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k Tuk Thai (G/F, 30 Graham Street, Central)
두어 달 동안 어색한 문자를 몇 번 주고받기는 했으나, 사실 우리가 정말 만나게 될 거라고는 확신하지는 않았다.
에효... 아무리 함께 나이 들어가는 다 큰 조카라지만 그래도 내 오촌 조카의 선배 언니면.... 조카나 마찬가진데...
이 친구는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많이 어색해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Thai 메뉴판을 열심히 훑으며 Jenny를 기다렸다.
한 달간의 남미 여행에서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은 약간의 여독이 남아 있는 듯 보였지만 대화를 시작한 지 5분도 안돼서 이 자유롭고, 유쾌하고, 털털하고, 솔직한 아가씨를 참 좋아하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한 달에 한 번 정도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의 자유를 원하는 제니는, 그런 이유로 홍콩을 택했다.
제니는 의상학을 전공했고, 졸업과 동시에 어렵지 않게 패션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흔한 취준생, 취업재수도 겪지 않고 일자리를 구하게 된 건 그냥 운 때문은 아니었다.
그녀는 대학생활 동안 수없이 해외를 돌아다녔다. 물론 여행경비도 직접 마련했고, 혼자서 여행을 계획했고,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언제나 많은 친구를 만났고,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는 소중한 인연도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과 친구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었고, 함께 있으면서 더 즐거워지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사랑을 느끼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도 알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사람 관계에 있어 꽤나 능숙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 남녀관계는 살짝 제외.
하지만 제니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내가 꽤나 능숙하다고 여겼던 사람 관계에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있었다. 제한된 서클 안에서, 어느 정도의 깊이까지만.
나와는 너무 다른 성향의 사람들과는 만날 기회도 많지 않았고, 만나더라도 그냥 필요에 의해 몇 번에 그쳤겠지.
제니는 인생에 키워드 몇 가지를 가지고 있었다. 여행, 사랑, 음악. 내가 만난 가장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쪼개어 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새로운 곳을 탐험하기 위해서 그녀는 쉼 없이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그리고, 그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건강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새벽 조깅을 하고, 요가, boot camp... 그녀는 끊임없이 무언가 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인생을 제대로 맛보고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홍콩에 오지 않았더라면, 서울에서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을까? 혹시 조카를 통해 한두 번쯤 의도치 않게 만나게 됐더라도 거기까지였겠지. 그랬더라면, 난 정말 많은 것을 평생 경험하지 못하고 놓쳤을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