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와 만나던 날, 그녀의 Flat mate, 마이크가 함께 나왔다. 제니와 인사시켜 줄 요량으로 나는 나의 듬직한 마이크를 초대했고, 그렇게 두 마이크와 제니와 나 이렇게 네 명이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Mike Park. 비쩍 마르고 큰 키에 시니컬한 표정으로 들어선 그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나 역시 그가 반가웠지만 우리말을 전혀 하지 않는 그가 조금 어색한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직 영어로 말할 때 훨씬 많은 에너지가 쓰이던 나는 그날 밤 정말 많은 에너지를 써야 했다. 저녁을 먹고, 소호의 작은 바로 자리를 옮겼고, 포켓볼과 다트 게임을 하며 우리 사이의 어색했던 공기는 서서히 사라졌다. 그때까지 나는 그가 몇 살인지, 홍콩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홍콩에 맛집이 많다. 글로벌 시티답게 세계 각국의 음식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입 맛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라면 홍콩은 정말 맛집 천국이다. 그래도 매일 하루 두 끼 이상 이국적인 음식을 먹다 보면, 일주일 한번 정도는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이 그리워진다. 물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가 끓인 된장찌개’는 언제든 먹을 수 있었지만, 정말 제대로 된 요리가 그리울 땐,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맛집 사진이 너무나 끔찍한 고문이 됐다.
이런 사실에 우리 넷은 너무나 공감했고, 그렇게 Secret Kitchen 모임이 결성됐다. 한 달 한 두 번 정도, 돌아가면서 집밥을 해서 함께 먹고 receipt도 공유하는 것이 모임의 취지였다.
첫 번째 secret kitchen의 메뉴는 제니의 매운 찜닭. 제대로 맛이 났다. 감자도 포실포실 제대로 익었고, 적당히 걸쭉해진 국물은 매콤 달콤한 게 입에 딱 맞았다. 그리고 닭다리 부위만 사용한 덕분에 뜯고 맛보는 재미도 두배였다. 닭다리를 뜯으며, 와인 잔을 기울이며, 우리는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갔다. 마이크 박은 영화를 전공한 시나리오 작가이면서 예비 영화감독이었다. 이미 단편 영화 한편을 제작했으나, 상업영화는 아닌지라 나라는 평범한 인간이 알고 있을 리는 없었고. 홍콩에서 그는 좀 더 스케일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찾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라면, 자신이 계획하는 영화에 투자할 사람을 만날 가능성도 더 높을 것 같다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시나리오 쓰는 것을 좋아하며, 하우스 뮤직을 좋아하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 영감을 얻기를 좋아하는 그.
무엇보다 그는 대단한 미식가이면서 단출한 재료만으로도 그럴 듯 한 요리하나 쯤 30분 내에 우습게 만들어내는 훌륭한 Chef였다.
자연스럽게 두 번째 Secret Kitchen의 메뉴가 정해졌다. 마이크 박의 할머니 간장 찜닭. 기대가 컸다.
난이도 중급 이상에 해당하는 간장 찜닭이라는 메뉴에도 기대가 있었지만, 다시 모여 이 평범하지 않은 인물에 대해 더 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가 컸다. 나는 여기서 어디든 경계선을 두지 않기로 했으며, 그 어떤 색깔도 띄지 않기로 했으며,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담을 수 있는 빈 그릇이고자 했으므로. 평범하지 않은 듯 싶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점점 더 매력적으로 흥미를 더해갔다.
물론 나의 업무도 본 궤도에 올라 스트레스 지수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지만 나는 꽤 잘해내고 있었다. 회사 밖에서 이런 예상 밖의 재미가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