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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Sep 17. 2022

신경안정제와 이상보

<누구든 무너질 때가 있다>

한 남자가...


     노란 셔츠에...

환자복 같은 세로 줄무늬 바지를 입고...


어딘가를 향해 허겁지겁 뛰어가고 있다.


맨발에 구겨신은 슬리퍼로 발을 한번 헛디디더니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앞만 보고 달린다. 도대체 어디를 저리 정신없이 가나 봤더니...


어느새 경찰의 에스코트까지 받는다.

그렇게 양팔을 내주고 종전보단 느리지만 여전히 빠른 걸음으로 또 어딘가를 향해 걷고 있다.


이것이 이상보 씨가 마약 투여자가 된 이유이다.

CCTV 속 그의 모습은 좀 정신없어 보이긴 하지만, 정신은 또렷하고 약간 비틀거리긴 하지만, 불금에 강남 일대에서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며 소리 지르는 주취자보단 멀쩡하다. 도대체 어떤 마약을 먹으면 모든 쾌감을 능욕하는 엄청난 양의 도파민이 분비된 상태에서 저리 차분할 수 있을까?


     이제 신이 난 건...


건수 잡아 승진하려는 짭새가 첫 번째요,
특종 잡아 조회수 올리려는 기레기가 두 번째고,
조회수 잡아 돈 벌려는 유튜버러지가 세 번째며,
나도 한번 어떻게 편승해 볼까 하며 붕붕 거리는 불로거가 그 마지막이다.

날개 같지도 않은 날개로 퍼덕대고 몸 같지도 않은 몸으로 꿈틀거리며 '나 좀 봐쥽소'에 여념이 없다.


그래 옛다.

조카 18색 크레파스들아, 너그들 덕분에 한 사람의 마음이 다시 한번 갈가리 찢겼다.


너희들이 그 외로움을, 고독을,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느냐?


그는 10여 년 전에 아버지를 잃고 우울증이 시작됐다고 했다. 누이와 어머니까지 사고로 잃고 불안과 우울이 심해져 약물 복용을 늘렸다고 했다. 그렇게 십 년 넘게 버티다 아무도 없는 추석 명절에 치밀고 올라오는 외로움이 너무 심해 신경 안정제를 먹었고...


그래도 버티지 못해 술에 손을 댔다고 했다.


정신과를 오래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신경 안정제와 알코올을 같이 복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예전에 농담처럼...

내 치료자를 떠본 적이 있다.


처방받은 신경안정제가 남으면 버리지 않고 모아뒀고 병원에서 (비상용으로) 새로 처방해 준 양을 합하니 꽤나 많았다. 이걸 한 번에 다 털어 넣고 소주 두 병을 완샷 하면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편히 꿈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자연스레 내 호흡 중추가 멈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티 안 나게... 헤헤헤 웃으며...


슬쩍 물어봤다.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먹은 상태에서 원래 주량인 소주 두 병을 마시면 어떻게 되냐고? 위험하냐고 물어봤다. 마치 미리 조심하기 위해 물어보는 것처럼 나름 이쁘게 포장해서 물어봤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치료자는...


단 칼에 내 말을 자르며...

헛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먹으면 아마도 한 일주일 혹은 몇 주 아주~~~ 푸욱 잠만 자고 일어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이미 다른 사람 눈에 띄어 병원으로 이송된 뒤, 위 세척으로 위가 걸레가 되어 있을 거라고 했다.


사람 그렇게 쉽게, 편하게 죽지 않으니 헛 꿈꾸지 말라고 단호히 말했다. 하하.


정신과를 10년 넘게 다녔고 신경안정제와 항 불안제를 오래 복용했다면 알코올을 중복으로 섭취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모를 리가 없다. 


그만큼 혼자 있는 명절이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그렇게 가슴속에 외로움이 사무치기 시작하면 미칠듯한 애절함이 올라온다. 그러나 갈 곳 없는 애절함은 커다란 애틋함이 되어 따뜻한 사랑이 되지 못하고 나를 아프게 하는 커다란 상처가 된다.


이상보 님에게 그때가 이런 날이었던 것 같다.

이번 일이 지워지지 않는 또 다른 상처로 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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