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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녀부장 Mar 31. 2016

2014년 8월, 홍콩으로

대학시절부터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로망이 하나 있었다. 해외에서 근무지를 옮겨가며 일하는 남편을 따라 해외 여러 도시에서 살아보는 것이었다. 

낯선 도시에서 짧게 기약된 이방인으로 일상의 무게는 절반 정도 내려놓고...


내 지인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드물지 않게 찾아왔지만, 기본조건이 충족되지 않은 나에게는 그건 그냥 로망일 뿐이었다. 내 인생에 그건 찾아오지 않는 행운인가 보다 포기할 즈음, 나에게도 비슷한 기회가 찾아왔다. 


회사의 Regional Office에서 진행하는 글로벌 프로젝트를 도와주기 위해 홍콩으로 3개월간 파견근무를 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홍콩이라...


나는 홍콩에 대한 어떤 판타지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2006년 그러니까 벌써 까마득히 옛날 회사업무로 두 번 다녀온게 전부였고, 그때는 안고 간 업무에 치여 느긋하게 그 도시를 둘러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그저 홍콩은 높은 빌딩들이 빼곡히 들어차 숨막히는 숲을 이루고, 그 건물 창 여기저기에 당황스럽게 나부끼고 있던 고단한 생활의 흔적들, 어딜가도 미어터지는 인파, 비싸지만 말도 안되게 작은 호텔방...그 정도였다. 쇼핑에 큰 흥미가 있지도 않았으니 홍콩은 그저 내 출장지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니, 이 홍콩 파견근무는 잠시 일상에서의 도피 외에는 사실 큰 매력이 있지는 않았다.


겨우 3개월 떠나 있을 거면서, 나는 참 살뜰히도 여기저기 작별인사를 했다. 아마 3개월 간의 부재를 알리는 내 인사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오랜 공백의 암시가 풍겼으리라... 아마도 마음 속으로는 좀 오래도록 익숙한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 있고 싶었을 게다. 


3개월. 짐을 꾸리기에 참 애매한 기간이었다. 

떠나는 날짜가 8월 말이니 홍콩에 있는 동안 계절이 한번 바뀔 터였다. 덩달아 챙겨야할 것들이 늘어났다. 두 계절을 버틸 수 있는 옷가지들을 단촐하게 꾸렸고, 그 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신간도서들. 나는 여전히 종이책을 고집한다. 읽는 동안 내 손때를 묻히고, 파랑색 색연필을 들고 군데 군데 줄도 그어가며 온전히 내것으로 만들어가는 그 재미를 포기할 수가 없다. 그리고 향수병을 달래줄 먹거리. 분명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내가 끓인 된장찌개’도 몹시 그리울 것이므로 기본적인 재료들은 가져가야 했다. 캐리어 가방 2개, 국제특송으로부쳐질 5~8kg 박스 3개로 짐이 꾸려졌다.  


출발하기 전날 친구에게 선물받은 미니 약상자 ‘Survival Kit in HK’까지 챙겨넣고 나니, 준비는 끝났다. 


나 정말 홍콩에서 ‘Survive’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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