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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nebtls Nov 04. 2024

고향의 감나무, 그리고 겨울

어린 시절, 우리 집 뒤에는 하늘을 향해 당당히 뻗은 감나무들이 있었습니다. 단감이 귀해서 홍시가 될 때까지 기다리던 그 시절, 부드럽게 녹아드는 달콤함은 지금도 혀끝에 생생합니다.


가을의 선물


가을바람이 불 때면 마당 가득 춤추듯 흔들리던 주홍밫 감들. 들판의 황금빛 물결과 높고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선명한 주홍빛 감들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았습니다. 특히 잎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 앙상한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감들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물에 불을 켠 것처럼 반짝였습니다.


까치밥의 여유


“이건 까치밥이야.”

할머니의 말씀처럼, 추운 겨울을 나야 할 작은 생명들을 위해 몇 알씩 남겨두던 그 마음. 그때는 몰랐던 자연과의 공존, 가난 속에서도 그 소박한 배려가 지금은 더욱 애틋하지만 조상들의 지혜와 여유를 배웁니다.


겨울의 문턱에서


땅거미가 내려앉은 마당에서, 어머니와 손잡고 바라보던 감나무.

굴뚝 연기가 포근하게 감싸안던 그 순간,

“곧 겨울이 오겠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씀은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가장 따뜻한 달력이었습니다.


홍시의 달콤한 기억


귀한 손님이 오시면 할머니께서 정성스레 골라내시던 곶감과 홍시. 따뜻한 시루떡에 주홍빛 홍시를 얹어 먹던 그 맛은, 어떤 진귀한 디저트보다도 값진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햇살에 비춰보면 보석처럼 반짝이던 홍시의 속살, 그때의 설렘이 아직도 가슴 한켠에 살아있습니다.


사계절의 순환


봄의 진달래부터 시작해 가을 단풍까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겨울을 장식하는 앙상한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까지.

계절의 변화 속에서 감나무는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저를 지켜봐 주었습니다.

지금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 때면, 멀리서 주홍빛으로 반짝이던 홍시의 모습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이제는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감나무, 하지만 그 따스했던 기억은 제 마음속에서 영원히 살아있는 고향의 풍경입니다. 때로는 그리움으로, 때로는 위로로 찾아오는 그 주홍빛 추억이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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