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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학교네트워크 May 09. 2022

좋은 배움은 좋은 관계로부터

수업 나누기 & 정보 더하기 / 박명진_전포초등학교 교사

배움의 질은 관계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


  사람들 사이의 친밀하면서도 깊은 관계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신의 존재가 집단에 환영받는 경험들, 진심으로 마음을 내어놓고 소통하는 경험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기본적으로 교사에게는 일터, 학생들에게는 배움터이지만 더 나아가서 이곳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전포초 구성원들은 그 삶의 공간에서 구성원들이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라 여기고 있다. 2015년 부산형 혁신학교인 다행복학교로 지정된 이래 지금까지 전포초는 ‘꾸준히 하는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배움과 삶에서 중요한 7가지 요소를 교육과정 속에 녹여내고 있다. 그중 선후배 두레 활동은 학교 안의 여러 학년 사이의 관계에 다리를 놓고, 관계를 확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선후배 두레 밥상에서 저학년 동생 밥 먹이는 고학년 선배(2016. 10.)

  학교에서 학생들의 관계는 교실 안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포초에서는 같은 학년뿐만 아니라 1, 2학년 두레, 3, 4학년 두레, 5, 6학년 두레, 1, 6학년 두레. 2, 5학년 두레 등 다양한 관계의 연결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단순히 여러 학년이 모여 노는 활동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에 대해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중요한 배움이 일어나고 있다. 학생들에게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급 내의 친구 말고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여러 나이의 친밀한 관계를 맺음으로써 저학년은 낯선 환경에서의 빠른 적응의 효과를, 고학년은 후배를 보살펴야 한다는 책임감을 심어줄 수 있었다. 이러한 연결 속에서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안정감과 신뢰를 얻는다. 나를 돌봐주는 수많은 선배와의 다양한 활동 속에서 불안을 낮추고, 선배에게 받은 관심과 사랑을 자신이 선배가 되었을 때 후배에게 베푸는 선순환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좋은 관계를 위한 학교의 노력은 비단 이러한 특별한 활동으로 끝나지 않고, 여러 학년의 수업 재구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포 놀이마당에서 여섯 학년이 함께 체험하는 선후배 두레(2017. 5.)
1, 2학년 선후배 두레 공동체 놀이(2021. 5.)  / 1, 5학년 선후배 두레 추석 선물 전달하기(2020. 9.)


2학년 온책수업을 통해서 좋은 관계를 위한 터를 닦다. 


  전포초의 모든 학년에서 꾸준히 하는 활동 중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하나는 온책수업이다. 전포초에서는 혁신학교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모든 학년에서 공동연구 공동 실천의 핵심 활동으로 지속해오고 있다. 저학년 온책수업의 경험이 없었던 나는 작년 처음으로 2학년 담임교사를 맡으면서 저학년 온책수업을 경험할 수 있었다. 총 3권의 온책수업 중에서 학년 초 가장 처음으로 함께 운영했던 ‘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이라는 책을 바탕으로 한 수업을 소개하고자 한다.



   2020년 코로나의 시작과 함께 입학한 아이들은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의 혼란 속에서 학교생활과 친구와의 관계 맺기에 대한 충분한 연습과 적응의 시간을 갖지 못한 채 2학년이 되었다. 2학년 교사들은 이런 아이들에게 학교생활에서 관계의 기초를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재미있는 그림책과 활동들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알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아이들은 몸으로 체험하면서 배운다. 몸으로 경험하고 표현해야 마음에 남는 것이 생긴다. 마음에 남는 것이 있어야 배움의 과정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꺼내 쓸 수 있는 것이 있고 스스로 해야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가능하다. 함께 해야 새롭게 변형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 과정을 거쳐서 총체적으로 깨달아야 무언가 하나를 배우는 것이다. 이러한 방향성에 기초하여 재구성하고 실천한 2학년 온책수업의 세부적인 과정은 아래 표와 같다.



  이번 재구성 수업을 통해서 나 스스로의 온책수업에 대한 인식 변화와 2학년 학생들의 학교생활 태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었다. 책 속의 내용을 통해서 이야기의 순서와 인물의 생각을 파악하거나 질문을 만들고 이야기의 뒷 내용을 상상해보는 등의 활동이 중심이 되는 고학년 온책수업만 경험해왔던 나에게 두 쪽의 그림책에 담긴 단 2~3줄의 문장을 바탕으로 활동을 구성하고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체험하는 저학년 온책수업은 처음에는 낯설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점점 책 읽기를 좋아하고, 온책수업 시간을 기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서로 돕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로도 설명할 수 있지만 ‘쿠키 한 입의 인생 수업’ 책의 두 문장을 빌려 함께 스파게티 면과 마시멜로로 서로 도와가며 탑을 쌓아보고, 교실에 버려진 부서진 면과 찌꺼기들을 서로 도와 함께 청소한 후 글을 쓰며 자기의 생각을 나눌 때 아이들은 더 잘 배웠다. 온책수업이 끝나고 시간이 많이 흘렀어도 청소를 할 때면 아이들 입에서 “서로 돕는다는 건! 서로 돕는다는 건!”이라고 외치기도 하고 함께 오래 걸어야 하는 체험학습에서 “참는다는 건!”이라고 서로 격려하며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 가르침의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5학년 평.강.공.주. 프로젝트로 학급과 학년을 세우다.      

  2022년이 되면서 전포초의 5학년을 맡게 되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 3월 첫 주부터 약 2주 정도는 학급 세우기, 담임 주간 등의 이름으로 학생들을 파악하고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기간을 설정한다. 우리 학교도 학급 세우기 주간이 있다. 하지만 5학년 교사들은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위한 토대를 형성하기에는 2주라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학기 초라 정신이 없지만, 3월이야말로 ‘관계’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러 교과를 융합하여 재구성을 시도할 적기라고 생각했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아이들은 말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고, 여학생을 중심으로 서로 무리를 형성하며 관계가 어긋나는 상황이 많이 발생한다. 이런 일이 시작되기 전에 3월 시작부터 2달 정도의 기간을 잡고 집중적으로 관계의 중요성과 대화법, 문제해결의 방법 등을 학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크게 4가지의 교육과정 재구성 운영의 방향을 설정하고 하나씩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1) PDC(학급긍정훈육법)에 기반한 학급 세우기, 2) 비폭력 대화와 문제해결 8단계, 3) 온책수업으로 만나는 관계의 중요성, 4) 미술 협동 작품으로 하나 되는 우리의 관계로 이어지는 재구성 수업은 ‘평.강.공.주.(평화롭고 건강한 공동체의 주인되기)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져가고 있다.

  

  평강공주 프로젝트의 시작은 비전을 정하는 일이었다. 전포초는 ‘어울려 배우고 스스로 가꾸다’라는 학교 비전을 가지고 있다. 2019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이 비전은 당시 교사, 학생, 학부모 3주체가 모두 참여하여 만든 의미 있는 비전으로 ‘어배스가’라는 말로 사용하며 학교의 모두에게 인식되어 있다. 이러한 큰 방향성을 바탕으로 매년 학년군 별로 그해의 비전을 정하는 것이 학교에서 정례화되어 있다. 올해 5, 6학년 군은 이 비전을 전적으로 학생의 의견으로 만들고자 했고 학급 다모임을 통해 각 학급이 중요시하는 가치 덕목 3가지를 뽑고 다시 줌으로 학년군 다모임을 열어 그것에 대한 공유 및 학년군 전체가 지향할 가치를 뽑았다. ‘평화, 배려, 협동’으로 정해진 가치를 중심으로 각 학급에서 다시 비전 문장을 만들고 투표를 통해 두 학년이 지향할 목표를 정하는 학생 중심 비전 설정의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전포초등학교 학교 비전 / 5, 6학년 군 다모임 결과 선정된 학년군 비전
학년군 비전을 게시하는 학생자치회 의장과 부의장 / 5, 6학년 군 건물에 게시된 학년군 비전

  비전을 바탕으로 5학년 각 학급은 학급긍정 훈육법을 기반으로 한 학급 울타리 세우기 과정을 거치며 학급에서 해야할 일과 해야할 말을 정하고 하루 일과, 의미 있는 학급 역할을 정하며 하나씩 학급을 세워나갔다. 학급 다모임을 중심으로 국어 교과의 토의 토론을 실행하면서 우리의 학급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내가 바라는 학급 / 가치 덕목을 중심으로 모둠별 학급 울타리 만들기
학급 울타리 게시하기 / 내가 생각으로 만드는 비전 문장                                                            

  함께 생활하는 학급에서 함께 지켜야 할 것들을 다모임을 통해 하나씩 정해나가면서 아이들은 규칙의 무게와 책임을 느낀다. 교사가 정한 규칙보다 함께 정한 규칙이 힘이 센 법이다. 정해진 울타리는 매주 월요일 1교시 학급 다모임을 할 때마다 서클을 만들어서 돌아가며 말하는 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계속적으로 확인한다. 그다음 단계는 비폭력 대화와 문제해결 8단계를 익히는 것으로 넘어간다. 5학년 국어교과서 2단원에 대화와 관련된 주제가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아이들의 대화가 나아질 수 없다고 판단했고 도덕 교과와 연결해서 비폭력대화를 차근차근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18차시 정도의 분량으로 구성한 평강공주프로젝트 비폭력대화는 관찰, 느낌, 필요, 바람으로 이어지는 세부적인 과정을 자신의 경험과 역할극, 글쓰기 등으로 이어가며 심도 있게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은 수업을 진행하면서 자신이 말을 통해서 상처를 많이 받고, 많이 준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실천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앉아. 빨리 가.” 등의 명령식 말투에서 “앉아보자. 빨리 가줘” 등의 부탁 언어로 바뀌기 시작했고 쉬는 시간에 비폭력 대화를 시도했다고 웃으며 자랑하는 학생, 실제로 사과를 받게 되어서 비폭력 대화의 효과를 확인했다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또한 수업의 마무리 단계에서 그동안 수업 중 작성한 활동지, 글쓰기와 함께 대화 상황 쪽지를 뽑아 실제로 대화해보는 역할극 평가를 통해서 인증서 및 수료증을 배부하기로 하니 학생들의 참여도와 책임감도 더 높아지는 듯했다.

비폭력대화 수업을 위한 활동자료 표지 / 교실에 게시된 문제해결 8단계                                              


  그다음 단계로 지금은 온책읽기 수업을 통해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남찬숙 작가의 ‘혼자 되었을 때 보이는 것’이라는 책을 선정해서 교사들이 먼저 함께 읽고 수업의 방향을 생각해보고 학생들이 바라는 수업의 방향도 함께 조사하여 반영하고 있다. 학교 예산으로 책을 구입해서 학생들에게 배부하고 책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제목을 통해 학교에서 혼자가 되었다는 상황에 대한 생각을 글로 써보고 책 속의 삽화와 목차를 바탕으로 질문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 후 5학년 전체가 학교 인근 공원으로 가서 새소리와 봄바람을 느끼며 책을 읽는 경험을 가졌다. 또한 학교 안에서는 좁은 공간으로 할 수 없었던 오프라인 학년다모임을 공원에서 가지면서 앞으로 있을 온책수업에서 학생이 하고 싶은 활동들에 대한 의견도 모을 수 있었다. 온책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은 책 속의 인물이 겪는 관계에 대한 어려움과 해결의 과정을 함께 공감하고 자신의 상황과 비교하는 등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학교에서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앞으로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들어갈 재미있고 의미 있는 활동이 기대되는 순간이다.

평강공주 프로젝트 온책도서 / 온책수업 읽기 전 활동(책과 만나 질문 만들기)                                               
             부산시민공원에서 온책 읽기 / 학년다모임을 통해 온책수업 활동 정하기

  온책수업이 끝나면 마지막 단계로 평강공주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할 협동 작품을 제작하게 될 것이다. 순천만 정원의 ‘꿈의 다리’를 모티브로 하여 관계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문장을 모둠별로 만들고 5학년 세 반에서 만들어진 문장을 학교 벽에 타일로 꾸며 붙이는 미술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 이를 통해 5학년의 배움을 전 학년에게 공유하며 학교 전체가 관계를 중요시하고 좋은 관계 속에서 좋은 배움이 일어나는 학교문화가 더욱 발전하기를 희망해본다.

순천만 정원의 꿈의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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