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거리, 다른 풍경

최첨단 뒤에 가려진 어두운 그림자

by ninebtls
자율주행택시(웨이모)

항공사에 근무하며 전 세계 수많은 도시의 하늘길을 오갔습니다.

하지만 유독 한동안 로스앤젤레스(LA)의 잔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건 아마도 제가 본 도시 중 가장 극단적인 대비를 한 프레임 안에 담아내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땅 ‘천사의 도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처절한 생존의 현장인 곳. 비행의 피로를 잊게 할 만큼 강렬했던, 제가 목격한 LA의 진짜 모습을 기록해 봅니다.


LA는 이미 미래였다: 자율주행과 AI가 스며든 일상


LA 다운타운 번화가를 지나던 중, 묘한 이질감에 발을 멈추었습니다.

운전석에 사람이 없는 차량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소품이 아닌, 실제 도로를 점유한 ‘완전 자율주행 자동차’였습니다.

인도 위에는 작은 배달 로봇들이 바삐 움직입니다.

사람 대신 음식을 나르고 심부름을 수행하는 AI의 뒷모습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LA는 단순한 관광 도시가 아니라, 거대한 기술 실험장이다."


세계적인 IT 기업과 스타트업이 밀집한 이곳에서 미래는 더 이상 스크린 속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제 앞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오늘'이었습니다.

같은 거리, 다른 풍경: 최첨단 뒤에 가려진 그림자


하지만 감탄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자율주행 차량이 매끄럽게 지나간 바로 그 길 건너편, 제 시선이 닿은 곳에는 낡은 텐트가 펼쳐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첨단 AI 알고리즘이 도로를 지배하는 곳에서, 한쪽에서는 낡은 쇼핑카트에 전 재산을 싣고 하루의 생존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 눈부신 기술의 진보

• 거리 위의 거친 생존

이 극단적인 공존은 이번 여정 중 마주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세상은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는데, 왜 우리 모두가 그 속도에 올라타지는 못하는 것일까요?


6마리 쥐 실험이 보여준 '도시의 비정한 생태계'


LA의 풍경을 보며 제가 떠올린 것은 프랑스의 한 연구소에서 진행된 흥미롭고도 씁쓸한 실험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은 6마리의 쥐를 한 우리에 넣고, 먹이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깊은 수영장을 헤엄쳐 건너야만 하는 환경을 설계했습니다.

그 결과, 모두 열심히 먹이를 구하기 위해 수영을 할 줄 알았는데 쥐들은 놀랍게도 네 가지 계급으로 나뉘었습니다.

1. 착취형 (2마리): 절대 물에 몸을 적시지 않습니다. 다른 쥐가 목숨을 걸고 가져온 먹이를 입구에서 가로챕니다.

2. 피착취형 (2마리): 가장 열심히 수영하지만, 먹이를 약탈자들에게 빼앗기고 남은 찌꺼기로 허기를 채웁니다. 살기 위해 다시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3. 독립적 중간형 (1마리): 스스로 헤엄쳐 먹이를 가져오되, 빼앗기지도 않고 남을 돕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지킵니다.

4. 배제형 (1마리): 수영할 능력조차 없거나 싸움에서 밀려나 구석에서 서서히 말라가는 소외된 존재입니다.


더 큰 충격은 그다음이었습니다. '착취형' 쥐들만 따로 모아놓아도, '외톨이' 쥐들만 따로 모아놓아도, 그 안에서 다시 똑같은 계급 구조가 반복되었습니다.

LA라는 거대한 도시는 이 실험실의 축소판과 닮아 있었습니다.

자율주행 기술로 부를 쌓는 기업가와 도시를 지탱하는 노동자, 그리고 길 위로 밀려난 이들까지. 이것은 개인의 게으름 문제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만든 사회라는 '거대한 우리'의 구조적 한계일까요.

산타모니커 남녀 구분없는 공용 화장실

산타모니카와 UCLA에서 본 '또 다른 미래'


변화의 조짐이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산타모니카 피어와 UCLA 도서관에서 마주한 화장실 문에는 남녀 표시 대신 삼각형 문양과 함께 이런 문구가 붙어 있었습니다.

“All Gender Restroom”

처음엔 낯설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저 온전한 하나의 개인 공간일 뿐이었습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구조. AI와 자율주행만이 미래가 아니라, 이러한 사회적 배려와 공존의 설계 역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또 다른 미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UCLA 대학 남여 공용 화장실

여행을 마치며: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


도시는 발전합니다.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집니다. 하지만 수영장의 쥐 실험처럼 구조는 반복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수영을 하는 쥐인가, 기다리는 쥐인가, 아니면 이 비정한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존재인가.

이번 여행은 저에게 화려한 할리우드의 조명보다, 그 뒤편에 드리워진 짙은 그림자를 더 깊게 각인시켰습니다.

기술의 진보가 진정으로 향해야 할 곳은 결국 '사람'이어야 함을, LA의 거리 위에서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여러분은 이 '천사의 도시'에서 어떤 미래를 보고 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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