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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비 Aug 19. 2024

2-13. 자기혐오는 또 다른 연민이다.

<불안으로 고통받는 당신에게>

내 병의 끝이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허무가 밀려왔다.


몸을 돌보지 않고 살다 보니 누구나 넘어지는 때가 있듯, 잠깐 쉬어 가는 거라 생각했다. 금방 나을 줄 알았고 주말마다 앉아 있는 이곳, 낯설면서도 편안한 감정을 쥐어 줬던 치료자의 공간, 오래지 않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동안 나를 괴롭혀왔던 모든 감정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라 생각했기에 언제나 같은 생각, 반복되는 패턴을 자각하지 못했다. 나는, 내가 멀쩡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기 시작한 것은 정신과를 다닌 지 4년이 되던 해였다. 병원에 다닌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감정은 이전보다 더욱 출렁거렸고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깊은 우울감에 마른 쭉정이처럼 방바닥에 널브러져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씻지도 밥을 먹지도 청소를 하지도 않았다. 해가 뜨고 지면 밝아졌다 어두워지는 방 한구석처럼 내 마음도 환해지다 다시 어두워졌다. 그렇게 어둠이 반복될수록 한낮의 밝음과는 상관없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만이 마음속에 남았다.


불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살랑거리는 작은 곁바람에도 흔들렸던 내 마음은 평온, 안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나고 나면 아무렇지 않은 옛일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요동치는 불안을 잠재울 수가 없었고 이성적으로 통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쉬어도 쉬지를 못하고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온종일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현실이 되지 않던 공상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갔다.


기쁨…


행복…


안식…


사랑…


언제나 마음이 불편하고 아팠기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이런 나의 어둠을 쉽게 알아챘다. 내가 가진 짙은 그림자에 가려 자신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둠이 다가오기 전, 미련 없이 나를 버렸다. 그렇게 해야만 그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내가 견뎌야 할 고통보다 그녀가 맞이하게 될 따스한 행복이 먼저 보였다. 누군가를 너무나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 곁엔 환하고 맑은 빛만 머물길 기도하게 된다. 그래서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그녀를 위해 나 또한 스스로의 감정을 포기했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가 떠날 때마다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고통은 진한 어둠이 됐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우울과 어울려 벗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이 됐다. 그렇게 타인의 사랑을 받지도, 줄 곳도 없는 절절한 고독이 되어 버렸다.


너만 아니었다면…


너만 아니라면, 숨조차 쉬지 못할 고통 속에 파묻혀 있지는 않을 텐데…


너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많은 것을 잃어버리진 않았을 텐데…


너의 불안과 우울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단 행복했을 텐데…


어떻게 이런 나를 혐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무의식에 존재하는 고통의 상흔…

오랜 기억을 뒤흔들면 패각처럼 떨어지던 아픔의 눈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그래야 내가 왜 이런 슬픔과 고독을 견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댈 수가 있었다. 누구도 이해 못 할 고통 속에 갇혀 사경을 헤매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벗어날 방법조차 모른다면, 내가 왜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때가 온다. 결국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감내할 수 있으려면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울과 불안에 대한 이유, 다른 핑계가 없는 단 하나의 이유, 바로 나 자신이다.


자기혐오는 또 다른 연민이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의 감정은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모든 것에 대한 아픔이고 지난 슬픔에 대한 분노이다. 갈 곳을 잃은 감정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리며 내 탓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기질적으로 불안도가 높고 우울감에 빠지기 쉽다 하여 그 원인이 나에게 있는가? 그냥 그렇게 태어난 것일 뿐… 통제할 수 없는 불안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여도 그런 자신을 비난하거나 상처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에 대한 혐오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의지의 상실에서 오는 왜곡된 감정일 뿐이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미워하며 분노를 쏟아내야 그 감정에 기대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증오하거나 미워하지 말라. 싫어하지도 말라. 

끝없는 수렁에 빠진 자신이 혐오스럽다면 가슴 애린 연민의 감정으로 무너진 몸과 마음을 따뜻이 다독여야 할 때다.


그것이 바로 자기혐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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