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용, 1942 ~ 현재
나의 신체 드로잉은 내 신체가 지각하고, 내 신체가 만들고, 내 신체가 그리는 그 경지를 추구하기 위해서 눈으로 보고, 눈이 뇌에 전달하고, 그 뇌가 지시하는 명령해 의해 움직이는 것을 끊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회화를 새롭게 탄생시키는 지점이다.
오늘은 이건용 작가, 그중에서도 신체 드로잉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
신체 드로잉은 드로잉에만 집중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그린다는 것에 정신을 쏟기 보다는 신체에 더 집중을 해야하고 신체의 필연과 관련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흔히 그림을 그릴 때 자연스럽게 화면을 뒤에 놓고 선을 그었을 때 팔의 구조상 일부러 반대 손을 쓰거나 자세를 바꿔서 색칠하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 데, 그렇게 하지 않고 신체를 있는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드로잉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팔이 움직이는 대로만 그리게 되고, 그래서 캔버스 위에는 색이 칠해지지 못하는 부분이 생긴다. 그것이 바로 이건용이 제안한 "신체 드로잉"이다.
그렇다면 왜 이건용 작가는 이렇게 작품을 만들게 된것일까?
그 이유는 작가의 대학시절 작품의 대상에는 관심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린다라는 것은 우리 인류에게 무엇인가라는 고민과 함께 바깥에서 보면 그린다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그린다라는 것의 출발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한 출발점을 알기위해 이건용작가는 예시를 들었다 "우리 애가 크레용을 주웠다. 그러더니 입으로 빨더라 그러다 뒤뚱거리면서 걷다가 넘어지면서 벽에 실수로 선을 그렸다.
그러더니 보고 웃더니 계속 그리더라 그것이 무슨 물건인지도 모르면서 계속 그것을 반복하더라 " 그 평면에 닿아지면서 어떤 선이 생기고 형태가 생기고 색이 생기는 그 지점, 그게 가장 신선하고 가장 그리기의 본질, 바로 드로잉이다.
그래서 작가는 드로잉이야말로 더 본격적으로 완성단계에 있는 회화보다 더 신선하게 우리에게 기쁨을주고 또 이런문제를 가지고 개발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점이 많다고 보았으며, 보고 그리는 것을 떠나서 보지 않고 신체가 그리는 것, 그것을 신체가 그린다는 것이라고 한것이다.
신체에 의해서 탁월하게 만들어진것을 보면서 나는 신체가 지각했다고 보는 것이다.
내 시선과 판단이 그것을 지각하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이건용작가는 좀 더 나아가 인식론적인 생각과 지각론을 통해 설명을 한다.
인식론적인 것은 이미 관념적으로 자신이 많은 경험을 했던 관념들을 예정하고 그것에 집중해서 똑같이 결론짓고 만들어 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거기서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수가 없다. 그러나 지각은 새로 만나는 것처럼 자기가 예비적으로 예비되어있는 관념을 씌우지 않고 직접만나기 때문에 신선하고 그리고 새로운 지점들이 생긴다.
그래서 작가는 그 새로운 지점을 찾으러 출발한것이다.
처음에는 안보고만 그리는 것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순수하게 선이 그어지는데 이것이 습관이 되면 안보지만 머릿속에서 어떤 식으로 선을 그으라든가 자꾸 방해 하게 된다.
그것을 막기위해서 다른 생각을 해야하고 마음을 비워야한다. 그것이 괴로운 일이며,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순수하게 안보고 그리기 때문에 몸으로 무엇을 느끼면서 드로잉하는 그 지점까지 가는것이 작가가 도달하기 까지 엄청나게 노력한 것이다.
교육을 받아서 어떤 법칙이나 공식을 만들어서 하는 것은 어쩌면 반복되는 일을하는 가장 쉬운일이며, 지루하다.
우리에게는 순수하게 신체를 통해 만나는 순간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순수하게 만나는 지점 그것이 이건용작가가 가지는 예술관이자 우리도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항상 예술가는 고뇌한다" 라고 생각했다. 고뇌와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그리고 붓끝에 작가의 감정을 담아 표현한 것이 작가가 할일이며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협한 사고의 바꿔놓은 예술가이다.
여러분은 이건용 작가의 신체 드로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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