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녀부장 Mar 31. 2016

2006년 7월 홍콩, 그 첫 만남

토요일 아침 8시, 어쩐 일인지 평소 주말에 비해 조금 이른 시간에 스르르 눈이 떠졌다. 

금세 마음껏 여유 부려도 좋은 주말 아침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번쩍 정신이 드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홍콩 출장! 10시 30분 비행기. 


지난밤에 출장가방을 멀쩡하게 꾸려놓고 잠들었는데, 자는 동안 그 출장 일정을 까맣게 잊어 먹은 거다. 

세상에... 공황상태에 빠졌지만 그렇게 허비할 시간도 없었다. 옷만 갈아입고 정신없이 집을 나섰고, 다행히 얼마 기다리지 않아 도착한 공항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식은땀에 화장기 없는 얼굴이 번들거렸고, 위산까지 가차 없이 쏟아졌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체크인을 끝내고 그때서야 민낯에 운동복 차림의 몰골을 추스르고서는, 처음 발을 디디게 될 홍콩에 대한 기대를 뭉글뭉글 품어보기 시작했다. 여행자로서. 


홍콩 공항, 많이 더웠다. 습한 공기 때문에 청바지가 다리에 달라붙어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겹게 느껴졌다. 

일단 택시만 타면 호텔까지 이동하며 다시 기운을 차리고, 상쾌한 에어컨 바람에 땀을 말릴 수 있을 테니 빠른 걸음으로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택시기사분께 힘들게 목적지를 이해시키고, 에어컨이 켜져 있거나 말거나 창문을 살짝 내렸다. 

덜컹거리며 달리는, 냄새나고 낡은 빨간색 택시 안에서 창 밖 풍경을 보며 생각했다. 

홍콩, 낡은 것들에 익숙해져야 견딜 수 있는 곳이구나 


Bishop Lei International House. 

처음 들어보는 호텔 브랜드였지만, 여러 차례 홍콩을 다녀온 선배가 추천해준 곳이라 이것저것 알아볼 것도 없이 선택한 곳이었다. 낡은 빨간색 택시는 더욱 심하게 덜컹거리며 꼬불꼬불 산길을 끝도 없이 올라갔다.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아! 호텔방이 이렇게 작을 수가 있구나...


짐가방은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회사로 전화를 걸었다.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회사 지정 호텔 예약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하룻밤만 견디면 그 작은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게 됐다. 그제야 호텔을 빠져나가 뭐라도 둘러볼 기운이 생겼다. 창 밖을 내다보니, 하나같이 20층이 넘는 고층 아파트가 빼곡했고, 그 아파트의 중간 허리쯤엔 수영장이 하나씩 꽂혀있었다. 차 없이 다니는 건 상상도 안 되는 산동네에 비싸 보이는 아파트들... 참 생소한 풍경이었다. 


다음 일정은 딱 반나절 주어진 개인 일정이었으므로, 홍콩 첫 여행자의 정석 코스를 압축한 버전으로. 

센트럴 피어에서 스타페리, 스타의 거리 산책, 타임스퀘어서 쇼핑, 제이드 가든의 딤섬, 빅토리아 피크의 야경. 


이튿날 아침, 눈 뜨자마자 코즈웨이베이 Lanson Place로 짐을 옮기고 본격적인 업무 일정이 시작됐다.

이후 이틀은 홍콩컨벤션센터와 홍콩 오피스를 오가는 쉴틈 없는 일정.

마지막 날 아침, Lanson Place의 라이브러리 콘셉트로 꾸며진 라운지에서 깔끔하게 차려진 아메리칸 블랙퍼스트로 속을 채우며 잠깐의 여유를 느끼고는 공항행 택시를 타고 서둘러 홍콩을 빠져나왔다. 

음... 홍콩, 출장이 아니라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은 곳이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