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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학교네트워크 May 09. 2022

<어른의 문답법>

이 책 한 권! / 이은애_항구초 교사

피터 버고지언, 제임스 린지 지음 / 홍한결 옮김 / 월북 출판사

학교에서 진짜로 개싸움을 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마음속으로 개싸움을 하며 지내는 저는 ’‘개싸움을 지적 토론의 장으로 만든다’라는 책 표지 문구가 확 끌렸습니다.


무식보다 부끄러운 것은 배울 마음이 없는 것이다.     - 벤자민 프랭클린      


257쪽 마지막 페이지를 이 단 한 문장으로만 채운 까닭은 아마도 개싸움의 늪에 빠지려는 순간 이 말을 떠올리라는 뜻이 아닐까 합니다.


  대화의 기본은 한마디로, 상대를 협력 상대로 보는 자세다. 견해차가 큰 대화를 할 때 특히 중요한 점이다. 그러려면 내 목표를 알고 상대의 의도를 너그럽게 해석해야 한다. 또 상대의 말을 들으며 메시지 전달이 아닌 양방향 대화를 해야 한다. 원활한 양방향 대화의 첫걸음은 듣는 법 배우기다. 머릿속에 있는 말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 한다. 그다음에는 타이밍을 잘 판단해 대화를 품위 있게 (이어가거나) 끝내야 한다. (23쪽)


겨우 다섯 줄 뿐이지만 이 부분에서 눈에 띈 건 관계에 대한 관점이었습니다. 모든 대화 상대를 협력자로 품는 태도는 평범하게는 존중이지만 깊이 들어간다면 어쩌면 애정이기도 하겠고 신뢰를 쌓는 과정이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화의 기술을 초급, 중급, 고급 기술로 나눈다면 밑에 있는 7가지는 어디에 속할까요?     


목표 인식하기, 협력 관계 조성하기, 

라포르 형성하기, 상대방의 말 듣기, 

내 안의 메신저 잠재우기, 상대의 의도 파악하기, 

대화를 끝낼 시점 판단하기


저자는 이것이 품격 있는 대화의 기본 원리라고 합니다. 저는 이제껏 불편한 대화 상대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만 주로 이런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빨리 내 의도를 전달하고 끝내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 후 대화를 나누었던 적도 꽤 많습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학교에서 불편했던 그 모든 순간에 제게 필요했던 게 이런 기술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이를 사이에 두고 날카로워진 학부모와 마주해야 했던 그 순간, 업무 진행을 놓고 동료 교사와 신경전을 벌이던 때, 수업 철학에 대한 내 이야기가 동료 교사에게 비난과 평가로 전달되었던 순간, 왜 내가 버리지 않은 쓰레기를 주워야 하느냐고 따지는 학생과 마주 서 있던 순간들 말입니다.


책에는 기본 원리 외에 초급, 중급, 고급, 전문가, 달인 단계 기술까지 모두 36가지 대화의 기술이 나옵니다. 그 중 표시해가며 읽은 몇 가지 기술을 소개해 봅니다.

 

내 말법이 상대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도록 대화를 이끌고 답답해서 대화를 그만두고 싶더라도 아직 에너지가 남아있어 포기하기 싫다면 상대방의 인식 원리에 주목해 질문을 던져보는 건 초급 기술이라고 합니다.


중급 기술 부분에는 좋은 친구여서 관계를 그르치고 싶지 않다면 친구가 잘못 알고 있게 놔두고, 친구와 ‘항상’ ‘옳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람이라면 ‘퇴로’를 열어 주며 그와 논쟁을 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퇴로를 열어 준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았습니다. 관계를 깨지 않으려는 노력이 담겨있고, 운이 좋으면 같은 편이 될 여지도 있는 매력적인 기술로 보였습니다. 또, 숫자 척도를 도입해 감정 상태를 한 걸음 물러나서 파악하는 방법은 아이들과 상담할 때 활용하니 꽤 유용했습니다.


상급 기술에서는 래퍼포트 규칙을 가장 먼저 알려줍니다. 래퍼포트 규칙은 상대방의 말을 재정리하고 동의하는 점을 밝히고 배운 점을 언급한 다음 반박하는 것입니다. 래퍼포트 규칙은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가 전달되어 신뢰를 얻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먼저 내 안의 화를 다스려야 가능하겠지요.


전문가 기술로 ‘감정 분출 돕기’가 나옵니다. ‘더 얘기해줘’라고 하거나 때때로 침묵하며 더 얘기하도록 기다려주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말을 가능한 한 많이 찾아보게 하여 상대가 자기에 대해 뚜렷하게 깨닫도록 돕는 것입니다. 상담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그저 다 들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고 합니다. 또, ‘역할 부여하기(행동 유도 기법)’가 나오는 데 도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하지만 교사가 학생에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적용해본다면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달인 단계의 기술 중 하나는 ‘도덕적 프레임 바꾸기’입니다. 상대가 사용하는 용어의 핵심을 알고자 외국어를 배우는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한다’가 아니라 세상의 다른 면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한 기술입니다. 그리고 상대의 용어를 나의 용어로 바꿔 제안해 보는 과정을 거치며 상대방과의 간격을 줄여나가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도덕적 가치 기반을 정확히 이해하면 나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어울리는 포장지로 감싸 전달하는 기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다 읽고 또 훑으니 보이는 것은 타인과 대화를 원만하게 해내는 과정이 곧 저를 돌보고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는 사실입니다.

선생님이 계신 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철학을 공동체와 공유하고자 한다면, 이 책에 나오는 몇 가지 매력적인 방법으로 대화를 끌어가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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