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간의 호텔 생활을 정리하고 드디어 해피밸리의 새 보금자리로 이사했다.
홍콩 도착한 다음 날, 구글맵에서 찾은 가장 가까운 성당, Saint Margaret's Church를 찾아서 간 해피밸리.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회사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차로는 5분이면 충분한 이 동네가 한 눈에 마음에 들었다.
홍콩 같지 않은 한적함과 유유자적한 분위기 덕분에 회사와의 최적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확보됐다.
게다가 집 앞을 지나는 트램은 홍콩섬 서쪽 케네디 타운까지 운행되는 황금노선이었다.
경마장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의 전망이 너무 좋아서, 하우징 예산(Housing Budget) 따위는 잊어버리고 바로 3개월 계약을 해버리고 말았다. 오래도 아니고, 딱 3개월이니 약간의 된장질을 해버리기로.
아침마다 경쾌한 새소리에 눈을 떴고, 이웃한 경마장으로 나가 탁 트인 공간감을 만끽하며 긴 트랙을 조깅했다.
좀처럼 야근은 없었다. 그리고 주중 저녁 약속도 잘 없었다.
서울에서는 예측 안 되는 야근도, 주중 저녁 약속도 많았다. 그래서 중요한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은 오전부터 은근 긴장모드였고, 퇴근 시간 임박해서 날아오는 팀원들의 리뷰 요청 메일은 정말... 뜻하지 않게 사람을 사납게 만들기도 했다.
아직 회사 동료 말고는 딱히 만날 사람도 없으니 약속 없는 저녁에는 쓸쓸하고 외롭게 군만두 달랑 다섯 개 구워서 칭따오 한 캔으로 마음을 달래기도 했다. 좀 쓸쓸한 저녁이긴 해도 그 와중에 큰 위로가 된 건, 칭따오 한 캔이 고작 1,200원 정도밖에 안 한다는 사실과 냉장고에 칭따오가 넉넉히 쌓여있다는 사실이었다.
애매한 저녁시간에 잡히는 본사와의 컨퍼런스콜 때문에 이른 저녁을 먹고 앉아 콜 시간을 기다리며 조심스레 애플 사이다를 홀짝인 날도 있었다. 홍콩에는 글로벌 기업의 Regional Office가 많이 있기 때문에 퇴근 후 일과의 완전한 분리는 불가능했다. 본사 시간에 맞춰서 잡히는 컨퍼런스 콜이 일주일에 평균 3개가 넘었다. 서울에 있을 때 가끔 급하게 논의할 안건이 있어, 출근 후 1시간을 기다려 홍콩 오피스 출근시간에 맞춰 전화를 했는데 담당자가 아직 출근 전이었을 때 많이 구시렁거렸다. 하지만 동료들의 고충을 직접 체험하고 보니, 다음부터는 RO직원들의 출근시간에 대해 불평 말아야겠다 속 깊은 생각도 했다.
어떤 날은 홍콩 라이프에 대해서 뭐라도 끄적거려 보겠다고 앉아서 애플 사이다 캔만 쌓아가던 날도 있었다.
아직 한 달이 채 안된 홍콩 라이프, 홍콩 로컬의 삶 속으로 들어오긴 했으나, 숨 돌릴 틈 없이 바빴던 삶에서 마음까지 빠져나오는 건 시간이 좀 걸리는 듯했다.