔 수 없이 미술실 설치 예산이 삭감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7월 23일 목요일, 행정계장에게 전화를 받았다. 행정실장의 계산에 따르면, 미술실 이전 설치 예산은 약 1,500만 원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에 맞춰 기존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소식에 화가 치밀었지만, 인테리어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만나 상의하기로 했다.
2009년 7월 24일 금요일 오전 11시, 미술실 이전과 설치 예산이 삭감되어 1,600만 원 선에서 공사를 발주하기로 결정되었다. 다음 주 금요일에는 실습 책상과 의자 샘플을 보고, 그중에서 선택하기로 했다.
2009년 7월 29일 수요일, 10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해 미술실 이전에 따른 폐기물 수거 문제를 의논하려 했지만, 행정계장이 따로 할 말이 있다며 회의실로 나를 불러갔다. 그곳에서 미술실 책상과 의자 구매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미 27일에 결재가 났다고 연락을 받았지만, 또 한 번의 번복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동안 미술실 이전과 관련해 진행된 여러 차례의 협의와 업자 및 계장과의 만남도 모두 허사로 돌아갔다. 결국, 시설 공사비와 수납장 예산만으로 이전과 설치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계장과 업자와 미리 상의하고, 이미 발주까지 끝난 일이었다. 그런데 예산을 조금씩 깎더니, 결재가 난 사항까지 변경하고 있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고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교장과 면담을 했지만, 그는 뜬금없는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는 제스처만 보였다. 본인이 최종 결재를 해놓고는, 자율학습실 초과 공사비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방학 중 여러 번 출근해 신경 쓴 일이 관리자들의 번복으로 헛수고가 되어 버렸다. 성질이 부글부글 끓고, 머리는 지근거리며 아파왔다.
(기안서를 확인하기 위해 NEIS에 들어가 보니, 분명 27일에 결재가 완료되어 있었다.)
행정실에서는 이번에 못 들어온 물품은 11월경, 다음 분기 때 구입 여건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행정실장, 교장, 교감 등 그들의 선에서 분명, 보이지 않는 협의가 오갔으리라, 짐작된다.
미술실 이전과 설치와 관련된 일들, 그리고 2007년 미술실 이전에서 비롯된 학교 내 갈등과 일련의 사건들은 그즈음 나를 매우 힘들게 했다. 잦은 행정계장의 전화로 방학 내내 학교에 나가 상의했던 일들은 결국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짐 꾸리기와 이전, 설치에 따른 세세한 일정들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이전 공사는 자율학습실의 모든 공사가 마무리된 이후에나 시작될 것 같았다. 그 모든 일이 관리자들의 뻔한 앙갚음과 술수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8월 4일 화요일 오전, 계장의 전화를 받았다. 세 번에 걸쳐 전화를 받지 않자 ‘긴급연락’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일 아침부터 이사를 시작하고, 목요일부터는 이전되는 미술실의 공사를 시작한다고 했다.
“27일 결제가 반복된 점, 목적 사업에 학교 예산이 추가된 점, 가사실 등 구청 지원 예산이 배정된 점 등 NEIS에서 확인된 사실을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그리고는 “미술실 이사는 애초 계획대로 알아서 모두 옮기라”라고 덧붙이며, “교장이 직접 전화를 하라”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미술실 짐의 이동에 근심이 생겼지만, 그때의 심정은 아침부터 학교에 나가 관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8월 4일 오후와 8월 5일 오전에 행정계장으로부터 두 번의 전화를 받았다. 내일부터 공사가 시작되고 짐은 미술실 중앙에 옮겨놓았다고 한다.
NEIS 상의 학교 문서 시스템에 접속해 편철 대장을 열고, 기안 결재가 된 공사 관련 문서들을 프린트해 살펴보았다. 자율학습실 공사비는 현재까지 77,870,000원이 결제된 상태였다. 결국, 미술실 공사 및 이전, 설치비가 계속해서 깎이게 된 이유는 처음 기안문에 비해 추가된 자율학습실 공사 증가분 1,800만 원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되니 불쾌감이 밀려왔다.
2009년 8월 7일 금요일 낮, 계장의 전화가 왔다. "미술실에 새로 설치될 벽이 약해서 기존 칠판을 걸 수 없습니다. 대신 화이트보드를 설치하는 게 어떻겠냐?"는 질문이었다. 나는 "교장과 행정실장과 상의하세요"라고 답했다. "이미 이전에 이 문제는 다 이야기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칠판부착은 이미 논의되었고, 뒤 칠판 설치는 예산 문제로 중간에 취소된 적이 있었다.
8월 10일 월요일, 계장이 두 번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다가 오후 1시 30분경 세 번째 전화를 받았다. (당시 행정계장이 중간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필요 이상으로 전화를 해왔다.) 전화의 내용은 천장형 TV 설치에 대한 의견을 묻는 것이었다. 나는 기존 설치를 참고하여 진행하라고 답했다.
8월 13일 목요일, 나는 등교하여 옮겨진 짐을 살펴보고, 정리와 정돈을 조금씩 마친 뒤 하교했다.
8월 14일 금요일, 나는 등교하여 전화선, 인터넷 선, 네트워크 등의 설치가 8월 20일 개학 전에 완료되도록 부탁했다. (모든 업무가 전자문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며, 처음부터 미리 전달했던 사항이었다.) 또한, 개학 직후 열릴 축제를 위한 미술전 물품 신청과 냉장고, 소파, 프린터 등을 구입하려면 전자문서로 새로 구입 신청을 해야 했다.
8월 17일 월요일 오전 11시에 등교하여 옮겨진 미술실에 수납장이 제대로 설치된 것을 확인한 후, 최종 정리와 청소를 마쳤다. 그리고 인터넷 네트워크, 열쇠 복사, 전화 연결 등 빨리 설치해야 할 사항들을 행정실에 재촉한 뒤 귀가했다.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드디어 개학이 찾아왔다. 교감은 직원회의에서 학교가 공사판으로 분주하고 소란스럽다고 일갈했다. 또한 교장. 교감 둘 다 미술실을 언급하더니 부족한 시설에 대해 다음을 기약하겠다고 젊잖게, 마치 뽐내듯이 힘을 주어 발언한다. 물론 옮겨간 자율학습실의 위용을 한껏 뿌듯함을 곁들여 언급한 후였다. 끝으로, 행정실장은 부족한 가구나 물품은 다음 분기 내로 반드시 구입하겠다고 마무리 발언을 했다.
개학 일주일 후, 28일에 학교 축제가 열린다. 미리 걷어 놓은 학생들의 작품을 화방으로 보내 액자와 가틀 작업을 해야 했다. 작품을 보내기 전, 기안을 해야 했지만 미술실의 인터넷 연결이 아직 불완전하고, 네트워크망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결재권자들에게 구두로 기안을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미술실의 이전 및 설치가 애초의 계획되로 이루어진 게 있기나 한지 기가 막힌다.
8월 23일 일요일, 나는 자비로 소형 냉장고와 커피포트를 구입해 미술실 내 교사실로 옮겨 놓았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8월 24일 월요일, 마침내 인터넷이 설치되고 네트워크 연결이 이루어져 전자 기안과 결재가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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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어 2010년, 2월 10일경 '신학기 교육계획서'를 작성하며 미술실의 실습대, 의자, 롤블라인드, 프린터 등을 목록에 올렸다. 그리고 2월 26일, 운영위원회 예산 편성 회의에서 미술실에 필요한 프린터와 기타 물품들에 대해 차분히 의견을 전했다.
그해 3월 2일, ‘근본 있는 교장’이 강 건너 S고로 전보를 갔다. 떠나면서 그는 "미술실 황 선생, 원하는 물품을 사주라"라고 했단다. 이 말을 계장을 통해 전해 듣고, 나는 씁쓸하게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3월 5일, 개학이 시작된 후 실습대와 의자, 책상들이 새롭게 들어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롤블라인드까지 마련되어, 미술실은 한층 더 쾌적해졌다.
2007년부터 시작된 ‘미술실 수난사’를 여기서 마무리한다.
2010년까지 3년간, 두 명의 교장을 거치면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2012년에 G고에 연장근무를 신청해 10년을 채운 뒤, 2017년에 D고로 전보를 갔다.
2025년 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