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욱경, 1940 ~ 1985
일어나라! 좀 더 너를 불태워라
최욱경 작가의 작업실에 항상 걸려있던 표현이다. 최욱경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색, 형태, 선 그 자체로 작품을 구상하는 모더니스트였다.
1970년대에서의 여성이자 작은 체구와 연약한 몸이지만 그녀는 커다란 캔버스를 호령했다.
강력한 색감 대비와 대담한 붓의 표현은 어느 남성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늘은 그녀의 삶과 작업들을 보면서 최욱경 작가에 대해서 알아보자.
최욱경을 작가는 대학을 졸업하고 1960년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약 10여년 체류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같은 여러 사회운동이 대두되던 시기였고 최욱경 작가도 미국의 분위기를 몸소 체험했다.
그래서 미국 시절의 작품에는 인종차별에 반대하거나 자신의 성적, 인종적 정체성을 탐구하는 구상화도 보인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윌렘 드 쿠닝과 로스코, 마더웰등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작품을 연구를 통해 본인의 고유하고도 독자적인 추상화 양식을 만들어갔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가는 한국에 돌아와 '한국적 추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당시 남존여비가 뿌리깊음을 지적하며 '여성의 적극적 변화란 남성과의 대결이 아니라 단지 하나의 인간으로서 그 자신이 가진 아주 자연스러운 힘이 가치를 재평가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활동을 해나갔다.
그리고 70년대와 80년대에 최욱경은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단청의 색채와 민화적 모티프 한지 재료를 사용하여 한국적 요소를 탐구하기도 했다.
조지아 오키프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 시기에는 형상이 복원되고 강렬하고 추상적인 터치가 줄어든다. 화면에 공간감을 남기면서 좀 더 차분한 모습으로 변모한 것이였다.
절제된 감성에서 나오는 자유로운 감성들을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표현했다. 그래서 더욱 작품에는 곡선이 강조되고 부드러운 파스텔 톤이 강조된다.
이후 최욱경의 작품세계는 조금 더 다양해진다. 이전의 삶이 남성성에 도전하는 여전사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80년대 시기는 본인만의 독자적인 특유의 여성적인 색채를 보여주기도 하였으며 색들의 대비와 충돌이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한국의 자연에서 추출한 형태와 아름다운 색채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후 최욱경 작가는 45세의 나이라는 젊은 나이에 삶을 마감했다. 그녀는 45년이라는 짧은 삶을 살았지만 그녀가 우리에게 남긴 작품과 그녀의 도전정신은 2022년의 우리에게도 영감을 준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하는 게 어렵고, 시류에 거역하는 것도 살아 남기가 쉽지 않다.
최욱경 작가의 삶이 그랬다. 그녀는 여성 화가의 이름에 붙는 여류, 규수라는 호칭에 거부감을 느꼈다.
천경자 작가가 여인의 꿈과 정한을 소극적으로 표현했다면 최욱경은 거대한 화면에 대담하게 표현했다.
작품이라는 하나의 평면 속에 시를 쓰듯 압축적으로 그리고 맹렬히 토해내듯 보여준 그녀의 감정은 남성성을 뛰어넘겠다는 도전이었다.
그녀는 한국 화단의 이방인이었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무시당하고 마음에 안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개척자였다.
1970년대 단색화와 민중미술이 주를 이루는 한국 화단에 추상화로 충격을 주었으며 남성이 주를 이루던 미술계게 여성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남성작가들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오늘은 최욱경의 시를 끝으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자문자답
마치 해답을 풀지 못한 수학문제처럼 나는 살아간다
누구입니까
나는 조화할 줄 모르는 이상한 불협화음였었나요
숙명 속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슬픈 유성일런지도 모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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