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의 비명

잘려 버린 봄

by ninebtls

봄은 늘 개나리의 노란 발걸음으로부터 시작된다.

채 가시지 않은 겨울의 냉기가 공기 끝에 매달려 있을 때,

세상에서 가장 먼저 노란빛의 등불을 켜며 계절을 깨우는 꽃.


그래서 우리에게 개나리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기나긴 어둠을 뚫고 도착한 반가운 첫 소식이자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봄날의 개나리를 바라보는 내 마음 한편에는 늘 안타까움이 생겼다.


분명 노란 꽃이 피어 있건만,

그 풍경은 어딘가 훼손된 듯 안쓰럽고 가련하다.


담장을 따라 폭포처럼 흐드러지게 쏟아져 내려야 할

황금빛 가지들은 온데간데없고,

툭툭 잘려 나간 거친 단면 위로

겨우 몇 송이의 꽃들만이 애처롭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비극은 꽃이 피기도 훨씬 전,

지난해 끝자락에서 시작된다.


‘정원 관리’라는 명목 아래

사람들은 개나리 앞에 선다.

그들의 손에는 사정없는 가위와 톱이 들려 있다.


길게 뻗어 나온 가지들이 지저분해 보인다는 이유로,

혹은 길을 가로막는다는 사소한 불편 때문에

그들은 망설임 없이 가지를 쳐낸다.


그 서슬 퍼런 칼날이 지나간 자리,

개나리는 어느새

‘군인 머리’처럼 짧고, 꽃이 아니라 울타리 역할로 변해버린다.


생명의 자유로운 곡선은 사라지고,

인위적으로 가공된 획일적인 직선만이 남는다.



가장 서글픈 사실은,

그 잘려 나간 가지 끝에

이듬해 봄을 터뜨릴 소중한 ‘꽃눈’들이

맺혀 있었다는 점이다.


개나리는 제 몸 어딘가에 봄을 품고

겨울을 견디려 했으나,

인간의 성급한 단정함은

그 가능성을 뿌리째 잘라버렸다.


그래서 봄이 와도

개나리는 마음껏 웃지 못한다.


다른 꽃들이 제 계절을 만나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축제를 벌일 때,

개나리는 잘려 나간 상처를 추스르며

간신히 몇 송이의 꽃만 핀 채 초라하게 서있다.


제 모습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어날 권리를 박탈당한 채,

박제된 듯한 모습으로 봄을 건너가는 그 뒷모습이

어찌나 애처로운지 모른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한지,

보고 있으면

금세 마음이 무거워진다.


조금만 덜 잘랐더라면,

조금만 더 기다려주었더라면,

우리의 거리 전체가

노란 물결로 출렁였을 텐데.



벚나무나 목련에게는 함부로 가위를 대지 않으면서,

왜 개나리에게만

이토록 가혹한 걸까.


우리는 ‘관리’와 ‘질서’라는 이름으로

자연이 선사하는 가장 경이로운 풍경을

너무나 쉽게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뭉툭하게 잘린 가지 끝에 맺힌

눈물 어린 꽃송이를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차오른다.


아직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가능성을

미리 심판하고 재단해 버린

우리의 오만함이 부끄러워진다.



그럼에도 개나리는 해마다 다시 자라난다.


또다시 가위질당할 것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가지를 뻗고

다시 봄을 준비한다.


비록 ‘군인 머리’가 되어

단절된 봄을 맞이할지언정,

그들은 단 한순간도

꽃 피우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개나리가

제 모습 그대로,

속박 없는 노란 환호를 외치며

온 세상을 물들이는 그 찬란한 봄을

볼 수 있을까.


그날이 온다면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단정함’이라는 허울 아래

얼마나 많은 봄의 기적들을

미리 잘라내며 살았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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