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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Sep 15. 2022

갑질하지 않을 의무

<먹고 사는 것에 대하여>

"이걸 이렇게 고쳐오라고~오!"

     "도대체 똑같은 말을 몇 번째 반복하고 있는 거야."


     결국 큰 소리가 나고 말았다. 그날까지 고객사에 보내야 할 문서에 틀린 곳이 있어 고쳐오라고 했건만, 몇 번을 수정해도 같은 부분이 계속해서 틀려 있었다. 반복된 실수에 시간은 지체됐고 그렇게 저녁도 먹지 못한 채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야? 넌 내 말을 듣는 거야, 마는 거야?"


     "이리 내. 내가 할 테니까 나한테 보내."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비록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지만, 그 일에서 작은 성취감이라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시도 때도 없이 숨통을 조여오는 조직 생활을 버틸 수 있고, 거기에서 오는 팍팍한 삶의 감정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믿고 맡긴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마무리하게 했다. 이것이 내가 중간 관리자가 됐을 때, 동료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이 원칙이 깨지고 말았다.


     작은 흠집 하나가 길쭉한 크랙이 되어 유리 전체를 박살 내듯 스스로 세운 원칙이 무너지자 그 사람에 대한 믿음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한번 신뢰를 잃고 나자 나도 모르게 점점 중요도가 떨어지고 직급에 걸맞지 않은 사소한 일을 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일에서마저 실수하면 그 사람에 대한 내 판단을 정당화하듯 언제나 심한 질책이 뒤따랐다.


     “이것도 못 해서 어떻게 회사를 다닐래? 네 동기보다 이렇게나 떨어져서 어떻게 진급을 하고 살아남을래? 정신 안 차려!”


     그렇게 해야만 했다. 무능력한 그 사람을 탓하며 주위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해야 자꾸만 사소한 일로 진척이 없는 업무가 내 탓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도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직장 상사가 되어갔다. 그리고 왜 이런 직원이 내 밑에 와서 이렇게 날 힘들게 하는지, 이 현실도 굉장히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런 일이 반복될수록 그 직원은 점점 움츠러들며 쪼그라들었다. 그리고 결국엔 내가 이름만 불러도 깜짝 놀라곤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지금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런 마음과는 달리 우리 관계는 좋아지지 않았다. 잦은 실수는 나아지지 않았고 그럴수록 나의 질책은 더욱 커져만 갔다. 결국 그때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아무런 효과도 낳지 못한 채, 서로의 감정만을 소모하게 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젠 서로 다른 위치에서 자기 삶에 충실할 때 가끔 그 친구 소식을 들었다. 그렇게 걱정했던 승진을 했고 이젠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했다.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며 지난 일이 생각났다.


     ‘그때 나의 행동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아무리 실수가 잦다고 해도 사람들이 다 있는 사무실에서 그렇게 큰 소리로 혼을 내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


     ‘오히려 그 친구의 부족한 점을 살피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줬다면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런 상념에 잠길 때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분명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텐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서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면 ‘미안했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과는 달리 그런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친구의 소식을 다시 들었을 때는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다.


     너무 뜻밖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를 찾아올까?’였다. 보통 회사를 그만두면 퇴사 전날, 같이 일했던 동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때에 따라서는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가 나와 함께 점심 한 끼 혹은 차 한잔 같이할 용의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막연한 감정은 없을 거라 생각했고 내가 먼저 연락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기에 이렇게 ‘미안했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보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단정 지어 버렸다. 어찌 보면 또다시 비겁하게 도망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제 맘 편하기 위한 근거 없는 결론을 내린 뒤 며칠 후,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누가 뒤에 서 있는 듯한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뭐야!’하고 뒤를 돌아보니 그 친구가 서 있었다.


     “어~!, 오랜만이야.”


     “얘기 들었어. 언제까지 출근해?”


     “잘 지내셨어요? 내일까지입니다. 오늘 인수인계 마무리했고 내일 오전에 잠깐 출근해서 자리만 정리하면 됩니다.”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하하, 예전엔 일하는 게 재미있고, 의욕도 넘쳤는데 이젠 못 견딜 정도로 너무 답답해요. 저한테 변화가 필요한 거 같아서 다른 회사로 이직했습니다.”


     “그래, 한 번 정도는 옮겨도 나쁘지 않다. 새로운 곳에 적응하려면 당분간은 정신없겠지만, 경력을 살린 이직이고 더 좋은 곳으로 가니까, 잘 됐어.”


     “축하해.”


     그리고…


     “그땐 내가 너무 심했다. 미안했어. 그동안 커피라도 한잔하면서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어. 그렇게 심하게 하지 않았어도 분명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텐데, 그땐 그럴 겨를이 없었다. 내 몸도 많이 아팠고.”


     “아무튼, 정말 많이 미안했다.”


     “하하하, 아유 뭐, 차장님 덕분에 멘탈 갑이 됐습니다. 이젠 누가 웬만큼 뭐라고 해서는 꿈쩍도 안 해요. 그때 그것도 견뎠는데, 이게 뭔 대수냐 하면서요.”


     “큭, 그래.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아직 동기들이 남아 있으니 그쪽에 먼저 물어보겠지만, 그래도 그 선에서 안 되는 게 있으면 도와줄게.


     “네, 종종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건강하고 잘 지내.”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었다. 웃는 얼굴로 악수를 하는데,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나는 그렇게 그날, 그 친구의 호기로움에 마음의 큰 짐을 덜어낼 수 있었다.


     먹기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일을 하며 절대 꼰대 같은 사람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회사에서의 직위는 조직 생활의 생리상 내게 주어진 위치일 뿐, 절대 나를 대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가 직급을 부여할 때, 그 직위를 이용한 갑질까지 허용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까마득히 잊는다. 혹은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철저히 악용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분명 전자보다 후자의 경우가 월등히 많았다.


     평소 이런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언제나 막무가내로 밀어젖히는 일정과 이를 맞춰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은 삶의 기준과 원칙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하는 게 있다. 이 세상의 모든 관리자는 동료 직원들에게 ‘갑질하지 않을 의무’를 가지고 있다. 갑질은 당신에게 주어진 권한이 아니다.


당신과 나는 언젠간 잘린다.
잘리고 나면 우리는 그냥 배 나온 동네 아저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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